“엄마 걸프랜드 생겼어요. 나이가 나보다 엄청 많은데.”
“얼마나?”
“11살이나.”
“나이가 뭔 상관이야.
엄마보다는 적네.
일주일에 한 번꼴로 일본에 가 있는 작은놈과
화상채팅을 한다. 젊고 바쁜 아이 붙잡고 주책없이 한 이야기 또 하고 또 하면 그나마
화면 속으로나마 볼 기회를 놓칠까 봐 내가 먼저 연락하는 일은 없다.
아이가 혼자서도 비행기를 탈 수 있는 14살이 되었을 때 ‘The Experiment in International Living’ 프로그램으로 일본 북해도에
한 달간 보낸 적이 있다. 그 이후로 아이는 일본에 관심이 많았다. 일본 만화를 보며 언어를 배우더니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으로 직장 잡아 떠났다.
“엄마와 아빠 동기도 12살 많은 여자와 그 옛날에 결혼했다. 결국, 이혼했지만. 네가 먼 곳에서 혼자 외롭게 지내느니
여자친구가 생겼다니 다행이다. 나이 많으면 네가 배울 것도 많고 좋지 뭐. 한번 지나간 젊음은 다시 오지 않아. 놀 때 열심히 놀고 일할 때는 부지런히 일해.
엄마가 이래라저래라 할 시기는 지났다. 네가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니.”
여자 친구 사진을 서너
장 보여주며
“엄마 어때요?”
"예쁘고 어려 보이네.”
예전에도 히스패닉을 사귀더니 남미 사람처럼 눈이 크고 윤곽이 뚜렷한
것이 내가 좋아하는 타입은 아니지만, 어려 보이고 예쁘다고 칭찬할 수밖에. 우리 아이는 영락없이 외할아버지를
닮아 일본인처럼 생겼는데 정작 일본 여자 친구는 뉴욕에서 지나치다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아무려면 어떨까
아이가 좋아하면 됐지.
아이들이 사귀는 여자들을
단 한 번도 반대한 적이 없다. 혈기 넘치는 젊은 나이에 우두커니 방에 처박혀 허구한 날 컴퓨터 게임만 하는 아이의 등짝을 보는 상상만 해도 가슴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데 반대라니. 컴퓨터 게임을 멀리하기 위해 14살부터 여권 페이지를 추가하면서까지 기회가 생길 때마다 해외로 내 보냈다. 지인의 아들이 게임
하다 여자 사귈 시기를 놓치고 마흔 살 나이에도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니….
검으면 어떻고 희면
어때, 나이 많으면 어쩌랴.
한국말 잘 통하는 며느리 맞아 딸이라며 허물없이 이말 저말 하다가 오해 생겨 틀어지느니 차라리 언어가
달라 적당한 거리를 두고 공손하게 대우하며 지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아이들이 살고 싶은 곳에 살며 저희가 원하는 여자를 사귀고, 하고 싶은 일 하며 행복하게 살기를 바랄 뿐이다. 괜시리 아이들 일 참견하다가
"엄마나 잘하세요.'
하며 연락 끊겨 안절부절 애타느니 남편에게나 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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