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July 29, 2017

욕 먹어도 괜찮아

먹고 사느라 힘든 세월 보냈다. 한숨 돌릴 만큼 살게 되니 바쁘고 정신없이 보낸 날들 챙기지 못한 인간관계로 요즈음도 힘들기는 매한가지다. 그래도 먹고 사는 것만큼 힘들까마는!

한 스님이 부잣집에 탁발하러 갔더니 그 집 주인이 화를 내며 내쫓았다. 쫓는데도 가지 않고 빙그레 웃고 서 있는 스님에게 왜 웃냐?”며 집 주인은 더욱 화를 냈다. 스님 왈, “만약 손님이 선물을 가져와 당신이 그것을 받으면 선물은 누구 것이냐?”라고 물었다. “당연히 내 것이다.”라고 집주인이 대답했다. “그러면 반대로 받지 않으면 선물은 누구 것이냐?”라고 다시 물었다. “물론 내가 받지 않았으니 가져온 손님 것이 아니겠냐?”고 대답했다. 내가 당신이 낸 화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그 화가 내 것이 아니기에 웃고 있다.”라고 스님이 대답했다.’

그제야 집주인은 크게 깨닫고 스님을 융숭히 대접했다는 대충 기억나는 법륜스님 말씀 내용이다.

상대방에게 언짢은 소리를 들으면 화가 나서 맞받아칠까? 말까? 망설이다 스님 말씀을 되새기며 화를 꾹꾹 누르며 삼킨다. 그러나 화를 내지 않았을 뿐이지 스님처럼 웃으며 흘려 버리지는 못한다. 화를 곱씹으며 상대를 미워하고 어떻게 화를 삭일 것인가? 이런저런 궁리를 한다.

연락을 끊고 다시는 보지 말까? 아니면 나 잘되는 것이 복수하는 거다.’ 등등으로 별 잡생각을 하며 곱씹는다. 쓸데없는 생각으로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다가 드디어는 욕먹어도 괜찮아.’로 결론 내린다.

욕먹어도 괜찮다.’는 결론이 난 후에도 뒷골을 당기는 듯한 기억이 되살아나서 되짚어 생각하고 또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내 마음에서 라는 괴물이 빠져나가면 마음이 편해진다.

삐져나간 라는 괴물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나는 바보같이 웃으며 중얼거린다.
참길 잘했지. 참길 잘했어.”

Friday, July 28, 2017

It’s okay to be cursed

I had a hard time of living. Now, I have a good life, but it’s still hard these days, because I have not been able to take care of the relationships in my busy and unhappy days. However, is it as hard as living?

'A Buddhist monk went to the wealthy house to beg for food. The owner of the house was angry and threw him out. "Why are you smiling?" The owner of the house was angrier at the monk standing there smiling and did not go "If the guest bring a gift and you get it, that gift whose is it?" The monk asked. "Of course it is mine,replied the owner of the house. "Then, if you reject the gift, whose is it?” The monk asked again. "Of course I did not receive it, so it would be a guest.” He answered. "I am smiling because the anger is not mine because I have not received the anguish that you have given me," the monk replied.’

Then the owner of the house realized the greatly and welcomed the monk. This is the word of the monk Beop Ryun who I remember roughly.

Will I get upset when I hear something unpleasant from the other person? Should I not? I hesitate. While I was hesitating, I hold my anger down and swallow it while remembering the words of the monk. Even if I do not get angry, I cannot smile like a monk. I was thinking about how do I cut off an anger that hates my opponent.

'Do I cut off them and never see againOr my success is revenge.And so onI wasted a lot of time and energy in unnecessary thoughts, and finally I end up with "It's okay to be curse me.”

'Even after the conclusion of the ‘It does not matter if you blame.’ the memory seems to be drawn back to me, I think again and againAs time goes by, slowly escaping the monster called ‘Hwa(anger)’ from my heart makes me feel better and become free man.

Looking at the monster of Hwa(anger) from a distance, I laugh and mutter. “I did a good job. I did a good job of it.”

Saturday, July 15, 2017

사라진 이웃

오랜만에 브루클린으로 갔다. 화가 남편이 도시락 들고 출근하는 그린포인트 스튜디오는 예전 우리의 둥지였다.  

밖이 조용하다. 웬일일까? 모두 어디로 갔을까? 건너 델리 가게도 얼마 전에 문을 닫더니 낯선 사람이 내부 수리를 한다기에 흘끔 들여다보니 무척 팬시하. 어쩌다 급한 방문객이 오면 남편은 외상으로 맥주며 안줏거리를 거침없이 내주던 구멍가게였는데.

동네가 변하고 있다. 정보통인 뒷집 호세가 있으면 물어보기라도 텐데 벌써 저세상으로 갔으니 길이 없다. 옆집 샌드라는 웰페어 체크가 오는 날이면 우체부를 기다리는 눈치로 창가에 베개를 받치고 내다보다 내가 지나가면 “What’s up?”하곤 했다. 제이도 차에 앉아 거대한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목소리로 동네 분위기를 말해주곤 했는데, 차도 사람도 사라졌다. 그러고 보니 아침이면 앞을 쓸던 알렉스도 없다.

웅크리고 안에 있다가 여름이 되어 방문하니 이웃들이 사라졌다. 집세를 내지 못해서 야반도주했나? 아니면 급속도로 바뀌는 동네 분위기를 놓칠세라 집주인들이 건네는 뭉칫돈을 받아들고 떠나온 고향으로 돌아들 갔나? 라틴계 이웃들은 몸만 빠져나갔는지 이사하는 흔적도 없었다. 그와는 반대로 그들이 떠난 곳에 전국 주에서 몰려드는 젊고 싱싱한 하얀 낯선 젊은이들의 새로운 곳에서의 삶에 흥분된 기운이 넘친다.

84 겨울, 브루클린 그린포인트 강가로 이사 와서 아이를 낳고 키웠다. 겨울이라 조용했. 그러나 봄이 지나고 따뜻해지자 겨울잠 자다 나온 모양으로 뚱뚱한 몸을 의자가 찌그러지라고 이웃들이 늘어앉아 떠들기 시작했다. 조용히 하라고 타이르기도 하고 소리를 지르고 경찰을 불러도 소용없었다.

라디오 소리, 아이들 자전거 타는 소리, 짖는 소리, 어른들 고함 특히나 오토바이 부릉부릉하는 소란스러움은 크랙 마약이 절정에 이른 90년대 초까지 이어졌다. 우리에게는 잠을 설쳤던 악몽과 같은 세월이었다.

밤새 떠드느라 설친 잠을 자는지 아침나절은 조용하다 못해 지금처럼 고요했던 이웃이 어디로 갔단 말인가!

수많은 싱글 마더의 구루마에서 칭얼거리던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 짝을 찾아 떠났 노인들은 세상을 떠났다고 치자. 그러나 중년 이웃들은 어디로? 미우나 고우나 정들었던 이웃이었는데

Friday, July 14, 2017

The missing neighbors

I went to Greenpoint, Brooklyn after a long time. The Greenpoint Studio, where the artist’s husband carries his lunch box to work, used to be our nest.

It’s quiet outside. What happen? Where have all gone? The store that gave my husband beers and snacks on credit without hesitation, across the street closed the door some time ago. Now, a stranger is renovating it. It is pretty fancy to look at it glance.

The neighborhood is changing rapidly. I may ask if there is Joes next-door who is a source of information, but he has already died. I would ask. Sandra who waits for the postman on the day of the welfare check used to look out if I pass while supporting a pillow at the window and say, “what’s up? Jay, a front of the house also used to sit in the car and tell the atmosphere of the neighborhood with loud voices coming out of his huge body, but neither the car nor the person disappeared. Come to think of it, there is no Alex who used to sweep in front of his neighbor’s houses every in the morning.

I was crouched in the house all winter and when I visited in the summer the neighbors disappeared. Did they run away at midnight because they could not pay rent? Did they take the money that the landlords offer them and go back to their hometown? Latino neighbors could not see any sign of moving away. On the contrary, it is full of excitement for a new life of young and fresh white strangers who flock from all over the place.

In the winter of 1984, my husband I moved to Greenpoint, Brooklyn. It was quiet because it was winter. However, as spring passed and got warmer, the neighbors sat front of the house and began to make noise. It was no use trying to persuade them to be quite, yelling and calling the police.

Radio soundskids bicycle ride sounds, the barking of dogs’, adults yelling in particular the motorcycle sounds continued until early 90 's when crack drugs reached their peak. It’s been a nightmare for us. 

Countless single-mother whining children grew up and left for their mates. The old people left the world. But where are the middle-aged neighbors? Anyhow they were my neighbors who became fond of me.

Saturday, July 1, 2017

크루즈 여행 숨박꼭질

경치나 자연의 아름다움도 한몫하지만, 인간적인 흥미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

육지로 여행하다가는 다시는 가나 봐라.’를 곱씹으며 부부 싸움하다가 피곤한 몸을 끌고 돌아와야 하는 우리 부부, 자잘한 신경에서 벗어날 수 있는 크루즈의 편안함에 끌려 무리를 해가며 또 탔다.

저녁 테이블에 앉아 평소에는 접근하기 쉽지 않은 다양하고 깔끔한 음식으로 배를 채우자 배고플 때는 들리지 않았던 옆 옆 테이블에 앉은 두 동양 여자의 대화가 들리기 시작했다. 슬쩍 보니 한국 사람은 아닌 듯했다. 일단 두 사람이 영어로 대화 중이었고 주로 듣고 있는 중년 여자의 억양은 미국인 발음에 가깝고 쉬지 않고 이야기하는 나이든 여자의 억양은 본토 발음도 한국 사람의 영어 억양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행 중 동양사람이 가까이 있으면 우리 부부는 그들이 지나쳐 갈 때까지 일단 입을 다문다. 그녀들이 중국사람이라고 생각한 우리는 계속 이야기했다. 갑자기 두 여자가 벌떡 일어나 다가와 한국 사람이세요?’라고 영어로 물어보는 게 아닌가.

어찌 그리 반가워할 수가 있을까? 게다가 그중 젊은 여자는 예쁜 얼굴로 상냥하게 말을 걸며 자리를 뜨지 않으니 옆자리를 권할 수밖에 없었다. 항상 배에서 대화의 시작은 어디서 왔냐?’. ‘뉴욕에서 왔다.’며 되받아 물으니 미네소타에서 왔단다. 두 여자 남편들은 미국사람이란다. 외국인 남편과 오래 살면 영어 발음도 모습도 다른 환한 빛을 찾은 듯 한국 사람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모호했다.

거의 매일 식당에서 마주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중 젊은 여자가 우리 여자끼리만 놀아요.’ 하며 내 팔을 끌었다. 남편은 배 안에서 함께 여기저기 둘러보자면 마지못해 따라다니다 잘됐다 싶었는지 사라졌다.

한국말도 잘했지만, 습관적인지 영어로 대화는 이어졌고 그녀들의 미국인 남편들이 불쑥불쑥 나타나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내 남편과는 달리 부인들을 잘 챙기며 다정다감했다. 그중 젊은 여자는 자꾸 나와 놀고 싶어 하고 조용히 쉬려고 배를 탄 내 남편은 만남을 피하니 내가 가운데 앉고 양쪽에 그들 부부가 앉아야 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모처럼 배 안에서 한국 아줌마들을 만나 어울리며 나와 다른 그들의 삶을 듣고 공유하고 싶어 신이 났었다. 그러나 혼자 있고 싶어 하는 남편을 설득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인지라 여자 셋에 남자 둘의 만남을 더는 이어갈 수가 없었다.

식사시간을 재 조정하고 다른 식당을 헤매며 그들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나를 찾고 나는 숨기를 반복하며. 아마 그들도 나중에는 눈치채고 나를 찾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죄 진 사람처럼 나 혼자 숨바꼭질했다. 아이고 나이 처먹고 이리저리 살피면서 배 안에서 숨바꼭질하는 내 신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