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November 18, 2017

독자의 궁금증

기숙사 분위기가 술렁거리며 어수선하더니 하나둘 떠나고 학교는 텅 비었다. 닫힌 카페테리아 안을 기웃거리다 아쉬운 듯 뒤 돌아 나와 방에 굴러다니던 초콜릿으로 요기했다. 카페테리아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던 미국에서 처음 맞은 롱아일랜드 가든시티에서의 땡스기빙은 배고픔으로 기억된다.

혼자 텅 빈 방에 있는 것이 석관 속 어둠으로 들어가 눕는 듯해서 늦가을 추적추적 내린 비에 젖은 낙엽을 밟으며 학교 주위를 맴돌았다. 훤히 불 켜진 창안을 통해 벽난로 가에 모인 화기애애한 이웃들을 흘긋 들여다보며 진한 외로움에 가슴이 시려 왔다.

누군가가 불러준다면 서슴지 않고 달려가고 싶은 날이었다. 초대받은 집 거실에서 담소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따뜻한 물에 손 담그고 설거지 거드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으련만…. 갈 곳도 부르는 사람도 없었던 시절이었다.

행사 많은 시집이 지겨워 연말이 오는 게 싫다. 시집 식구 때문에 병원에 입원하고 싶을 정도로 지긋지긋한 연휴였다. 영어를 할 줄 몰라 말이 통하지 않는 시집 식구들과 만나기 싫다. 땡스기빙엔 친정에 가기로 했는데 화난 시어머니 때문에 가시방석이었다.’ 연휴 때마다 며느리들의 입에서 쉬지 않고 불평이 쏟아져 나온다.

아들만 둘인 내가 며느리를 본다면 들어야 할 불평들이겠지? 한 해에 한두 번 만 그것도 며느리가 원할 때만 만난다면 불평을 듣지 않을 수도 있을까? 비용을 내가 부담하고 명절엔 온 가족이 크루즈 식당에 둘러앉아 식사한다면 그것도 며느리가 가겠다는 전제하에, 그래도 아닌가? 며느리는 시부모와 크루즈 타는 것도 싫고 친정에 가서 연휴를 보내고 싶은데 노부부가 집에 우두커니 있으면 가시방석일 테니 사라져 줘야겠지? 그 옛날 명절 때면 시도 때도 없이 드나들던 방문객이 마뜩잖아서 엄마와 함께 훌쩍 온천으로 떠나시던 친정아버지처럼.

불행인지? 다행인지? 우리 아이들은 결혼할 생각이 없는듯하다. 나 또한 아이들이 결혼해도, 하지 않아도 그만이다. 나는 유학 생활이 너무 외로워서 했다지만, ‘오라는 데도, 해야 할 일도 많아 바쁘고 삶이 즐거운 아이들이 굳이 결혼이 필요할까?’를 생각하며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한다.

 아들들 나이가 꽤 됐을 텐데 왜? 아직도 결혼하지 않았느냐?”며 지난번 독자분을 만났더니 의아해하셨다. “제가 결혼도 늦게 하고 아이들도 한참 후에 낳아서 아직 서두를 나이가 아니다.”라고 대답했지만, 전혀 예상치 못했던 독자의 궁금증에 내가 더 당황했으니….

신문에 난 내 글을 읽고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다

Saturday, November 4, 2017

나의 신경치료제

! 좋다. 좋아. 화장실 봤어? 우리 집 큰방보다 더 넓은 것 아냐? 시트 좀 봐.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꿔 준다는 카드도 있어요. 아니 이렇게 좋은 것을 바꿔 달라는 사람들도 있나?” “도대체 이거 얼마짜리 호텔이야?” “아이가 예약했는데.” “이 녀석이 너무 오바한 것 아니야?” 독일 함부르크에서다.

뉴멕시코주 산타페이로 전시회 하러 갔을 때 묵었던 호텔 다음으로 이렇게 좋은 호텔에 머물기는 세 번째다. 신혼여행을 가지 못한 나는 비싼 호텔에 들어설 때마다 구혼 여행이라.’ 며 아깝다는 미련을 버리지만 비싼 곳 그리고 값나가는 물건에 둘러싸여 느끼는 불편한 기억들을 떨쳐내기란 쉽지 않다.  

우리가 LA에 간다는 소식을 전하면 시어머니는 몇 날 며칠을 가자미 삭히시고 무채 썰어 함경도식 가자미식해를 뉴욕에도 가져가라고 여러 병 준비하신다. 어머니 말만 믿고 따라 하다 가자미 곰 삭히는 시간을 조절 못 해 아까운 재료를 버린 자식들은 누구는 더 줬네. 조금 주네. 투덜대다가 앉은 자리에서 거덜 낼 정도로 가자미식해를 좋아한다.

이런 별미의 식해를 아이스박스에 넣어 어머니가 LA에서 산타페로 향하는 렌터카에 실었다. 가다가 아무도 없는 데스밸리 (Death valley) 인근 사막 야자수 아래에서 먹으면 냄새가 안 난다며. 식해를 곁들인 하얀 쌀밥을 먹고 포만감에 사막 모래밭에 누워 찜질했다. 차내에서 가리키는 밖 온도가 거의 120도에 육박했으니 천연 찜질방이 따로 없었다.

전시회를 위해 화랑에서 잡아 준 산타페 근사한 호텔에 도착해서부터가 문제였다. 나가고 들어 올 때마다 발렛파킹만 해야 한단다. “식해 냄새~” 화들짝 놀라며 남편과 얼굴을 마주 보다 후다닥 창문을 열고 부채질했지만, 사막을 지나며 더욱 삭혀진 냄새가 터질 듯했다. 결국엔 산타페를 떠날 때까지 차를 쓰지 못했던 불편한 기억이 있다.

엄마, 아빠도 인제는 안전하고 근사한 호텔에서 머물러야 한다.’며 아이가 예약한 함부르크 비싼 호텔은 너무 좋아 밖에 나가기도 아깝고 그렇다고 관광을 할 수 있는 시간을 허비할 수도 없고. 그 넓은 화장실 안에는 생전 써 보지 못한 값나갈 것 같은 것들로, 써도 되는지? 아닌지? 수도꼭지는 뭐가 그리 많고 복잡한지 이걸 틀었다가 저걸 잠갔다가. 망가지는 것은 아닌지? ‘냉장고 안의 것만 건드리지 않으면 더는 지불할 것이 없다.’는 상식 정도는 있지만 그래도 혹시나 디파짓한 100유로에서 빼 나갈까 봐 고민했으니.

그래서 예전에 친정엄마가 끄덕하면 난리 쳐대는 나에게 성질 죽이는 한약을 먹여야 한다.’고 했나보다. 그 성질 죽이는 약이라는 것이 지금의 나에게는 술. 한 잔의 술이 들어가면 너무 생생히 살아서 번득이며 부딪치던 신경이 축 늘어지며 세상 모든 것을 용서하니 한두 잔의 레드와인은 나의 신경치료제로 항상 끼고 살수밖에

Saturday, October 21, 2017

꿈 속의 자유부인

결혼이래, 가장 여유롭고 찬란한 9월이었다. 혼자였기 때문이다. 밥도 청소도 빨래도 할 필요 없을뿐더러 도시락 싸야 할 아침엔 산책하고 저녁때는 발길 닿는 데로 이리저리 쏘다녔다.

이렇게 혼자 있길 좋아하는 나는 왜 결혼했을까? 영주권 받으려고? 나이든 부모 걱정을 덜어드리려고? 내 삶을 혼자 짊어지고 가기 버거워서? 더는 짝을 찾아 방황하기 싫어서?

그까짓 것은 받지 않아도 현실에 적응 잘하는 나는 어디선가 그럭저럭 잘살고 있을 게다. 아버지는 결혼하지 않아도 좋고 오히려 무자식이 상팔자라며 나이 먹어가는 딸을 달래려는지 아니면 진심에서 그러는지 마음대로 훨훨 날면서 살라고 했다. 내 인생은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한다는 책임감은 오히려 가난한 화가와 결혼하고 아이 낳은 후 더욱 무거워졌다. 그러면 더는 짝을 찾아 방황하기 싫어서 결혼했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꿈속에서 나는 항상 결혼을 하긴 했던 것 같은데 왜 혼자일까?’를 곰곰이 생각하는 싱글로 허전하긴 하지만, 자유로운 미혼으로 등장한다. 현실에선 지랄 같은 남편 비위 맞추다 지친 기혼이지만.

침묵으로 일관하는 하루하루를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자고 싶을 때 잤다. 장도 보지 않고 냉장고를 탈탈 털어 비우며 아무것이나 배가 고프면 먹었다. 내가 하고 싶은 나만을 위한 일만 했다. 남편 눈치 볼 필요도 없고 함께 뭘 하자고 건의하다 퇴짜 맞을 일도 없다. 어두운 숲속을 지나다 갑자기 쏟아지는 햇볕 아래 웃음 지며 좋다. 좋아!’를 혼자 주절대는 관객 없는 무대에 선 판토마임 주인공 같았으니!

아이 둘 제 밥벌이 잘하고 남편도 작업에 전념하며 마지막 피치를 올리고 있다. 나도 그러고 싶은데 밥때가 되면 밥해야 하고 남편이 지나간 자리를 치워야 하니 작업 하다가는 돌아오고를 반복하는 삶에 지쳤다고나 할까?

아무튼, 결론은 자유부인의 삶을 위해 낸 아이디어가 작품에 전념하고 싶은 남편과 통했으니. 하하하 세 끼 도시락을 싸주면 1, 다섯 끼 도시락을 준비하면 2, 일곱 끼 도시락을 들고 스튜디오에 가면 3박 후에 집에 오는 남편, ‘이 여사, 이제 식량이 다 동났는디 집에 가도 될까?’ 부드럽고 상냥한 목소리로 전화한다.

어쩌 끄나. 배때기 고파서 글제. 구월 중순 아직 쨍한 더운 날에 고생했제. 긍께 마누라 있을 적에 잘하는 것을 어째서 몰랐으까 이. 서방님, 기왕이면 언능 집에 오시오. 눈치 볼 것 없이.

Saturday, October 7, 2017

우리는 누구인가?

아이들 등에 무언가 붙어있어! 한국을 처음 방문한 외국인들의 눈에 비친 아이가 아이를 등에 업고 있는 묘한 모습에 대한 놀람이다. 옛날 흑백 사진을 보면 우리에게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하는.

아이를 많이 낳던 예전엔 엄마가 들일이나 집안 살림할 때 너 나 할 것 없이 언니가 동생들을 업어 키웠다. 업고 밖에 나와 공기놀이도 하고 줄넘기하다 동생이 포대기에서 빠져나갔는지도 모르고 놀던 시절 말이다.

친구가 허구한 날 동생 다섯을 등에 업어 키웠단다. 별 투덜거림도 없이 동생들을 잘 보살피는 모습을 눈여겨본 친척들이 착하다고 몇 푼 쥐여주며 자기 아이들도 맡겼을 뿐만 아니라 이웃 아이까지 업어줬다니! 업힌 아이가 오줌을 싸서 등줄기가 뜨뜻해지고 축축해질 때까지도 업고 있다 등에 업힌 아이와 함께 훌쩍거린 적도 있단다.

지금도 그녀는 주위의 모든 이들을 어릴 적 동생과 친척 그리고 이웃 아이들을 돌보듯 한다. 모임이 있을 적마다 밥값을 아예 손에 쥐고 아무도 못 내게 해서 본의 아니게 몇 번 얻어먹었다.

얻어먹었으니 이번에는 내가 사겠다며 만나자고 했다. 식당 입구에서부터 자기가 사지 않을 거면 들어가지 않겠다는 것이 아닌가. 배가 고프다며 간신히 달래서 식당에 들어갔지만, 현찰을 손에 쥐고 자기에겐 더치페이조차도 없단다.

아이들을 업어서 잘 돌보니 친척들에게 용돈을 틈틈이 받아 주머니가 항상 두둑해서 한국에서부터 밥값은 자기가 냈고 그래야 마음이 편하단다. 그러면 밥을 얻어먹은 불편한 내 마음은 헤아리지 않냐?고 반문했다.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 밥을 사며 위로해주면 위안을 받지 않겠냐며 언젠가는 기회가 있을 거란다.

내가 아는 그녀의 부모는 이미 예전에 돌아가셨는데 이건 또 무슨 소린가? 마음씨 고운 그녀와 가까이 지내고 싶지만, 내가 먹은 것은 내가 부담하는 것이 속 편한 내 성질에 과연 관계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우리가 누구인가?에 대해 한 현자가 이렇게 말한 구절이 그녀를 보며 떠올랐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있었던 모든 일과
우리 눈앞에서 일어난 일들과
우리가 겪은 일들을 다 합친 것이오
우리에게 영향을 끼쳤던 모든 것들이며
우리가 영향을 끼친 모든 존재요
우리가 사라진 후에도 일어날 모든 일이며
우리가 없었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모든 일이오

Saturday, September 23, 2017

이리 흔들 저리 흔들

신나는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면 두꺼운 이불을 걷어차고 나온 듯 몸이 가벼워 날아갈 것 같다

보름간의 크루즈 안에서 하루에 30분씩 여섯 번 있는 댄스 레슨에 한 번도 거르지 않고 흔들었다. 레슨 시간만 되면 몸이 근질거려 선생이 시작을 알림과 동시에 벌떡 일어나 무대로 나갔으니.

춤 배워서 뭐 하려고? 춤바람나려고? 예전 우리 동네 답십리에 남편 베트남이나 사우디에 보내 놓고 장바구니 들고 콩나물 사러 가는 길에 야메 댄스홀 드나들다 바람나 쫓겨난 여편네들이 하나둘인 줄 알아. 정신 차려. 조신하라고.” 잔소리하는 남편 심기 건드리기 싫어 배만 타면 공짜로 배울 기회를 참가했다가는 그만두고를 반복했었다.

 이번 배에서는 춤추는 것 말리지 마. 나 좀 내버려 두라고. 아이들 결혼도 시켜야 하는데 배워야지. 여기 결혼식에는 춤추는 코스가 있더라. 내가 함께 추자는 것도 아닌데 왜 못 추게 하는데~”

레슨이 진행되다 보면 파트너가 필요하다. 부부들도 참가하지만, 대부분 여자 인원이 더 많다. 나처럼 파트너 없는 이탈리아에서 온 음악선생과 한 팀이 되었다. 덩치도 크고 킥복싱 했다는 그 여자는 굳이 작은 체구의 나더러 남자 역할을 하란다. 어쩌다 그 여자가 빠지는 시간엔 스페인에서 온 열 살짜리 여자아이와 파트너가 되었다. 오히려 어린아이는 분위기에 따라 서로 역할을 바꿔가며 나를 잘 리드해 줬다. 자연 풍광만 있는 무료한 노르웨이 여행에서 이마저도 없었으면 어찌했을꼬.

배에서 내려서도 여전히 흔들거리는 듯 피곤했지만 센트럴팍 110 가와 5에브뉴의 페스티벌에 갔다. 음악이 시작되자 처음엔 서너 사람이 나와 추더니 조금 지나자 남녀노소가 흔들며 신이 났다. 그중에서도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듯한 주홍색 원피스 입은 여자와 젊은 동양 여자가 어찌나 자유자재로 잘 흔드는지 나도 저렇게 출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넋을 놓고 쳐다봤다. 동양 여자야 젊어서 늘씬하다지만 춤으로 단련된 몸매의 할머니도 젊은이 못지않게 날씬했다.

배 나온다고 허리 운동하고, 팔 처진다고 철봉에 억지로 매달려 하나, 세느니 좋아하는 춤 추며 날씬하게 신나는 여생을 보낼 수 있다면 좋겠는데. 게다가 그 할머니 분위기 또한 예사롭지 않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듯 자연스러운 몸매에서 내뿜는 자신감을 보면서 처음 크루즈 탈 때부터 배웠으면 지금쯤은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나도 나가 출까?” “조신하게 가만있어.” 하고는 내 옷자락을 잡는 남편만 아니면 그냥 흔들었으면 좋겠는데. 언제까지 조신해야 하는 건지? 이 나이에도 조신이 과연 필요한 건가? 냅다 흔들면 좀 어때서!

Saturday, September 9, 2017

합장하면 다야!

녹색 바탕에 보일 듯 말 듯 한 작은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산책하러 나갔다. 무더위가 계속되다 지난 밤 번개를 동반한 비를 맞고 난 풀잎들이 생기를 띠며 부쩍 자란 듯 길가로 뻗어 나와 옷깃을 스친다. 풀색 옷을 입은 나도 그들과 한 통속인양 축축한 땅을 소리 죽여 밟는다.

창문 열었지? 모기에 뜯긴 것 좀 봐.’라고 소리치다 ! 창문과 모기에 대해 잔소리하지 않기로 했는데.’ 하고 입을 다물었다. 저 인간은 물지 않고 나만 무는 모기가 창문만 열면 기다렸다는 듯이 들어온다. 그런 날 밤은 모기에게 뜯겨 잠을 설친다.

창문 열지 말라고 아무리 말하고, 타이르고, 빌어봐야 소용없다. 옛날 집이라 망이 없는 탓에 답답하거나 비 온 뒤 날씨가 선선하면 전혀 함께 사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창문을 활짝 열어져 키고 시원하다고 좋아하는 남편. 자기만족만을 위해 행동하는 이 인간의 뇌 구조를 바꾸느니 차라리 모기에 뜯기며 사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하에 포기한 것이 언제였던가!

모기 없는데.’ 하고 잡는 척하다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눈치채고 다른 방에 가서 코 골며 자는 남편을 미워하다 잠이 들었다. 6.25 때 멀리서 가느다랗게 들려오는 미군 쌕쌕이 소리와 비슷하다는 시어머니 표현처럼 욍~하며 내 넓은 이마를 무는 소리에 불을 켜고 일어났다. 침대 머리맡에 포만감에 취한 모기가 앉아있다. 그냥 냅다 손바닥으로 갈기니 흰 벽에 핏자국이 그어진다. 다시 잠을 자려는데 가려워서 잘 수 없어 일어났다. 끓는 물에 은수저를 담갔다가 물린 곳마다 뜨거운 은수저 찜질을 했다. 가려움은 멈췄지만, 잠이 확 달아났다.

늦잠에 취한 내 머리맡에 커피잔을 놓으며 남편이 합장하듯 두 손을 모은다. 창문 열어 모기에 뜯긴 마누라에 대한 미안함보다 도시락에 대한 애착으로 저런 행동을 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어쩌겠는가. 그나마 잘못 할 적마다 합장하듯 두 손 모으니. 후딱 일어나 부엌으로 향한다.

남편이 나간 후 다시 잠을 잘까 말까 망설이다 산책하러 나갔다. 바람이 이리 시원할 수가! 나무들도 잡초도 새도 다람쥐도 좋아서 난리다. 평소에는 맞은편에서 사람이 오면 인사도 주고받지 않고 아예 선글라스 끼고 걷거나 땅만 보고 걷던 사람들이 굿모닝하는 게 아닌가. 시원한 바람을 쐬고 나니 창문을 확확 열어져 키고 싶은 남편의 심정이 이해된다.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하룻밤 설치고 나면 잠의 루틴이 깨져 제자리로 돌아가려면 며칠이 걸리는데. 

툭하면 두 손 모으고 머리 조아리며 잘못했다는 표정 짓는 남편을 내가 봐주지 않으면 누가 봐주랴. 그런데 점점 지쳐간다.

Saturday, August 26, 2017

삼거리에서

산책길 가로등이 켜졌다. ‘아니 벌써 등이 켜지다니! 하지 지난 지가 언제더라? 등이 고장 났나?’ 낮이 점점 짧아지다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겠지. 그러나저러나 그녀를 언제나 다시 만나려는지?

항상 그렇듯 맨해튼 리버사이드 공원을 콜롬비아 대학 쪽으로 걷고 있었다. 호리호리한 동양 여자가 맞은편에서 걸어온다. 멀리서 봐도 지적이고 남다른 분위기라 인사 할까 말까 망설이다 겸연쩍어 살짝 웃으며 지나쳤다. 다시 다운타운 쪽으로 내려오는데 좀 전에 마주친 그 여자가 또 다시 반대 방향애서 오고 있었다.

혹시 이 선생님 아니세요?’ 라고 내 옆을 스치는 순간 한 톤 높은 상냥한 목소리로 물어오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랐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를 어떡해?’라고 물었다. 내가 리버사이드 공원을 산책한다는 신문에 나간 내 글을 읽고 언젠가는 산책길에서 마주칠 것 같아 주의 깊게 살폈단다. ‘오늘은 이상하게 앞에서 걸어오는 사람이 틀림없을 것 같다.’는 직감에 용기 냈단다.

내가 웨스트 96가 조계사 근처에 사는 것 같아 법당 가는 길에 연락 온 독자를 만나 차를 마신 적은 있다. 그리고 예전 퀸스 어느 성당에서 내가 라인댄스를 춘다는 신문에 난 글을 읽고 독자가 찾아와 함께 춤을 추다 친한 친구가 된 경우는 있지만, 산책하다가 이런 일이 생길 줄이야!

매일 같은 길을 쉬지 않고 반복해 걷는 나에게 존비 같다.’며 지루하지 않냐고 했던 지인의 말이 떠오를 때마다 나는 어쩌면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것을 즐기는지도 모른다.’는 체념으로 걷고 걷던 산책길이 그녀와 마주친 후로는 예전 같지 않다.

날씬한 여자가 보이면 그녀가 아닐까? 그녀와 마주치기를 기대하며 그녀가 즐겨 앉아 쉰다는 산책길 삼거리 메기 스미스라는 사람이 기부한 의자에 앉아 산책 시간을 연장하고 두리번거리며 그녀를 기다린다.

지금은 뉴욕으로 돌아와 일만 하는 작은 아이는 열네 살 때부터 스물여섯 살까지 틈만 나면 세상 곳곳을 돌아다녔다. “엄마 혼자 여행하는 거 너무 외로워요. 목적지에서 누군가를 만날 계획이 있다면 모르겠는데 정처 없이 혼자서 떠돌아다니는 것에 이제는 지쳤어요.” ‘남미에서는 버스가 제시간에 오지 않아 17시간을 혼자 걸은 적도 있었다.’며 여행이 고행이라는 듯 당분간은 한 곳에 머물며 돈 벌어야겠어요.’ 했던 아이의 말에 수긍이 갔다.

그녀를 만난 이후로는 무작정 걷기만 했던 산책이 기다리는 설렘, 만나지 못한 아쉬움이 더해지며 그녀와의 만남을 기대하지만, 좀처럼 쉽지 않다. 가을이 오고 해가 짧아지면 더욱 어려울 텐데. ‘오늘도 만나려나. 기다려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