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December 29, 2023

개고생


서울에서 온 화가 전시회였다. 화가 부인을 소개받았다. 훤칠한 미모의 지적이며 단아하고 선한 인상이다. 그녀는 사려 깊은 모습으로 조용히 사람들 말에 경청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 요 방정맞은  입에서 

“저도 화가 와이프이지만 화가 부인하느라 개고생 많이 하셨지요?”

눈물이 핑 돌아 글썽이는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그녀가 말했다.

“개고생’이라는 말을 들으니 마음 편히 터놓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직장 다니며 남편 서포트한 그녀의 사연이 쏟아져 나왔다.


정말이지 화가 와이프 하기 쉽지 않다. 화가라는 직업은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수입이 일단 없다. 꼴에 풀타임으로 작업하고 싶어 한다. 큰 작업 공간이 있어야 한다. 재료비는 말하면 잔소리다. 차라리 컴퓨터 하나만 들고 작은 공간에서 글 쓰는 소설가 부인이 훨씬 낫지 않을까? 그들도 그들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만, 커다란 작업 공간에서 수많은 작품을 만들고 없애고를 반복해서 겨우 만들어 낸 괜찮다는 작품도 팔린다는 보장이 없다. 


전시를 위해 사진 찍어야 하고 팸플릿 만들기 위해서는 글을 받아야 하고 운반해야 하고 오프닝 준비해야 하는 과정에서 비용이 엄청나게 깨진다. 뭐 유명해지면 갤러리의 도움을 받기는 하지만, 그전까지 뒤에서 물심양면 지원하는 부인들이야말로 개고생이다. 유명해지는 것은 로또 맞을 확률이다.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화가가 되기 위해 달리기 시작한다. 그중에서 많은 이들이 중간에 떨어져 나가고, 또, 또 떨어져 나간다. 골인하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부부가 합심해서 달려도 골인 언저리에 도달하기가 무척 힘들다. 


요행히 화가로 이름이 조금  날리면 혼자 노력해서 달려간 양 거들던 부인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기 일쑤다. 그나마 조금 성공한 화가의 말이 생각난다.

“마누라 얼굴만 봐도 개고생하던 시절이 떠올라서 싫어.”

싫은 마누라 피해 밖으로 나돌다가 젊은 여자와 그렇고 그런 관계로 이어진다. 결국엔 조강지처는 버림을 받는다. 다행히 옆에서 후원한 와이프를 불쌍히 고맙게 여기는 화가도 있지만, 많은 남자가 그렇듯 성공하면 주위에 젊은 여자들이 달라붙는다. 젊은 여자가 좋지, 늙은 마누라가 좋을 리 없다. 하지만, 조강지처 버리고 잘된 화가를 못 본 것 같다. 게다가 화가는 자기는 재능을 선택받아 남과 다른 일을 하는 양 잘났다고 타협하지 않는다. 예민한 성질 또한 부인이 개고생하는 데 한몫 거든다. 글쎄 다른 화가들은 모르겠지만, 내 남편의 아주 작은 예를 들어보겠다.    


모처럼 식당에 갔다. 밑반찬이 주르르 나왔다. 

“이 반찬들 들락날락했던 것 아니야?”

“맛있어 보이는데 왜 또~ 밑반찬이 무슨 잘못이라고.”

조용히 깍두기만 우적우적 씹는 찌그러진 얼굴색이 좋지 않다. 

“항상 당신이 가자는 식당에 가다가 처음 내가 오자고 한 식당이잖아. 밑반찬 많이 나오는 식당이 싫다고 성질내는 인간도 있을까? 먹지 마. 내가 다 먹을게”

나는 반찬 접시마다 다 가져다 싹싹 먹어 치웠다. 남편이 가고 싶어 하는 김치 한 가지 나오는 설렁탕집으로 가지 않았다고 트집 잡기 시작하더니 짜증 내며 하루를 망친다. 

  

‘아이고 내 팔자야. 차라리 산에 들어가 도를 닦아도 내 신세보다는 낫겠다. 내 나이도 절에서 받아줄까? 금전 두둑이 가져가면 받아줄까?’ 

항상 어딘가 튈 곳이 없나 두리번거리며 푼수처럼 ‘개고생’이라는 헛소리나 하고. 헛소리하며 스트레스 풀지 않으면 화가 부인으로 살아남기 정말 힘들어서다.

Going through very hard

It was an exhibition of an artist from Seoul. I was introduced to the artist’s wife. She is tall, beautiful, intelligent, and has a graceful and good-natured appearance. She was quietly listening to people with her thoughtful look. I blurt out. 

“I’m also an artist's wife, but you went through a lot of hard times that you’re an artist's wife, right?”

She stared at me with tears eyes and said,

"Hearing the word 'pain in the ass' makes me feel like I can say it out loud."

Her story of working and supporting her husband poured out.


It's really not easy to be an artist's wife. As an artist, there is no regular income. They want to be full time artists. They must have a large work space. Talking about the cost of materials is a nag. Wouldn't it be much better to be a novelist's wife who writes in a small space with just one computer? They may have their own circumstances, but there is no guarantee that even a decent work created by repeatedly creating and discarding numerous works in a large work space will sell.


The cost is enormous as they have to take photos for the exhibition, get texts to make pamphlets, transport them, and prepare for the opening. Well, when they become famous, they get help from the gallery, but until then, the wives who support them financially and spiritually behind the scenes are really suffering. Becoming famous is the chance of winning the lottery. After graduating from art college, they started running to become an artist. Among them, many fall away, and again, and again. Even if a couple runs together and does not give up, it is very difficult to reach the finish line.


If the artist is lucky enough to make a name for himself, his wife ends up as a duck egg in the Nakdong River. This reminds me of the words of a somewhat successful artist.

"I hate it when I see my wife's face because it reminds me of the days when I was in hard times."

He goes out to avoid a wife he doesn't like, and ends up in a relationship with a young woman. In the end, his wife is abandoned by him. Fortunately, there are artists who are grateful to their wives for their support, but like many men, when they become successful, young women stick around them. However, I don't think I've seen a successful artist after throwing away the supporting wife.

Moreover, the artist's sensitive temper also plays a part in his wife's difficulties. Well, I don't know about other artists, but let me give you a very small example from my husband.


We went to the restaurant for the first time in a while. Side dishes came out.

"Didn't these side dishes go in and out?"

"It looks delicious. What's wrong with side dishes?"

His crumpled face of quietly munching on only the radish kimchi is not good.

"Is there anyone who gets upset because they don't like a restaurant with a lot of side dishes? Don't eat it. I'll eat it all."

I brought every side dish and ate them all up. He starts blaming me for not going to a seolleongtang restaurant with one kind of kimchi that my husband wants to go to, and he gets annoyed and ruins the day.


"Oh, my fate. I'd rather be in the mountains practicing the Tao than in this position. Do you think the temple will accept me at my age? Would they accept me if I had a lot of money? “

I'm always looking for a place to escape, and talk like a fool of nonsense. It's because it's really hard to survive as an artist's wife unless I talk nonsense and relieve my stress.

Friday, December 15, 2023

남자 사람 친구


예전에 친구들과 함께 만나며 좋아하던 선배가 있었다. 그도 내가 싫지 않은지 개인적으로 연락하곤 했다. 그의 마음을 확인하고 싶었다. 어느 날, 모임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그에게 물었다. 

“우리는 어떤 사인 가요?”

“친구 사이지. 그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전에 데이트하다가 헤어진 여자가 다시 잘해보자고 연락해 온 적이 있었어. 나는 사귀다가 끝난 여자에게는 다시 연락하지 않아. 하지만 친구와는 헤어짐이 없는 거야.”

“혹시 우리가 친구로 지내다가 헤어지더라도 꼴사납게 끝내지는 말았으면 좋겠어요.”

그와 어두워지는 길을 걸으며 ‘이 남자는 나를 좋아하지 않고 그냥 친구로만 생각하는구나!’ 왠지 모를 곤혹스러움에 구두코만 쳐다보며 조용히 걸었다. 뭔가 머릿속이 마무리되지 않은 채 버스정류장에서 손을 흔들고 그와 기약 없이 헤어졌다. 


그렇게 헤어진 그가 30여 년 만에 뉴욕을 방문해서 나에게 전화했다. 

“나 기억해” 귀에 익은 목소리다.

“아아~ 기억나요.” 

“어떻게 내 목소리를 금방 알았어?” “

“낮으면서도 달콤한 목소리가 매력적이라서. 하하. 반가워요. 어디예요?” 내가 묻자, 그가 대답했다.

“우리 만나서 이야기하면 안 될까?”

“전화로 더 이야기할 수는 없나요?” 나는 그와 길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럴 일이 있어서. 만나서 이야기해 줄게.”

‘한때 좋아했던 남자를 다시 만날 수 있다니! 그도 나를 잊지 못하고 살다가 연락했을까?’ 여름 안개 저편 먼 곳에서 아른거리던 그리운 사람이 갑자기 곁에 다가와 속삭이는 듯 기분이 들떴다.


카페에 들어서는 그가 싱거운 미소를 지으면서 다가왔다. 물기 빠지기 시작하는 사과처럼 조금은 쪼그라든 모습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도 색이 바래고 비틀어지기 시작하는 사과 꼭지 같다. 그의 뒤로 여자가 주춤거리며 다소곳이 따랐다.  

“내 와이프야.” 그가 와이프와 함께 오리라고는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참한 인상의 여자가 다소곳이 인사했다. ‘이런 현모양처를 찾으시느라 나에게 ‘친구’를 강조했구나.’ 


나는 그동안 뉴욕을 방문했던 그와 내가 알던 친구들 소식을 신이 나서 들려줬다. 그런데 그의 부인이 내가 한 이야기를 통역하듯이 간간이 그의 귀에 대고 속삭이는 게 아닌가!  이상해서 물었다. 

“귀가 잘 들리지 않아서. 전화상으로 이야기할 수 없었어.”

나는 그의 얼굴 가까이 몸을 들이밀며 높은 톤으로 또박또박 잘 들으라고 지껄여 댔다. 그는 고개만 끄덕일 뿐 말이 없다. 나는 저절로 맥이 풀리며 조용해졌다. 


만나기 전 희망이 잠시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다가 슬금슬금 빠져나가며 시계 추가 멈춘 듯 그와의 시간이 뚝 멈췄다. 그는 나의 수다가 끊긴 분위기에 눌렸던지 시계를 고갯짓으로 가리키더니 싱거운 표정으로 웃으며 일어났다.


‘남녀 간의 친구 사이란 애인을 만나는 동안 구석에 처박아 두었다가 애인과 헤어지면 들쳐 보는 별 볼 일 없는 사이? 오랜 세월 구석에 처박혀 둔 내가 잘 있나 확인하고 싶어 만나자고 했나?’ 만남과 헤어짐처럼 분홍빛으로 타오르던 노을이 어둠 속으로 차갑게 사라지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씁쓸했다.

A male friend

There was a senior I used to like while meeting with my friends. He used to personally contact me as if he liked me. I wanted to make sure of his feelings. One day, on the way home from a meeting, I asked him. 

"What kind of relationship do we have?"

"Friends."

He replied without hesitation. 

"I've had girls I've dated and broken up with reach out to me before to see if we could work things out again. I don't reach out to girls I've dated and broken up with, but I don't break up with friends."

"Well, if we do end up breaking up as friends, I hope it doesn't end ugly."

Walking on the dark path with him, 'This man doesn't like me and thinks of me as just a friend!' I walked quietly in some mysterious embarrassment. I waved at the bus stop with something unfinished in my mind and broke up with him.


After we broke up, he visited New York for the first time in 30 years and called me.

“Do you remember me?” It’s a familiar voice.

“Ah~ I remember.”

“How do you know my voice so quickly?” “

“Because the low yet sweet voice is attractive. haha. Nice to hear from you. where are you?"

I asked, and he answered.

“Can we meet and talk?”

“Can we talk more on the phone?”

I wanted to talk to him at length.

“Because something like that happened. “I’ll meet you and talk to you.”

I can't believe I can meet a man I once liked again. Because does he contact me while living without forgetting me?' I felt excited, as if a nostalgic figure from far away in the summer haze had suddenly come to my side and whispered to me.


Entering the cafe, he approached with a bland smile. He reached out his hand a little shrunken like an apple that began to drain. Behind him, the woman faltered and followed somewhat neatly.

"It's my wife."

Why didn't I think he'd come with his wife? A woman with a real impression greeted me rather politely. 'You've emphasized 'friend' to me in search of such a real woman.'


I excitedly shared the news about the friends we knew who had been visiting New York. But isn't his wife whispering in his ear as if she were interpreting what I said? I asked because it was strange.

"I couldn't hear well. That's why I couldn't talk on the phone."

I brought my body close to his face and told him to listen carefully in a high tone. He just nods his head and doesn't say anything. I naturally became quiet.


Before meeting, hope wandered through my head for a while, then slowly slipped out, and the time with him stopped as if the pendulum had stopped. As if he had been pressed by the atmosphere where my conversation had ended, he pointed his head at the clock and woke up with a bland look on his face. The sunset, which burned pink like a meeting and a breakup, faded into darkness. It was bittersweet.

Friday, December 1, 2023

힙(hip)한 한옥마을


”군대 가도 괜찮아요. 한국에 가고 싶어요."
"한국 사람들은 스마트해요. 음악, 드라마, 영화 잘 만들어요. 나는 한국 이름을 가진 것이 근사해. 엄마, 온 가족이 함께 한국에 가자.”

한류 덕분인지 아이들은 자신들이 한국인임을 무척 자랑스러워한다. 우리는 미국에서 결혼했고 한국에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 물론 아이들도 한국 호적에 올리지 않았다. 남편이 영주권자일 때 아이를 낳아서 홍준표 법(지랄 같은 법)으로 이중국적이 되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한국 이름이라서 잘못 걸리면 군대에 끌려갈지도 모른단다. 아이들 말에 힘을 얻어 일정을 짜라고 했다. 물론 우리 부부가 여행 비용을 전부 지불하는 것이다.  

서울 첫날, 종로3가 인사동에 있는 호텔에 짐을 풀고 저녁 먹으러 밖에 나갔다. 그야말로 불야성이다. 젊은이들로 넘쳐난다. 그렇게도 많은 사람이 몰려다니며 술 마시고 취해서 떠들어도 주변에 경찰 한 명 볼 수 없었다. 밤 문화를 활기차게 사고 없이 즐기는 그들이야말로 동방예의지국의 후손답다.


다음 날 새벽, 남편과 해장국 집을 찾아 나섰다. 그 많던 음식점 앞 포장마차가 포장을 내려서인지 완전히 다른 길거리로 보였다. 청소부 아저씨들이 전날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쓰레기를 치우는 고요한 고국을 걷는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았다. 60년 된 후줄근한 국밥집에 들어가 막걸리와 국밥을 먹었다. 가격도 싸고 꽤 맛있다.  


아이들과 함께 북촌 한옥마을 쪽으로 걸었다. 골목을 돌다가 아이들은 빵집으로 나는 그 옆 김밥집에 들어갔다. 김밥을 싫어하는 남편은 ‘김밥 먹으려고 한국에 왔냐?’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래, 나 김밥, 오뎅, 떡볶이 먹고 싶어 한국에 왔다. 어쩔래.’ 하는 심사로 남편과 눈 맞춤을 피했다. 밖에 우뚝하니 서 있던 남편이 슬쩍 들어와 내 옆에 앉았다.  

“그렇게 맛있어?”  

오뎅을 먹어보더니 김밥도 집어 먹었다. 아이들도 빵을 사 들고 와서 합세했다. 맛있다고 계속 주문했다.  

“아들이 둘인가 봐요? 나는 셋인데.”

식당 주인아줌마가 물었다. 아줌마의 든든한 아들 셋이 주방과 홀에서 각자 일을 하다가 우리에게 인사했다. 선한 인상들이다. 맘씨 좋은 아줌마의 한마디가 왜 그리도 예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처럼 따뜻하게 들리던지! 여행 중에도 아이들은 아들 셋 아줌마 김밥이 제일 맛있다며 다시 한번 가자고 했지만, 시간상 인사동에는 갈 수 없었다.


저녁에는 호텔 앞, 힙(hip)하다는 익선동 골목을 걸었다. 익선동은 100년 전 서민을 위해 지어진 15평 미만의 조용한 한옥마을이었다. 2010년부터 한옥을 변경한 작은 카페들과 상점들이 줄지어 들어서서 젊은이들의 데이트코스가 되었다. ‘젊음이 좋긴 좋구나.’ 부러운 눈으로 그들을 쳐다보며 우리 부부처럼 나이 든 사람들은 이 시간에 뭘 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The trend hanok village

Thanks to the Korean Wave, my sons are very proud to be Korean.

"Korean people are smart, they make great music, dramas, and movies, and it's cool that I have a Korean name. Mom, let's go to Korea with the whole family."


We got married in the U.S. and didn't register our marriage in Korea. Of course, we didn't register our children in Korea either. I had the children while my husband was a permanent resident, so they became dual citizens under the Hong Jun-pyo law (which is a shitty law). Worse, because of their Korean name, they could be taken to the army if they are caught. 

"I don't care if I go to the army, I want to go to Korea"

Encouraged by their words, I told them to make an itinerary. Of course, my husband would pay for the entire trip. 


On our first day in Seoul, we unpacked at our hotel in Insadong, Jongno 3, and went out for dinner. It's a wild night. It's full of young people. Even with so many people milling around, drinking and getting drunk, there was not a single cop in sight. They are the descendants of the Bureau of Oriental Courtesy, enjoying the nightlife lively and without incident.


At dawn the next day, my husband and I went out to find a place to eat hangover soup. Perhaps because many of the food stalls in front of the restaurants had taken down their packaging, it looked like a completely different street. It didn't feel real that I was walking through my quiet homeland, where street sweepers were clearing away the trash left by people the day before. I went into a cozy 60-year-old soup restaurant and had makgeolli and soup. It's cheap and quite delicious.


I walked with my kids towards Bukchon Hanok Village. After turning into an alley, they went to a bakery and I went into a kimbap restaurant next to it. My husband, who doesn't like kimbap, shook his head with a pathetic expression, 

"Did you come to Korea to eat kimbap?". 

"Yes, I came to Korea to eat kimbap, oden, and tteokbokki, so what?"

My husband, who was standing outside, slipped in and sat down next to me. 

"Is it really that good?" 

He tried the oden and ate some kimbap. The kids joined in. They kept ordering more. 

"You must have two sons, I have three."

The restaurant owner asked. Her three trusty sons greeted us while working in the kitchen and hall. They made a good impression. 


In the evening, we walked through the hip Iksun-dong alley in front of the hotel. Iksun-dong was a quiet hanok village of less than 15 square meters built for the common people 100 years ago. Since 2010, small cafes and shops in converted hanoks have been lining the streets, making it a popular date spot for young people. I looked at them with envy and wondered what older people like us were doing at this hour. I wondered.

Friday, November 17, 2023

우리 부부의 롤 모델 (Role model)

내 나이 서른에 결혼하고 좋아하는 선배님을 롤 모델로 정해놓고 살았다. 그런데 그 선배님이 부인과 이혼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며 말했다. 

“나를 롤 모델로 하지 마. 나는 그럴만한 사람이 못돼.” 

나는 새로운 롤 모델을 찾아 주위 선배님들을 관찰했다. 서너 분이 있었지만, 지금까지 변함없는 분이 조각가 존배 선생님 부부다.


내가 처음 입학 허가를 받은 학교는 롱아일랜드 가든 시티에 있는 아델파이 대학이었다. 한적한 그곳 생활이 너무 지루하고 외로워서 입학원서를 냈던 프렛 대학을 물어물어 찾아갔다. 자그마하고 확신에 찬 한국 여자분이 사무실에서 학생과 이야기하고 계셨다. 조금 기다리다가 사무실을 그냥 나왔다. 후에 그분이 존배 선생님 부인이신 걸 알았다. 프렛 대학 주위가 지금은 고색창연한 브라운스톤 건물들이 즐비한 안전한 동네가 되었지만, 1981년 당시만 해도 머틀과 윌로비 에비뉴에는 택시 운전사도 가지 않을 정도로 험악했다. 환한 대낮에도 은행에서 나오는 학생들을 강탈하던 시절이라 나는 ‘NYU로 편입하는 것이 안전하겠다.’고 결정했다.


남편 덕에 브루클린에 사시던 존배 선생님 댁 망년 파티에 초대받았다. 시계가 자정을 땡 울리면 모두가 새해를 맞이하는 샴페인 잔을 부딪쳤다. ‘집에 잔이 이렇게 많을 수가?’ 어느 해는 백남준 선생님의 피아노 연주를 들으면서 머릿속으로는 ‘유명하다는 분이 왜? 외투 주머니가 찢어져 삐죽 나온 옷을 입고 있을까?’를 생각했다. 


존배 선생님이 코네티컷으로 이사가 신 후에도 수시로 초대받았다. 음식은 최상의 재료로 (된장과 고춧가루는 한국에서 온 것으로) 꽃은 그 시기에 나는 가장 귀한 꽃으로, 집안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잘 꾸며 놓으셨다. 내가 뭘 가지고 갈까 고민하고 있으면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말라.’는 사모님의 연락을 받는다. 오래전 내 개인전에 오셔서는 작품도 사셨다. 댁에 갈 때마다 그 작은 그림은 다소곳이 나를 반긴다. 서너 번 감칠맛 나는 김치도 싸 주셨다. 


1700년대 지어진 고색창연함을 해치지 않고 아늑한 분위기로 리모델링한 공간구조도 일품이다. 드넓은 푸른 정원 끝에 가로지르는 맑은 개울은 도시 생활에 지친 방문객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위안을 준다. 사모님이 만든 음식의 풍미에 빠져든다. 하지만  많이 먹지 못하는 체질 때문에 집에 돌아오면 그 화려한 식탁이 눈에 아른거린다. 집안은 아무나 따라 하거나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감각적이다. 사모님은 세련된 감각 능력을 갖추고 태어나신 것 같다. 


얼마 전, 화가 지인들을 초대하셨다. 그중 사진작가도 있었다. 모처럼 만에 잘 나온 사진을 받았다. 사진 속 모두가 즐거운 표정이다. 특히나 내 남편이 좋아 죽겠다는 표정이다.

“사진 속 당신을 보니까 좋아 죽네. 그렇게 좋아?” 

“존배 선생님 두 분도 변함없이 건강하게 잘 계시는 모습을 보고 기뻐서. 선생님도 존경하지만, 특히나 사모님은 대단하신 분이야.”

“그 두 분이 우리 부부의 롤 모델이시잖아.”

Role models for our couple

When I was 30 years old, I got married and chose my favorite senior as my role model, but when he divorced his wife and went back to Korea, he said. 

"Don't make me your role model. I'm not worthy." 

I observed the seniors around me to find a new role model. There were three or four of them, but the one that has remained the same is Mr. and Mrs. John Pai, a sculptor.


The first school I was accepted to was Adelphi University in Garden City, Long Island. I was so bored and lonely in the middle of nowhere that I visited Pratt Institute, where I had applied for admission. A small, confident Korean woman was in the office talking to a student. After waiting for a while, I left the office. I found out later that she was professor John Pai's wife. The area around Pratt Institute is now a safe neighborhood of quaint brownstones, but in 1981, Myrtle and Willoughby avenues were so rough that no taxi driver would go there. Even in broad daylight, robbers were robbing students coming out of banks, so I decided it would be safer to transfer to NYU.


Thanks to my husband, I used to get invited to the house of prof. John Pai, who lived in Brooklyn, for year-end parties. When the clock chimed midnight, everyone clinked champagne glasses to ring in the new year. I thought to myself, ‘How can there be so many glasses in the house?’ One year, as I listened to Nam June Paik play the piano, I thought to myself, "Why is this famous man wearing a coat with a torn pocket sticking out of it? 


Even after Prof. John Pai moved to Connecticut, I was invited back from time to time. The food was of the finest quality (the miso paste and chili powder came from Korea), the flowers were the most precious flowers available at that time, and the house was decorated beyond description. When I'm thinking about what I'm going to bring to the house, I get a call from Mrs. John Pai's wife saying, "Don't bring anything," They came to my solo exhibition a long time ago and bought a painting. Every time I visit their home, that little painting is there to greet me. Three or four times she gave me kimchi. 


The architecture of the house, which was built in the 1700s, has been remodeled into a cozy atmosphere without losing its original. The crystal clear stream that runs through the vast green garden is a welcome respite from city life. The deep flavors of John Pai's wife's food are enchanting, and I often find myself ruefully recalling all the food I didn't get to eat the day I was invited. Her home is inimitable and unimaginably sensual. She seems to have been born with a refined sense. 


Not long ago, she invited some artist friends over, including a photographer. I received photos that turned out great. Everyone in the picture looks happy. Especially my husband.

"You are so happy to see you in the picture." 

"I'm happy to see that Mr. and Mrs. John Pai are still living well and healthy. I admire him, but especially his wife."

"These two are our role models."

Friday, November 3, 2023

뭘 어쩌려고


이혼한 친구가 혼자 지내다 나이 들어 예전에 짝사랑했던 남자를 우연히 만났다. 싱글인 그들은 사랑에 빠졌다. 황혼기에 만나 알콩달콩 이어지는 친구의 사랑 이야기를 듣다가 갑자기 가슴 시렸던 옛일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 짝사랑한 남자가 있었다. 친구의 소개로 처음 만난 순간 그에게 빠졌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키, 쌍꺼풀 없는 깊고 지적인 눈, 공대생인 그는 국립극장(구 명동예술극장)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할 정도로 음악도이기도 했다. 그는 나를 시큰둥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연상의 여자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 여자를 잊으려고 나왔습니다.” 


나는 맨날 왜 이런 사연을 가진 남자만 걸리는지! 친구들과 어울려 한 번 더 그를 만났다. 남자가 군대 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끙끙 앓다가 용기 내 전화했다. 송별회로 바쁘다며 전화를 끊으려는 그에게 ‘만나고 싶다.’고 간청했다. 


그날따라 비는 왜 그리 억수같이 쏟아붓는지. 모처럼 새로 장만한 옷을 차려입고 종로 3가, 그가 송별회 한다는 건물 앞에 서 있었다. 그는 오지 않았다. 비에 젖은 푸른색 옷이 더욱 짙어졌다. 어두운 옷 속에 묻힌 작은 몸집은 무척이나 초라했다. 그를 애타게 기다리며 ‘그냥 갈까? 더 기다릴까?’ 망설였다. 기다리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았다. 


뒤늦게 나타나 바삐 가봐야 한다는 그에게 ‘군대로 편지해도 되느냐?’고 물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는 사이냐?’며 그가 반문했다. 간신히 고개 들어 마주친 그의 눈은 너무도 차가웠다. 빗속에 나를 버려두고 그의 다부진 뒷모습은 송별회 한다는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나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그곳에 있었던 비에 젖은 가로등처럼 한동안 서 있었다. 집에 돌아와 심한 몸살로 여러 날을 앓았다.


단지 그와의 인연은 그것뿐인데 비에 젖은 내 초라함. 그리고 차가운 시선으로 내뱉은 그의 짧은 한마디가 가슴에 각인되었다. 그의 성이 한씨였나? 권씨였나? 기억나지 않는다. 


헛웃음 나오는 상상이지만, 나는 언젠가 우연히 만날지도 모를 짝사랑했던 남자들이 내 모습에 실망하지 않도록 가는 허리를 유지하려고 애썼다. 만난다 해도 뭘 어쩌려고! 내 기억엔 그 빗속의 처량함이 뼈에 사무치게 선명하지만, 그는 나를 전혀 기억하지도 못할 텐데. 그나저나 늙은이 치아 빠지듯 슬금슬금 사라지는 주변의 옛 지인들처럼 그가 아직도 살아나 있을지도 모를 나이다. 


괜스레 남의 사랑 이야기를 듣다가 주책스럽게. 못 말리는 나의 짝사랑 타령을 하다니. 늘어진 팔자에 살만한 모양이다.

What am I going to do?

A divorced friend was living alone when she met a man she had a crush on. Single, they fell in love. While listening to the sweet love story of a friend she met in his twilight years, I suddenly remembered a heartbreaking past.


I had a childhood crush. A friend introduced me to him and I fell in love with him the moment I met him. Not too tall, not too short, deep, intelligent eyes without eyelids, an engineering student, he was also a musician who played the violin at the National Theater (formerly Myeongdong Arts Center). He looked at me with a sour expression and said.

"I'm in love with an older woman, and I came out to forget her." 


I always wonder why only men with stories like this get caught! I met him one more time with my friends. I heard that the man was going to the army. I was struggling and courageously called. When he said he was busy with a farewell party and was about to hang up, I begged him, "I want to meet you." 


It was raining like crazy that day. I stood in front of the building on Jongno 3-ga, where he was having a farewell party, dressed in my newly purchased clothes. He didn't come. The rain-soaked blue clothes became darker and darker, almost black, and my small figure buried in the dark clothes was very shabby. As I waited anxiously for him, I hesitated: Should I go or wait? I felt like I would regret it later if I didn't wait. 


He showed up late and said he had to go in a hurry, so I asked, "Can I write you?" "Is there really a need for that?" he replied. When I barely raised my head to meet him, his eyes were so cold. Leaving me out in the rain, his sturdy back disappeared into the building where the farewell party was held. I stood for a while like a rain-soaked street lamp that had been there since before I was born. When I returned home, I suffered from severe body aches for several days.


That's all I've ever had to do with him, but my rain-soaked shabbiness and his brief words, uttered with a cold gaze, were imprinted on my heart. Was his last name Han? Was it Kwon? I don't remember.


It's a ridiculous fantasy, but I tried to keep my thin waist so that the men I had a crush on I might meet one day would not be disappointed by my appearance. What am I going to do if I meet them! My memory of that rainy day is bone-chillingly clear, but he wouldn't even remember me at all. By the way, he may still be alive, like old acquaintances around me who slowly disappear like losing teeth.


I can't believe I am talking about my crush. There's no difficulty in living, so I talk about something weird.

Friday, October 20, 2023

소하의 죽음에 대한 남자들의 불라불라


소하의 죽음에 대한 친정 식구들은 시부모 구박으로 스트레스를 받아서. 시집 식구들은 미국에 초청한 친정 식구들이 자리 잡는데 도와달라는 성화를 견디지 못하고. 여자들 말로는’ 남편의 외도로 속 썩이다.’가. 또 다른 엇갈린 소문은 소하가 남편 몰래 누군가에게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해 동분서주하다가 열받아서 쓰러졌다고 남자들은 쑥덕거렸다

교포입네 하고 남자들이 한국에 나가서 예쁜 색시를 데려오곤 했던 70대 초, 미국으로 이민 간 오빠 친구가 한국에 나와서 창숙을 보고 한눈에 반했다. 서둘러 결혼하고 미국으로 데려왔다. 기술 고등학교만 간신히 졸업하고 미국에 온 창숙 남편은 정비소에서 일했다. 엔진오일 묻은 작업복을 입고 기름때 낀 손으로 자기 몸을 더듬는 남편이 귀찮고 싫었다. 창숙은 속아서 한 결혼이라며 주말이면 LA 갈비 씹듯이 불평불만을 질근질근 씹었다.


창숙은 6개월 동안 빈둥거리다가 돈을 벌어 집도 사고 꿈꾸던 멋진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소하의 바느질 공장을 찾았다. “일 배워보고 싶어 왔습니다.” 뽀얀피부, 커다란 눈, 부푼 가슴을 자랑하듯 내민 창숙의 상냥한 목소리에 직공들은 일제히 고개를 들고 바느질할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 화려한 창숙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소하는 마치 동공이 닫혀 보이지 않았던 물체를 확인하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넋 나간 듯 창숙을 쳐다봤다. 창숙은 그 순간 왜 사람들이 ‘쉬엄쉬엄 일해도 뭐라지 않고 소하가 제 한 몸으로 다 때우는 여자.’라는 동네 소문을 이해할 수 있었다. 


창숙이 소하 밑에서 일하면서 시집 식구에게 구박받는 소하를 보고 있자니 부아가 나서 못 참고 

“왜 그렇게 죽어 살아요. 일만 하지말고 바람도 쐬고 멋도 부려요. 누구를 위해 돈을 버는데요. 제대로 대접도 받지 못하면서.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 인줄 알아요. 시집 식구와 맞서서 자신의 위치를 다져야 해요. 돈 버는 사람 따로 있고 쓰는 사람 따로 있다더니. 운전면허증도 따요. 도와줄게요.”


얼마 후 창숙은 재봉질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그만두었다. 그리고 카지노 딜러가 된 후 남편과 이혼했다. 소하는 그동안 틈틈이 익힌 운전 솜씨로 마음이 심란할 때면 창숙을 만나러 갔다. 쇼핑도 외식도 하며 점점 자신만을 위한 삶을 터득했다. 창숙은 카지노 딜러가 성격에 맞는지 인기가 좋았다. 

“언니 나 골수암이래. 수술해야 하는데 수술비가 없어. 급전 좀 해줄 수 있어요? 부탁이야.”

시댁, 친정과 남편에게 돈으로 시달리는 소하는 돈거래만은 누구와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그나마 자기에게 살갑게 구는 창숙이 암 수술을 해야 한다니! 4년 전, 쌈짓돈을 들고 가서 꿔줬다. 창숙은 의사의 오진으로 암 수술할 필요가 없었다고도 하고 급전이 필요해서 거짓말을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딜러가 수입이 좋다는데. 나에게 빌려 간 돈 이자는 그만두고 원금이라도 조금씩 갚았으면…” 소하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창숙은 빌려 간 돈을 기억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딴청을 떨었다. 소하는 할 말을 잃고 서둘러 차를 몰고 집으로 향했다. 그동안 창숙만은 믿고 마음을 줬는데. ‘너마저도 나를 버리다니!’ 차를 몰고 오며 소하는 잘못 살아온 자신의 삶을 한탄했다. 상대의 허점을 이용하고 공격하는 사람들이 두려웠다. 차창 밖으로 지는 해를 바라봤다. 하늘에 피를 토하는 듯한 붉은 해를 마주하자, 뇌에 통증이 왔다. 토하고 싶었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밖으로 나갔다. 팔다리에 힘이 빠지고 시야가 흐려졌다. 쓰러졌다.

Men's views on Soha's death

There are other, conflicting rumors about Soha's death. The men said that Soha collapsed because she was upset because she did not receive money she had lent to someone without her husband's knowledge.


In the early 70s, when overseas Korean men used to go to Korea and bring back pretty women, Changsook's older brother's friend, who had immigrated to the United States, came out to Korea and fell in love with Changsook at first sight. He hastily married her and brought her to America. Changsook's husband, who came to the United States after barely graduating from a technical high school, worked at a car repair shop. She was annoyed and hated her husband, who wore engine oil-stained work clothes and groped her with his greasy hands. She felt tricked into her marriage and chewed on her complaints like an L.A. short rib chewed on the weekends.


Changsook decided that after six months of playing around, she would earn money to buy a house and live the wonderful life she dreamed of. She visited Soha’s sewing factory. She Said “I came because I wanted to learn a job.” At the sound of Changsook's kind voice, showing off her fair skin, big eyes, and puffy breasts, the workers all raised their heads and fixed their eyes on the gorgeous her, who did not look like someone who would sew. Soha stared at Changsook like a dazed person, her eyes wide open, as if she was trying to see an invisible object. At that moment, Changsook was able to understand the rumor that why people say that even if the workers do their work roughly, Soha is a woman who does everything by herself and doesn't complains.


Changsook was watching Soha being abused by her in-laws, and said 

"Why are you living like this? Don't just work, get some air and dress up. Who do you make money for without being treated properly? You have to stand up to your in-laws. You need to have your own pocket. Get your driver's license, I'll help you."


After a while, Changsook quit because she felt that sewing was not her aptitude. She became a casino dealer and divorced her husband. Soha went to meet Changsook, using her driving skills that she had learned in her spare time. She went shopping and eats out with her. She gradually learned to live for herself. Changsook was popular because she suited her personality as a casino dealer. One day, Changsook said “I have bone cancer. I need surgery and there is no money for it. Can you lend me some urgent money? I will pay it back soon with interest. please."

Soha did not want to deal with anyone. However, she was surprised that Changsook, who has been kinded to her, has to perform surgery on her cancer. Four years ago, Soha took some money and lent it to Changsook. Rumors circulated that Changsook didn't need cancer surgery due to a doctor's misdiagnosis or that she lied because she needed money. 


“I heard dealers have good income. I wish you paid back any amount of the principal a month, without the interest on the money you borrowed from me…” 

Soha barely opened her mouth. Changsook looked away as if she couldn't remember the money she had borrowed. Soha was at a loss for words and hurriedly drove her car and headed to her home. All this time, she only trusted Changsook and gave her heart to her. As she drove, Soha lamented her misguided life. She looked at the setting sun out the car window. As she faced the sun, which seemed to vomit blood into the sky, a pain came to her brain. She wanted to throw up. She parked her car on the side of the road and got out. Her limbs became weak and her vision became blurry. She collapsed.

Friday, October 6, 2023

소하의 죽음에 대한 여자들의 가쉽


소하의 죽음에 대한 친정 식구들은 시부모 구박으로 스트레스를 받아서. 시집 식구들은 미국에 초청한 친정 식구들이 자리 잡는데 도와달라는 성화를 견디지 못하고. 또 다른 엇갈린 소문은 ’남편의 외도로 속 썩이다.’가 쓰러졌다고 여자들은 쑥덕거렸다.

소하는 봉제 공장을 다니다가 미싱 서너 대를 가라지에 들여놓고 바느질 공장을 차렸다. 미싱이 불이 날 정도로  달궈지면 다른 미싱으로 옮겨가며 밟았다. 밥때가 되면 배고프다는 시부모 성화에 부엌데기로 세상 밖을 나가지 못하고 돈 버는 기계였다. 영어를 읽을 줄 몰라서 운전도 할 수 없었다. 온몸에는 무지개색 실밥이 풀풀 날렸다. 머리는 산발이었다. 혈색은 누렇게 떴고 병색이 돌았다. 남편도 실밥 묻은 홈드레스 입은 초라한 소하의  모습이 창피한지 외면하고 먼 산 보듯 했다. 


“너 하라는 미싱질은 하지 않고 언제 시민권을 따서 친정 식구를 부른 거야. 누구 맘대로. 두고 보자 하니까 이게 못 하는 짓이 없네.”

시부모의 폭언 수위가 높아졌다. 옆집 사는 손위 시누이는 머리채를 낚아챌 기세로 툭하면 달려왔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은 울고불고. 난리가 끊일 날이 없었다. 남편은 골 아프다고 집 나가 들어오지 않았다. 드디어는 한인타운에서 가게 하는 여자와 눈이 맞아 딴 살림을 차렸다. 시부모와 시누이는 상냥하고 싹싹한 내연녀 편으로 돌아섰다. 단지 소하를 내치지 못하는 것은 미싱만 밟으면 내연녀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남편이 소하와 더 멀어진 데는 친정 식구도 한몫했다. 친정 식구들이 미국에 오면 자기에게 힘을 실어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자신들이 살기 위한 방편으로 남편 앞에서 소하를 끌어 내리기에 급급했다. 

“소하야, 너는 미국에 온 지 꽤 됐는데 도로표지를 읽지 못해 프리웨이를 타지 못한다며. 네 동생 정인이는 오자마자 차를 몰고 프리웨이를 싱싱 달리는데. 네 꼴이 그게 뭐냐. 머리라도 제대로 빗던지. 김 서방 바람피워도 할 말 없겠다.” 


엄마를 구박하는 어른들 틈바구니에서 자란 소하의 딸과 아들도 엄마를 무시하다가 대학으로 떠난 후 돈 달랄 때만 연락했다. 남편은 이혼하자고는 하지 않았다. 미안해하지도 않았다. 바람을 피울 수밖에 없었다는 뻔뻔한 태도로 내연녀의 가게 셔터맨을 하며 두 집 살림했다. 이따금 시부모를 본다는 핑계로 와서 돈을 집어 갔다. 시누이 남편은 심장마비로 쓰러져 갑자기 죽었다. 시누이는 생명 보험금을 타서 친구들과 크루즈 여행 다니느라 바빴다. 두 자식 모두 부모에게 살갑게 굴지 않고 크루즈 여행 한 번 가자고 하지 않는 것에 시부모는 섭섭했다. 잔소리와 악다구니가 점점 줄어들더니 드디어는 소하의 눈치를 보며 뒷방 늙은이가 됐다. 시아버지가 죽고 그 이듬해 시어머니도 죽었다. 

남편은 내연녀의 가게가 잘 안되는지 집에 오는 횟수가 잦아졌다. 남편이 오든 말든 상관하지 않았다. 말을 섞지 않다가 눈빛도 마주치지 않았다.

Women's Gossip about Soha's Death

Soha died at the age of 54, of cancer. Another set of conflicting rumors circulated about her death. Women gossiped that her death was caused by her husband's infidelity.


Soha worked at a sewing factory, then set up three or four sewing machines into her garage and opened a sewing factory. She couldn't go out because she was cooking and sewing because of her parents-in-law's anger that they were hungry when it was time to eat. She couldn't read English and couldn't drive.  Her body was covered with rainbow-colored threads. Her hair was a mess. Her complexion became yellow and sick. Even her husband looked away in embarrassment at the sight of Soha in her shabby home dress covered with threads.


"When did you get your citizenship and invited your family to America?"

You're such a bad bitch." 

The level of verbal abuse from the in-laws increased. The sister-in-law who lives next door came running at her with the intention of snatching her hair. The children cried and screamed. There was no end to the chaos. Her husband didn't come home because he didn't want to get involved the chaos. Finally, he met a woman who worked as a shopkeeper in a Korean town and set up a separate household. Her parents-in-law and sister-in-law sided with his mistress. The only reason they can't get rid of Soha is because she has the ability to make more money than his mistress if she steps on a sewing machine. 


Her own family also played a role in her husband becoming more distant from Soha. She thought that her family would support her when they came to the United States, but instead, they were busy dragging Soha down in front of her husband as a way to survive themselves.

“Soha, it’s been a long time since you came to America, but you can’t ride the freeway because you can’t read road signs. As soon as your younger sister Jeongin arrives, she drives the freeway. Take care of your appearance. At least comb your hair properly. Even if your husband cheats on you, no one blames him.”


Soha's daughter and son, who grew up among adults who mistreated their mother, also ignored their mother. Only contacted her when they asked for money after leaving for college. Her husband did not ask for a divorce. He wasn't even sorry. With the brazen attitude that he had no choice but to cheat, he went back and forth between the two houses as a shop shutterman for his mistress. Occasionally, he would come and take Soha's money under the pretext of seeing his parents. 


Soha's sister-in-law's husband suffered a heart attack and died suddenly. Her sister-in-law was busy going on a cruise with her friends using her husband life insurance money. Her parents-in-law were upset that both children did not treat them warmly and did not suggest going on a cruise. Their nagging and bullying gradually decreased, and eventually they started to notice Soha's feelings and became the old people in their back room. Her father-in-law died, and the following year her mother-in-law also died. Her husband came to Soha more often if her mistress's store was not doing well. Soha didn't care whether her husband came or not. They didn't speak to each other and didn't make eye cont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