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June 29, 2019

다행이다

친구들과의 수다가 보통 날보다 길어졌다. 카페 유리창을 치며 비가 줄기차게 쏟아졌기 때문이다. 그칠 줄 모르고 퍼붓던 비가 잦아들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지 워싱턴 다리를 건너려고 카풀을 하자마자 경찰 사이렌이 뒤에서 울렸다. 경찰이 앞차로 가길래 마음이 놓였다. 그러나 웬걸 우리 차 쪽으로도 왔다. 드라이브 라이센스를 달라고 했다. 백미러로 보이는 착한 인상의 운전자는 난감한 표정이다. 뒷좌석에 앉은 나는 어찌해야 할지 안절부절 좌불안석이다. 티켓값의 다문 얼마라도 물어줘야 하는 것은 아닐까? 책임을 분담하는 길만이 운전자를 위로하는 길이겠지? 한참 후에 경찰이 다시 왔다. 더욱 난감하다. 차 문을 열고 뛰쳐나가고 싶었다. 그러나 함께한 책임은 져야 한다
이번은 봐준다. 조심해.”
경고만 줬다. 그에게 하루 일당이 살아나는 순간이었다. 기분이 좋아진 운전자가 나에게 고맙다고 했다. 착한 그가 티켓을 받지 않아 다행이다.

나는 착한 사람과 단둘이 있는 것을 꺼린다. 같이 착해져야 하는 분위기가 감돌기 때문이다. 재미없는 사람과의 만남도 힘들다. 어두침침한 터널 속을 빨리 빠져나가고 싶은 심정이랄까. 서너명이 만나는 것은 선호한다. 이야기를 돌아가며 분담할 수 있어 부담감이 없다. 게다가 각자의 다른 면을 엿 볼 수 있어 더욱더 흥겨워진다. 그중누군가는 알찬 정보를, 또 누군가의 유머와 지혜로운 이야기에 슬며시 빠져든다. 대꾸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 말을 하면 창밖을 내다볼 수 있어 좋다. 만나자는 사람 다 만나서 쓰잘데 없고 하찮은 이야기 다 들어줄 만큼 내가 착하지 않아 참으로 다행이다.

특히 둘만의 만남을 더욱 피하고 싶은 사람은 종교와 정치 얘기를 하는 착하고 외곬인 사람이다. 요즈음은 여자들도 정치에 무척이나 관심이 많다. 고국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을 가지라는 둥 구원을 받아야지 않겠냐는 둥. 꾹 참고 있다가 끝맺음을 마무리하듯 젊잖게 꼭 꺼낸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 싶지만 혼자 남을 그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앉아 있기가 고역이다. 이래저래 피하던 지인들이 드디어는 내가 만남을 꺼린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요즈음은 소식이 뜸하다. 천만다행이다.

모임에서 한 여자는 내가 알지도 못하는 본인 주위 사람들 예를 한명씩 들어가며 길게 이야기한다. 예기가 끝났구나 하면 또 다른 예를 꺼내며 이어진다
돈 내놔.” 
내가 말했다. 자기 이야기에 도취 돼서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수다는 이어진다. 돈을 받아도 듣기 싫은 이야기다. 물론 나도 내 수다로 상대방을 지루하게 할 때가 많다. 내 글을 읽어주는 독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내 이야기를 들어 주고 읽어 준 사람에게 차라리 수고비를 지불하고라도 편해지고 싶은 욕구가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음을 고백하고 싶다.

수다나 글을 멈추면 된다. 그러나 알면서도 고장 난 수도꼭지에서 물이 새듯 줄줄줄

Thank God

The chat with friends became longer than usual. It was because the rained continuously pour. I got up from the seat when the incessant downpour subsided.

As soon as I carpooled to cross the George Washington Bridge, a police siren rang from behind. I was relieved because the police went to the front car. But he came to our car too. He asked for a drive license. The driver of a good impression had a difficult look. I'm in a fidget in the back seat. Don't I think I should pay for the ticket? The only way to share the responsibility is to comfort the driver, right? A long time later the police came back. I felt even more perplexed. I wanted to open the car door and run out. But the responsibility that we share should be borne. "I'll let it go this time. Be careful," he only gave a warning. It was a moment when his daily wage was revives to him. The driver who got in a good mood thanked me. Thank god that he didn't get a ticket.

I am reluctant to be alone with a good person. It is because there is an atmosphere where I should be good. It's also hard to meet someone who's not funny. This is because I want to get out of the same atmosphere as in a dark tunnel. I prefer three or four people to meet. There is no pressure because I can share the story. In addition, I can see the different sides of each other, making it even more exciting. Some of them sneak into informative information, and into someone's humor and wise story. It's good to look out the window when I don't have to answer a not interesting story. Thank god that I am not good person enough to listen to all the trivial stories.

Especially, the person who wants to avoid meeting only between the two is a kind and a narrow point of view person who talks about religion and politics. Korean women are also very interested in politics these days. They want me to pay attention to what's going on in our homeland and trust God and be saved. They bring it out in a gentle manner as if finishing the end of the sentence. I'd like to jump up, but I'm having trouble sitting down because there is not anyone to listen other than me. Whether my acquaintances, which have avoided, have finally noticed that I'm reluctant to meet, these days there's no phone call to meet me. Thank god.

In a meeting, a woman tells a long story about people around her whom I do not even know. If the one-person story is over, another example comes out. "Give me the money." I said. I didn't want to hear her story. But she continued because she is so intoxicated with her story. I don't want to hear even if I get paid. Of course, I often bore my opponent with my chatter. The same goes for readers who read my writings. I want to confess that the desire to be comfortable even if I pay the fee to the person who listened to and read my story is in the corner of my heart.

It is possible if I stop talking and writing. But like the broken faucet is dripping with water. 'Drip, drop, plop...

Saturday, June 15, 2019

영원한 것이 없다지만

TV를 재빨리 껐다. 화면에서 노트르담 성당이 불타고 있기 때문이다. 건축, 음악, 희귀서적 그리고 미술 작품 등의 상실에 수반되는 슬픔은 다른 상실과는 수준이 다르다. 햇살 아래 성스럽게 반짝이는 스테인드글라스는 어떡하고! 차마 더는 타들어 가는 모습을 계속 보고 있을 수 없었다.

악마처럼 날뛰는 불에 휩싸여 노트르담이 꿈틀대고 뒤틀리며 허망하게 무너져 내린다는 상상을 했다. 머릿속을 스쳐 가는 영화 Before Sunset이 생각났다. 주인공 남녀가 세느강 보트에서 노트르담을 바라보며 주고받는 이야기다.
제시: 독일군이 파리를 점령하고 후퇴할 때 노트르담을 폭파하라고 전보를 쳤다는 이야기 들은 적이 있어. 그들은 스위치를 켜는 일을 담당할 한 사람을 남겨야 했어. 그러나 그 군인은, 노트르담의 아름다움에 감격해서 차마 할 수 없었어. 연합군이 들어왔을 때, 모든 폭발물이 그대로 놓여 있고 스위치를 돌리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했어.
시라인: 그게 사실이야?
제시: 나도 몰라. 하지만 난 항상 그 이야기를 좋아했어.

노트르담이 다 타서 잔해만 남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안타까운 상상으로 이어지자 영화 The Pianist가 떠올랐다. 잿더미 속 폐허가 된 건물 안에 숨어서 아사 직전이던 유대인 주인공이 나치 장교와 맞닥뜨리는 장면이다.
독일 장교: 너 여기서 뭐 해? 일해?
피아니스트: 아니, 나는 피아니스트였어.
독일 장교: 그럼 연주해 봐.
피아니스트는 쇼팽의 녹턴 20번을 연주한다. 건축의 아름다움에 감격해 명령을 거역하면서까지 노트르담을 폭파하지 않았듯이 독일 장교는 피아노 연주에 빠져 먹을 것을 가져다주고 외투까지 벗어 주며 피아니스트를 살린다.

노트르담 성당은 프랑스 혁명의 혼돈 속에서 훼손되고 방치되어 헐자는 여론이 있었다. 그러나 문학과 예술가들에게 많은 감명을 주었던 성당은 1831년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의 꼽추로 다시 대중화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앤서니 퀸의 기가 막힌 분장과 허스키한 목소리가 어우러진 영화 장면이 떠오른다.

노트르담 대성당을 재건할 자금이 모금되었다니 다행이다. 게다가 불타기 전 모습을 0.1인치까지 세세하게 담아낸 3D 자료가 있어 복원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라니 천만다행이다인간의 원초적 감성을 자극하여 생기를 주는 그리고 오래전에 살았던 사람들과 서로 뗄래야 뗄 수 없는 과거와의 연결 고리인 예술 작품들이여 영원하길.

Nothing lasts forever, but

I quickly turned off the TV. It is because the scene where the Notre Dame Cathedral was on fire. The sadness associated with loss of architecture, music, rare books, and art works is at a different level from other losses. Did the shiny stained glass burn out? I could not keep watching the burning scene.

I imagined that the Notre Dame Cathedral was twist and collapse in vain, surrounded by a raging fire like the devil. I remembered the movie 'Before Sunset' that was going through my head. The main character is a story about a man and woman watching the Notre Dame Cathedral on the Seine riverboat.
Jesse: I heard this story once, about when the Germans were occupying Paris and they had to retreat back, they wired Notre Dame Cathedral to blow. But they had to leave one guy in charge of hitting the switch. The soldier couldn't do it. You know, he just sat there, knocked out by how beautiful the place was. And then, when the Allied troops came in, they found all the explosives just lying there and the switch unturned.
Céline: Is that true?
Jesse: I don't know. I always liked the story.

Isn't it possible that all the Notre Dame is burned out and ashes are left? The movie 'The Pianist' came to mind as it led to a sad imagination. It was a scene shows a Jewish protagonist hiding inside a building devastated by the ashes and run into a Nazi officer.
German Officer: What are you doing here? Working?
Pianist: No, I was a pianist.
German Officer: Then plays it.
The pianist plays Chopin's Nocturne 20. Just as the soldier disobeyed orders and didn't blow up Notre Dame Cathedral, thrilled by the beauty of architecture, the German officer falls in love with playing a piano and saves the pianist by bringing him something to eat.

There was public opinion that the Notre Dame Cathedral should be torn down because it was damaged and neglected in the chaos of the French Revolution. However, the cathedral, which had a lot of inspiration for literature and artists, helped popularize it again in 1831 as Victor Hugo's novel 'The Hunchback of Notre Dame'. It reminds me of a movie scene that combines Anthony Quinn's stunning makeup and husky voice.

It is fortunate that funds were raised to rebuild the Notre Dame Cathedral. In addition, that there will be a 3D data that details the shape before burning down to 0.1 inch, which will be a great help for restoration.

Saturday, June 1, 2019

이별 그 후

발걸음이 무겁다. 가슴이 횅하다. 예전처럼 두리번거리지 않고 텅 빈 공원을 천천히 걷는다. 저 언덕 위에서 손을 흔들고 나타나 함께 걷던 친구가 얼마 전 이사 갔기 때문이다. 함께 산책하며 나이 들어갈 줄 알았는데 갑자기 떠났다. 남겨진다는 것이 이렇게 허전할 줄이야.

그녀는 지금쯤 짐을 풀고 새로운 동네에 적응하느라 바쁘리라. 혼자 조용히 거닐던 나에게 슬그머니 다가와 친구가 된 것처럼 그 상큼한 붙임성으로 벌써 누군가에게 다가가 워싱턴 스퀘어를 걷고 있지나 않을지? 친구는 멀리 간 것이 아니고 NYU 근처로 이사 갔다. 떠나간 그녀는 젊은이들로 활기찬 공원을 산책하고 남겨진 나는 나이 든 사람이 많은 산책로에서 서성거린다.

내가 걷는 리버사이드 팍은 지리산 자락처럼 허드슨강을 끼고 지루하고 길게 이어지는 단순한 공원이다. 이곳의 그런 매력에 끌려 걷다가도 누군가를 기다리듯 멍하니 강을 보고 앉아있곤 했다. 어느 날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난 그녀와의 만남은 기대하지 않았던 선물이 주어진 듯 소중했다. 만날 약속이 없는 날도 혹시나 우연히 마주치지 않을까 하는 소소한 기대감에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걷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둘러봐도 소용없다는 것이 나를 더욱더 쓸쓸하게 한다.

학창시절, 지리산 산행을 안내하던 남미 사람처럼 땅땅하고 다부진, 햇볕에 그을은 중년 남자가 생각난다. 그는 우리를 전라도 남원에서 시작해 구례에서 끝나는 산행을 안내했다. 저녁이면 모닥불 가에 모여 떠드는 우리를 말없이 바라보곤 했다. 잠들 시간이 되면, 불 속에 묻어 달궈진 큼직한 돌을 낡은 군용 텐트 안으로 끌고 들어가던 그의 뒷모습은 무척이나 적적해 보였다.

그는 어디서 무얼 하며 살다 산중에 들어와 산삼을 찾아다니다 틈틈이 산행을 안내하게 됐는지? 그 남자의 삶이 궁금했다. 그러나 궁금증을 묻기에 나는 너무 숫기가 없었고 친구들과 재잘거리기에 바빴다. 우리는 산행을 마치고 떠나는 사람으로 바쁘고 화려한 서울로, 남겨진 그는 어둡고 눅눅한 숲속으로 향했다. 그의 어눌한 뒷모습이 새삼 떠오른다. 남겨진다는 것은 떠나는 것보다 무척이나 안쓰러운 일이다.

친구가 이사 간 계절이 그나마 움츠렸던 겨울이 지나고 화사한 봄날이라 다행이다. 함께 걷던 그녀가 떠난 자리에 새 생명이 소생하고 수선화가 얼굴을 내민다. 나뭇가지가 파릇파릇 봉오리를 옹기종기 싹을 틔운다. 망토를 두른 도도한 여인네 같은 튤립들도 목을 곳곳이 세우고 봄을 반긴다. 따사로운 봄 공기에 화들짝 핀 벚꽃이 수줍은 듯  방실거린다. 세상이 갑자기 환해 보인다.

복식호흡을 하며 코끝에 느끼는 숨에 집중하고 걷는다. 몸의 긴장이 풀리고 망상이 사라진다. 새소리가 더욱 낭랑하게 들린다. 함께 걷는 것도 즐겁지만 혼자 걷는 것 또한 좋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