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July 27, 2013

쿨하단다

창밖의 나뭇잎들이 울창해진 한여름, 매우 더운 날씨다. 엄마가 나를 이렇게 찜통더위에 낳았다니!

조깅을 하고 오니 작은 아이가 해시브라운에 베이컨과 스크램블을 만들어서 아침상을 차려놨다. 큰 아이는 프랑스에서 주문했다는 선물 박스를 내밀며 
엄마, 해피버스데이.” 
당신은 아무것도 없어?” 
남편을 쳐다봤다. 
하루하루를 생일처럼 잘해줬는데 새삼스럽게, 오늘 저녁은 외식이나 하지.”
너희는 어릴 적부터 말 잘 듣고 잘 자라줘서 아빠 말대로 엄마에게는 날마다 생일이고 마덜스데이었다. 고마워.” 
선물과 아침상으로 끝날 줄 알았는데 웬걸 또 다른 선물, 아이들의 립 서비스가 이어졌다.
엄마는 so cool 해요.” 
정말, 뭐가?” 
"친구들이 그러는데 엄마들이 바더(bother. 귀찮게)해서 힘들데요.” 
나도 귀찮게 하잖아?” 
아니요. 엄마는 안 그래요.” 
아이고 고마워라. 이왕 너희를 낳았는데 잘해주지는 못할망정 힘들게 해서 누구 좋으라고. 혹시 엄마가 귀찮게 하면 말해. 고칠게.”
난 또 쿨하다길레 내가 멋있다는 줄 알고 좋아했더니 저희를 들볶지 않아서 좋다니. 요것들이 아예 귀찮게 못 하게 연막을 치는구나. 도대체 좋은 거야? 나쁜 거야? 헷갈리네. 쿨하다는 소리까지 듣고서 앞으로 어찌 잔소리할 것인가.

단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엄마의 잔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 돌아가신 엄마가 어떤 잔소리를 했었나 기억을 더듬어 보지만 희미하다. 그 당시는 분명히 듣기 싫은 소리였는데, 지금은 소중한 사랑으로 기억된다.

깨워도 일어나지 않는 나를 이불에 둘둘 말아 윗목에 밀어 놓고 
"무엇이 되려고 이리도 게으르냐."
걱정하던 엄마. 옷을 벗어 빨래통에 넣는 것도 귀찮아 방구석 여기저기에 쑤셔 박아 놓은 것을 하나씩 꺼내며 한숨짓던 엄마가 나에게도 있었다. 늦잠자고 일어나, 어스름한 저녁에 미니스커트를 입고 놀러 나가는 내 뒤통수에 대고 
"너 어딜 또 가니?" 
하는 엄마의 목소리를 한 번만 더 들을 수 있다면. 내가 남자 친구에게 체이고 들어오면
우리 딸이 너무 과분해서 감당하기 어려워 물러난 거야 
위로해 주던 다정한 엄마가 있었는데.

내가 태어난 날인 오늘 하루만이라도 엄마 배 속에 있었던 모습으로 무릎을 한껏 구부리고 종일 누워 있고 싶다. 눈을 감으니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번지며 잔소리하던 엄마 모습이 떠올랐다. 이 세상에서 나에게 가장 잘해준 우리 엄마가. 아! 옛 시절 엄마가 있던 그 따뜻한 지붕 밑으로 돌아가고 싶다.

Friday, July 26, 2013

It's cool

It is a very hot day in midsummer, when the leaves outside the window are thick. My mother gave birth me in the steamer heat like this!

When I came back from jogging, the younger son made bacon, scrambled eggs and hash browns and set the breakfast table. The older son held out a gift box that he ordered from France and said,  "Mom, happy birthday." "You have nothing?" I looked at my husband. He said, "every day I treated you as good as birthday, but, let's go out for dinner tonight."

"You guys have been listening and grew up very well since you were born. Thank you. So everyday was my birthday and it was Mother's Day, just like your father said. Thank you." I thought it would end with a gift and breakfast, but it was followed by something else, children's lip service.

"Mom, you are so cool." Suddenly what does this mean? "Really, what's so cool about mom?" My friends are having a hard time because their mom bothers them." "I bother you guys too?" "No. My mother doesn't." “Oh thank you. If I bother you, tell me. I'll fix it." From now on how can I nag after hearing that I am cool?

It's good just only once, if I can hear your mother's nagging again, there is no wish. Only I can recall what my late mother was nagging at me, but it is faint. It was definitely a bad thing to hear at the time, but now it's remembered as a precious love.

My mother used to worry, saying, "What's so lazy you are?" whenever I didn't get up early. I was also annoying to take off my clothes and put them in the laundry bucket. Mom used to take out my clothes I had stuck in all the corners of the room one by one and put them in the laundry basket, and sighing.

If only I want to hear one more time of my mother's voice saying, "Where are you going on a twilight evening?" against my back, wearing a miniskirt and going out to date. When my boyfriend dumped me, there was a loving mother who consoled me, saying, "My daughter is too much for him to handle, so he stepped down.

I want to lie down all day with my knees bent like I was in my mother's stomach. When I closed my eyes, I remembered my mother, who was nagging me with a smile on her. My mom is coolest person in the world.

Ah! I want to go back under that warm roof where my mother used to be.

Saturday, July 20, 2013

잃어버린 동창회

아비뇽’ 나의 애틋한 낭만의 시절을 대변해주는 단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가장 친한 친구와 자주 드나들던 양장점 이름이다. 이대 다니는 그녀의 멋쟁이 언니가 주로 옷을 해 입던 곳이다. 우리도 패션 잡지를 뒤적이며 좋아하는 스타일을 찾아 맞춰 입고는 한껏 멋을 부리곤 했다.

막내인 친구는 위로 공부 잘하는 오빠와 언니들에게 듣고 보고 자라 성숙했다. 깔끔 반듯하고 무엇이든 거침없이 잘했다. 이렇게 오랜 세월 함께 하다 홀연히 그녀가 결혼하고 아무 말도 없이 미국으로 떠났다..

훌쩍 떠난 그녀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불란서 파리로 향하려던 방향을 틀어 나도 미국행을 택했다. 잃어버린 한쪽 날개를 찾으려는 듯 그녀를 미국에서 수소문하다 허탕 치고, 한국을 방문했을 때 팔을 걷어붙이고 그녀의 과거 흔적을 찾아 나섰다.

친구가 살던 말죽거리를 헤맸지만, 예전엔 논밭뿐이었던 곳에 아파트가 들어서서 찾을 수 없었다. 새싹이 푸릇푸릇 올라오던 논 둑길, 매미가 울던 울창한 나무 밑, 눈 쌓인 밭길을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애쓰며 걷던 길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모태신앙인 친구가 다녔던 서대문에 있는 교회가 생각나 찾아갔다. 다른 곳도 아닌 뉴욕, 그것도 내가 사는 곳과 그리 멀지 않은 교회에 다닌다는 것을 알아냈다.

교회를 찾아가 복도를 지나다 친구를 붕어빵처럼 찍어 놓은 아이를 봤다
네 엄마 이름이 뭐니?” 
성은 다르지만 이름은 같았다. 나는 어릴 적 친구 모습을 빼닮은 아이를 보자마자 눈물이 핑 돌았다
“와이프는 사람들을 초대하느라 집에서 준비하고 있어요 함께 가요”.
그녀의 남편이 말했다. 커다란 집 수영장 주변에 초대받은 우아한 사람들이 모여 담소하는 와중에 갑자기 나타나 바쁜 친구를 붙들고 나는 꺼억꺼억 울었다. 지금 와 생각해도 난 참 철없는 인간이다. 그것도 혼자가 아닌 형님 내외와 아이 셋을 거덜 거리는 차에 태우고 가서.

살기 어려운 그 당시 내 모습은 무척 초췌했다. 차를 타고 헤어지는 나에게 잘 가라며 손짓하던 친구의 얼굴엔 연민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남들은 살기 어려울 땐 조용히 숨어 살다 살만하면 친구도 찾는다는데 뭐가 그리도 급했단 말인가!

동창회의 간부이기도 한, 이 친구에게서 모임에 나오라고 연락이 왔다. 신이 났다. 그러나 또다시 그녀를 힘들게 할 줄이야. 회비를 준비하지 않아 내 몫을 내 줬으니. 다음 동창회에 가서 꾼 회비를 돌려주려 했지만, 친구에게 걸려온 전화 내용인즉슨 
"대부분 동창이 잘살아. 특히 롱아일랜드의 엄청 성공한 동창 집에서 다음 모임을 하는데, 잘 사는 것을 보고 내가 상처받을 것이 걱정돼. 오지 않는 것이 좋겠어."

지금도 동창회는 어디에선가 계속 이어지고 있지만 딱 한 번 나가고 못 나가는 신세가 되었다. 때를 기다리고 참을 줄 알았어야 했는데.

Friday, July 19, 2013

Lost homecoming

'Avignon' is a word that represents my fond romantic days.

This is the name of a dressmaker store that I frequented with my best friend after graduating from high school. It was the place where her stylish sister, who was attending Ewha University, used to make clothes. We used to search fashion magazines, find our favorite style, and make clothes. We dress up to the fullest.

My friend grew up seeing with her older brother and sisters who studied well. She has matured. And neat and straight and did everything well. After all these years together, she was married and left for America without saying anything.

Perhaps it was her influence, I changed my direction to America instead go to Europe. I tried to look for her in America as if I were looking for one lost wing, but it was in vain. When I visited Korea, I rolled up my arm and searched for her past traces.

I wandered through the Maljukgeori where my friend used to live but I couldn't find her house because there was so many apartments built where was once only a field. The path where the shoots sprouted up, the dense trees where the cicadas were crying, and the road that tried to avoid slipping through the snowy field path disappeared without trace. I remembered the church that friend attended. I found out that she attend a church not far from where I live in New York.

I went to the church. I saw a boy who looked just like a friend in the hallway. "What's your mother's name?" The last name was different, but first name is the same. Tears poured down as soon as I saw a child who looked like a friend when she was a child. Her husband said, "she's preparing to invite people at home, so let's go together."

The elegant people she's invited to gathered around the swimming pool of a large house and chatted. I suddenly burst out and held to busy friend and crying. I was a very immature human being.

At that time, I was very difficult to live. A shadow of pity hung over my friend's face, which was beckoning me to go well. I don't know why I was in such a hurry to find a friend without waiting until I live well.

The friend, who is also an executive at the reunion, called me to come to the homecoming. I was excited, but I made her hard again. She paid my share because I didn't prepare my alumni dues. I went to the next reunion and tried to return my dues, but the calls she made to me meant, "Most of alumni are well off. Especially, we are having next meeting at very successful home in Long Island, and I'd rather not you come because I'm worried that you are going to get hurt. 

Even now, the reunion continues in some places, but I've only been once and I didn't participate anymore. I should've waited for the time that I live well.

Saturday, July 13, 2013

헤어지는 연습

"우리 나이에, 앞으로 만나면 몇 번이나 더 만날 수 있니?"
친구의 말이 생각하면 할수록 예사말이 아니다.

나야, 수임이. 
전화할까 말까 망설이다 조심스럽게 전화했다
어디야? LA에 왔니? 우리 집에 와.” 
됐어, 그냥 목소리나 듣고 가려고 전화했어.” 
야 되긴 뭐가 돼. 우리가 만나면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만날 수 있다고. 만날 수 있을 때 만나는 거야.”
성격이 밝고, 재미있는 친구라 항상 바쁘지만 내가 LA에 갈 적마다 대학 동기들을 모두 불러 바비큐를 해준다.

어린 시절엔 친구를 만들고, 친해지느라 만났는데 이제는 헤어지기 위해서 만난다니. 전화로만 안부를 주고받고자 했던 일이 만나서 회포를 풀며 늙어가는 친구들과 헤어지는 연습을 밤늦도록 했다.

재미있는 친구를 만나면 맑고 밝은 기운을 받아 기분이 좋아지며 다시 만나고 싶어진다. 매사에 부정적이고 문제가 많은 친구는 언젠가 그 골치 아픈 건수가 해결되면 밝아지겠지 기대하지만, 계속되는 평탄치 못한 일상생활 때문에 생기는 또 다른 우울증을 의논해야 하는 만남이 지속된다. 그리고는 마지못해 만나다 연락이 끊길 수밖에 없는 인연으로 남는다.

원색 옷을 즐겨 입는 지인이 있다. 그는 잘 이야기 하다가도 갑자기 발끈하며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하곤 한다. 자라면서 삐딱하게 내부에 쌓인 Anger ()를 기분만 뒤틀리면 벰파이어 에너지를 발산하듯 뿜어대는 것이다. 매사에 부정적인 그의 화려한 원색 옷 속에 숨어 있는 암울함을 마주하고 나면 며칠은 마음이 편치 않다. 즐거운 만남도 많은데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조심조심 두근두근하는 긴장 속의 만남을 굳이 지속할 필요가 있을까?

누구도 나의 삶을 기분 좋게 그리고 행복하게 해줄 의무도 없고, 해 줄 수도 없다. 남편과 자식조차도. 스스로 행복할 방법을 찾아 삶을 창조해야만 다른 사람과도 즐거운 만남을 유지 할 수 있지 않을까?  

나와 학교 동기인 남편은 대학 시절엔 섣부른 인연이라도 맺어질까 봐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았던 사이였다. 돌고 돌아 이 넓은 미국 땅에 와서 선배가 외로운 남자를 소개해 준다길래 나가보니, 떡 버티고 앉아 어 아직 시집도 못 가고, 여기는 웬일이야?’ 했던 사람이 내 남편이 될 줄이야!

사이 좋을 때는 하늘이 점지해 준 인연 운운하면서 좋아라 유난을 떨다 별일 아닌 것으로 티격태격하며 열을 올린다. 끝장 볼 때까지 가 볼까 하다가도 언젠가는 헤어질 너와 난데, 결국 죽음에 의해 헤어질 수밖에 없는 인연이거늘.

Friday, July 12, 2013

Breaking up practice

At our age, how many more times can we meet in the future? ‘The more I think of what my friend said, the more unusual it is.

'It's Sooim,' hesitated whether to call or not, and called carefully. "Where are you? Are you in LA? Come to my house." "No, I just called to talk." "What's the point? We only can meet a few more times in our lives. We will meet when we can. Her personality is bright and fun, so she is always busy, but whenever I go to LA, she invites all my college classmates and give us a barbecue.

When I was a kid, I met people to make friends, but now we are seeing friends to break up. We practiced breaking up with friends late at night.

When I meet an interesting friend, I feel bright and want to meet again. A friend who is negative and troubled about everything expects to brighten up one day when the troublesome is resolved, but the meetings continue to be held to discuss another depression caused by a series of incongruous daily routines. Then, we meet reluctantly, and then we lose touch.

I know an acquaintance that likes to wear primary colors. She often talks well, but then suddenly rages up and sets off a nasty atmosphere. As she grew up, the anger that built up inside her, gives off steam as if it were emitting fire energy. After facing the gloom that lurks in his colorful primary-colored clothes, which are negative about everything, I feel uncomfortable for a few days. Do I really need to continue this tense meeting with her?

No one is obligated, nor can, to make my life feel good and happy, even if a husband and a child. Wouldn't it be only if I found a way to be happy for myself and created a life so that I could have a good meeting with others?

When I was in college, my husband and I didn't even met eyes on each other because we were afraid of premature connection. After I came to New York, my senior introduced me a lonely man. When I went out to meet the lonely man, he was my college classmate who didn't even meet eye each other. "What are you doing here?" You haven't married yet?" I can't believe the lonely man became my husband!

When we are in good mood, we make a fuss about good. Then all of a sudden, we fight with anger over nothing. Even though I decide to break up, I'm holding back and let it go. Anyway someday, we are going to have to be separated by dea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