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어디 가고 싶은 곳 있니?”
서울 사는 친구들이 멀리서 온 나에게 다정하게 물었다.
친구들은 내가 오래전 미국으로 떠난 후에도, 매달 한 번 맛있다고 소문난 식당에서 만나 수다 떨며 오랜 세월 함께
하는 모양이다. 모임이 있고 난 후에는 그중 한 친구가 어디를 가서 뭘 먹고 어떻게 놀았다며 가끔은
사진도 곁들인 이메일로 소식을 전해준다.
나는 친구들이 다닌 곳을 상상하며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으로 며칠은 향수에 젖어 보낸다.
“너희가 자주 가는 곳에
가고 싶어.”
내가 뉴욕에서 상상했던 친구들의 하루를 알고 싶었다.
각자에게 만나기가 편한 장소인 명동 입구 외환은행에서
만났다. 명동 성당 쪽을 향해 걸으며 골목골목을 기웃거렸으나,
옛 시절의 흔적은 아쉽게도 눈에 띄지 않았다.
‘뜰 안의 작은 행복”이라는 성당 가까이에 있는 식당에 갔다. 식 복사로 명동성당 신부님들에게 조리해온 사람이
직접 재배한 유기농 농산물로 요리하는 퓨전 한정식 식당이다. 분위기도 좋고 맛도 나쁘지는 않았다.
이렇게 고상한 곳 말고 70년대식 포장마차의 천막을 걷고 들어가 '아줌마 여기 오댕에 소주 한 병 주세요.' 라든가, 시장
좌판에 앉아서 ‘아줌마 막걸리에 빈대떡이요.’ 하는 곳이 좋겠건만.
입가심으로 솔솔 썬 파가 떠 있는 오댕 국물에 말아주는 국수를 훌훌 먹고 싶은데.
서울에 갈 때마다 꼭 포장마차에 가겠다며 벼르곤 했지만, 친정아버지가
“너 배탈 나고 싶으면
가봐라.”
극구 말리는 통에 한 번도 가지 못했다. 실지로 그런
곳이 있기나 한지? 남편은 서울에 가면 한국드라마에 나오는 근사한 바에서 한잔하고 싶단다.
그 고상한 이름의 식당에서 나와 우리는
‘코인’이란 찻집으로 갔다.
대부분의 업소 이름이 길거나 영어다. 각자 주문하고 한참 수다를 떨다 목이 컬컬해지려는
순간 일본 웨이터가 서비스로 커피와 티를 친절하게 가져다줬다. 아니 명동 한복판에 웬 일본 웨이터?
국제화? 헷갈린다. 이렇게 중간에 공짜 서비스를
받고 오랜 시간 앉아 떠들어도 눈치를 주지 않는다고 자주 들른단다. 예전에 한 선배가 어느 식당 모임에서,
이 집에 자주 오는 이유 중의 하나가
"손님을 들볶지 않아서."
선배 말에 고개를 끄떡이던 기억이 스쳤다.
해 질 무렵인데, 아무도 집에 가잔 말을 하지 않는다. 청계천 물에 발을 담그고 우리들의 수다는 끝없이 이어졌다. 그 와중에도 내 시선은 자꾸 위를
향했다. 무지막지한 청계천 고가도로 콘크리트 더미의 옛 기억의 잔상이 아직도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은 모양이다.
정신을 헤까닥 놓아 버린다는 그 이상한 두뇌 병이 우리를 거들떠보지 않고 비껴간다면 우리의 수다는 멈추지 않고 영원히 계속되리라.
정신을 헤까닥 놓아 버린다는 그 이상한 두뇌 병이 우리를 거들떠보지 않고 비껴간다면 우리의 수다는 멈추지 않고 영원히 계속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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