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July 28, 2018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내가 하는 일들은 한방에 되는 일이 거의 없다. 서너 번 시도해야 겨우 될 듯 말 듯 하다가 질기게 밀고 당기면 결국 되지만, 그 과정이 힘들고 피곤하다. 나에게 닥쳐온 것들을 반드시 실현해야 하는 것은 아니기에 맞서 대응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기도 한다.

얼마 전 새벽 4시경에 일어나 창가를 서성이던 그 날 친구도 일찍 일어났단다. 다섯 시 반에 콜롬비아 대학 근처에 있는 교회 새벽예배를 갔다 와서 피곤하다며 우리의 만남을 그냥 전화로 대신하쟀다. 친구가 참석한 그 날 교회에 온 사람은 네 명이었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솔깃했다.

감리교 재단에서 운영하는 유치원과 중고등학교에 다닌 나로서는 서당 개 삼 년이면 뭐 어쩐다고 주워들은 것은 좀 있다. 대학 다닐 때는 함경도에서 피난 나온 옆집 착한 아줌마에 이끌려 정동에 있는 장로 교회를 다녔다. 교회가 끝나면 건너편 애플 살롱에서 데이트하기 위한 핑계긴 했지만. 선배 언니 따라 필동에 있던 침례교회도 다녔고. 연대 신학과를 졸업한 친구 따라 여의도에 있는 교회도 서너 번 갔다. 믿음으로 다녔다기보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식이었다.

미국에 와서도 옆집 아줌마 따라 퀸즈에 있는 아버지가 운영하시다 아들에게 물려준 교회도 다녔다. 플러싱에 있던 아르헨티나에서 온 신도가 대부분인 교회도 다녔다. 와이스톤 익스프레스 지나는 길가에 있는 교회에 갔다가 목사님이 마음에 들어 뿌리를 내리려고 할뻔했다. 그러나 여신도들이 연락하며 모임에 오라는 성화에 고만뒀다.

퀸즈 철도 길가에 신도 수가 엄청 많은 교회도 가봤다. 차가 없던 시절, 픽업해주기를 바랐지만, 교회 밴이 브루클린에는 갈 수 없다고 해서 포기했다. 지금이야 발붙이기도 쉽지 않은 동네로 변했지만, 그 당시만 해도 대부분 한인이 브루클린 하면 대낮에도 코 베가는 줄 알던 시절이다. 요즈음은 길 가다 성당에 들어가 기도하거나 기회가 되면 절에도 간다.

사람 많은 곳에 가기 싫어하는 나는 특히나 교회에서 만난 신도들이 신방 오겠다. 구역예배 오라고 접근하면 조용히 뒷걸음쳐 사라지곤 했다. 결국엔 한가한 일요일 뒹굴며 지내는 것에 익숙해졌다. 그러나 친구가 말한 새벽예배는 왠지 내 스타일인 것 같다. 집에서 왕복 40블록 산책하기에 좋은 거리다. 그리고 조용히 예배만 보고 서둘러 가야 하는 아침이고 많은 사람의 모임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른 새벽, 교회 문이 닫혔으면 어떡하지? 하며 다가갔다. 빨간 문이 활짝 열려있다. 빨간 문도 마음에 든다. 하나님이 방황하던 나를 오라고 환영하는 듯했다. 그러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목사님이 부재중이었다. 오랫동안 기도만 하고 나왔다. 생전 처음 간 새벽 예배였는데

도시에 혼자 남겨진 듯 새벽길을 조용히 걸었다.

That's bad timing

Things I do rarely work out at once. If I try to push and pull hard it three or four times, it will end up, but the process is difficult and tiring. I don’t necessarily have to fulfill what happened to me. So I do not respond and leave it alone.  

Not long ago, the day I woke up around 4 am, my friend got up early too. She was tired of the early morning service at church near the University of Colombia at 5:30 am. I was very glad to hear that there were four people who came to the church the day my friend attended.

I have attended kindergarten and junior high school run by the Methodist foundation. When I was in college, I went to the Presbyterian Church in Jeong-dong, accompanied by a nice lady next door who had been evacuated from Hamgyeongdo. It was an excuse to go to Apple Salon across the street after church to meet my friends. I went to the Baptist Church in Pil-dong with older alumnus. Also I went to a church in Yeouid three or four times along with my friend who graduated from Yonsei Theology Department. Instead of going by faith, it was like going to Gangnam with friends.

After I came to the United States, I went to a church in Queens, where father handed it over to his son with the neighboring lady. I also attended a church with mostly believers Argentina, which was located in Flushing. I went to a church on the roadside of Whitestone Expressway. I almost took root because I liked the pastor. However, I stopped going to the church because the female believers keep contacting and asking me to come to the meeting.

I attended a church on the side of the railroad in Queens. I was hoping to pick me up when I didn’t have a car, but I gave up because the church van could not come to Brooklyn. Now it's turned into an expensive town where it's not easy to stick your feet, but at that time most Korean people knew Brooklyn as dangerous neighborhood. I go to a cathedral and bedsit temple to pray when I get a chance.

I do not like to go to crowded places. Especially, the believers I meet in the church will approach me to go to the district worship service, I would quietly disappear. Eventually I got used to sleeping on a leisurely Sunday. But the early morning worship my friend told me about seems to be my style for some reason. It is a good distance for a forth-block round trip walk from home. And it is morning that we should go quickly after worship and it is not gathering of many people.

Early dawn, what if the church door is closed? I approached. The red door is wide open. I like the red door. God seemed to welcome me as I wandered. However, the pastor was absent. I prayed for a long time. It was my first early morning worship ...

I walked quietly on the dawn road, seemed to be left alone in this city.

Saturday, July 14, 2018

새벽 풍경

저녁 설거지를 마치자마자 누워 책을 펼친다. 9시경만 되면 졸다가 잠이 든다. 가끔은 8시부터 잠에 빠지기도 한다. 새벽 4시경이면 나도 모르게 쓸데없는 생각으로 뒤척이다 눈을 뜬다.

일어나 서성이며 창밖을 내다본다. 맞은편 그리고 주위 건물에 불 켜진 아파트가 몇 개인가 센다. 길가에 사람들이 눈에 띄면 그들이 사라질 때까지 시선을 고정한다. 그 시간엔 공항 가려고 콜택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듯 커다란 가방을 끌고 나와 길에 서 있다.

여행 가방 들고 서성이는 백인을 보면 폴란드 고향으로 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폴리쉬 터전인 브루클린 그린포인트 살 적에 그 큰 가방을 끌고 새벽에 공항 가는 사람들을 자주 봤기 때문이다. 옆집 사는 폴리쉬 친구는 고향을 방문할 때마다 엄청 물건을 많이 가져간다. 공항에서 가방 여러 개를 좁은 화장실 안으로 다 끌고 들어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누구한테 맡기자니 불안해서 참고 참다가 큰일 날 뻔했다며 웃었다. 그들도 우리처럼 한때 미제물건에 환장했을 때의 이야기다.

땅땅하니 잘 달궈진 사람이 큰 가방 서너 개를 끌고 콜택시를 기다리면 중남미 고향 가는 사람이 아닐까 하며 예전에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가 생각난다.

중남미 우거진 밀림 작은 마을에 방 한 칸 만한 납작한 지붕 밑 지푸라기 위에서 개, 돼지, , 거위, 그리고 온 식구들이 함께 사는 이웃이 있단다. 아침에 일어나 동물은 동물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누가 누구에게 먹을 것을 주며 돌보는 것이 아닌, 각자 알아서 먹을 것을 찾아 돌아다니다 저녁에는 귀소 본능으로 돌아와 좁은 공간에서 큰 소리로 싸우는 일 없이 평화롭게 산다는.’

함께 살던 남자가 떠나도 원망하지 않고 또 새로운 남자가 찾아와 남겨진 아이들과 더불어 서로의 필요 때문에 살아가는. 한 아들은 남편과의 관계에서 낳은 또 다른 아들은 큰아들과의 관계에서 낳았다는 소리를 듣고 어찌 인간이 그럴 수 있냐?’고 반박하니 필요하면 그럴 수도 있다.’는 필요로 인한 행동에 대해 인간이 만든 규율이나 유교적 도덕 잣대로 말할 수 없는 세상이 존재한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사람들은 하루에 5만 가지 생각을 한단다. 그런데 그 가운데 10%만 쓸모 있는 것이고 나머지는 쓸데없는 것이란다.’ 나는 새벽부터 쓰잘데없는 생각으로 동이 훤하게 틀 때까지 창가를 서성인다. 얼마나 소모적인 시간을 보내는 것일까?

The dawn scene


As soon as I finish washing the dishes in the evening, I lie down and open a book. I fall asleep after dozing off at around 9:00 p.m. Sometimes I fall asleep at 8 p.m. I toss and turn with useless thoughts, and open my eyes at around 4:00 am.

I get up and look out the window. I count how many apartments are lit across the street and in the surrounding buildings. If people are visible on the roadside, I fix my gaze until they disappear. At that time, they are standing in the street with huge bags, as if they are waiting for a taxi to the airport.

If I see a white person standing around with suitcases, I think they are going home to Poland. This is because I often saw people going to the airport at dawn by dragging their big bags in Greenpoint, Brooklyn. A polish friend who lives next door takes a lot of stuff every time she visits her hometown. Once, she could not drag several luggage into a small bathroom at the airport and she was too nervous to leave them with someone else, so it was a big problem. It is a story of falling in love with American products just like us.  

If a person who is a firm character and well sunburnt is waiting for a taxi with large bags, I think that it might be a person who goes to Central America. And it reminds me of a story I heard from someone.

'In the lush small village of Central America, there is a neighbor living together with dogs, pigs, chickens, geese and the whole family on a straw under a flat roof about the size of a one room. Wake up in the morning, animals, children go around looking for their own food, not for anyone to feed and care for. In the evening, they return to their home instinct and live peacefully in a small space without fighting loudly.’

'When a man who lives with her leaves, She doesn’t blame him, and a new man comes and lives with the children left behind because of the need of each other. One son was born in relationship with husband and the other son was born in relationship with older children, and refutes, 'How can a man do that?' There is a world that cannot be talked about by the human made discipline or the Confucian moral standards.

'People think of 50,000 things a day. However, only 10% of them are useful, and the rest are useless. "I walk around the window from dawn until the sunrise. How much wasted time do I sp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