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October 19, 2018

우주와 팽주

우주를 품어 감싸 안은 듯 푸근한 미소 띤 팽주 남편이 이 층으로 소리 없이 올라와서는 뜨거운 물이 가득 찬 보온 통을 놓고 수줍은 듯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우리는 그를 우주라 부르고 그의 부인을 팽주라 부른다. 팽주란 차를 정성스럽게 다려 나누어 주는 사람이다.

그간 쌓인 지난 여름날의 찐득거림을 씻어내기라도 하는 듯 비가 창을 내려친다. 아늑한 실내에서 바람결에 흔들며 막춤이라도 추는 듯한 비를 바라보며 팽주가 따라주는 차를 마신다. ‘더 무엇을 바랄 수 있단 말인가!’ 세상일이 다 잊힌다.

팽주가 다미차를 따라주면 두 손으로 잔을 들어 세 번에 나눠 마신다. 잔이 비면 다시 따라준다. 그녀가 준비한 코코넛 마카롱 또한 별미다. 비 오는 날, 고양이처럼 따뜻하고 편한 곳을 찾아 똬리 틀고 와인과 차를 홀짝이는 것이 딱 내 스타일이다.

팽주가 뭔지도 몰랐다. 코코넛 마카롱조차도 만들 줄 모른다. 그저 분위기에 취해 흐느적거리는 여류 한량이다. 속담에 돈 없으면 건달, 돈 있으며 한량이라는데, 한국말치고는 참!

게다가 오늘의 모임은 좋아하는 친구 몇 명과 함께 하는 물풀글 모임이다. 모임 이름처럼 물이 졸졸 흐르듯, 풀들이 바람결에 서로 비벼대며 속삭이듯 그냥 쓰고 싶은 대로 써 온 글을 읽으며 수다 하는 모임이니 한결 차 맛이 난다.

시간을 쫓는 것인지 아니면 시간에 쫓기는 것인지 초조했던 어제의 내가 팽주가 건네준 잔을 들어 입 가까이 가져가면 차 향기에 시대를 거슬러 아득한 옛날로 돌아간다. 세월의 이끼를 잔뜩 머금은 오랜 절간의 동자승 닮은 팽주는 부드러운 눈을 잔에 고정하고 고운 손을 들어 천천히 빈 잔을 채운다. 차가 코에서 머물다 입으로 그리고 목젖을 스치며 돌아 내려가면 놓치지 않으려고 꽉 쥐고 있던 것들이 탁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다. 왜 그리도 부질없는 것들에 집착했던고?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다음 모임엔 보이차란다. 우주님은 커다란 보온 통을 들어다 올려놓을 것이고 팽주님은 보이차를 내 잔에 고운 손으로 따라주겠지. 그날엔 제대로 다도를 눈여겨 볼참이다.

다도를 모르면 어떠하며
좋은 글을 쓰지 못하면 어떠하리
성황당 뒷담에 기대어
만수산 드렁칡이 얽어지듯
친구들과 얽혀져 보이차를 홀짝홀짝.

Cosmos and Paengju

A smiling Paengju’s husband, who seemed to embrace the universe, climbed silently up to the floor with a large thermal barrel. We call him the universe and call his wife Paengju. Paengju is a person who makes a tea and gives it away.

The rain is pouring down the windows as if to wash away the sticky of last summer days. In the cozy interior, I drink a tea while watching the rain that seems to be dancing. 'What more can I hope for?' I forget everything.

If the Paengju pours the Dami tea, lift it with both hands and drink it in three portions. When the cup is empty, pour again. The coconut macaroon she prepared is also delicious. On a rainy day, it is just my style to find a warm and comfortable place like a cat and to sip wine and tea.

I didn’t even know what a Paengju was. Not even make a coconut macaroon. I am a woman who is just drowned in the atmosphere.

Moreover, today is a writing meeting with some of my favorite friends. It’s just a group of people who read whatever they want to write and talk to each other.

I was nervous whether I was chasing time or time is chasing me. I grabbed a cup that was handed to me by Paengju and brought it close to my mouth and I returned to old days back because of the fragrance of tea. The Paengju who look like a young monk holds soft eyes on the cup and slowly lifts up the fine hands to fill the empty cup. When the tea stays in the nose and goes to the mouth and sweeps through the throat, it feels like the things that I hold so tightly that I don’t miss are falling apart. Why am I so obsessed with things that are useless?

'How are these and how are they?
How about the Mangsu-san Deureongchi intertwined?' 

The next meeting is with a Puer tea. The universe will put up a large thermal barrel, and Paengju will pour Puer tea in my cup. On that day, I must watch tea ceremony properly.

What if I do not know tea ceremony?
What if I do not write well?
Leaning on the back of the village shrine
As Mangsu-san Deureongchi intertwined
It's entangled with friends, and we can sip tea.

Saturday, October 6, 2018

부부간의 의리

남편은 컴퓨터 자판도 두드릴 줄 몰라요. 이메일은커녕 북마크에 넣어 준 조중동(신문)만 볼 줄 알아요.”
라고 내가 말했다. 
이메일은 간신히 할 줄 아는데 내가 죽으면 어떡하려는지 걱정이야.
선배님도 본인 남편에 대해 말했다
별걱정을 다 하시네요. 남자들은 마누라 떠난 후에 젊은 여자 만나 더 잘 살 텐데요.”

남자들은 조강지처가 죽으면 싱싱하고 예쁜 여자 만나 왜 이제야 만났냐!’ 며 천생연분인 양 알콩달콩 신혼살림 차린다. 그러나 많은 미국 노인들은 자신의 재산에 애착이 강해 새로운 여자 만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그래서인지 동네 다이너에 가면 손을 덜덜 떨면서 혼자 끼니를 해결하는 노인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친정엄마가 돌아가시자마자 우리 언니 또래의 여자가 어두컴컴한 골목에서 대기하고 있었다는 듯 화사하게 웃으며 등장했다. 혼자 외롭게 멀리 있는 아버지를 걱정하느니 젊은 아줌마와 행복하게 지내는 것이 나를 위해서도 다행이라며 반갑게 인사했다. 아버지는 갖은 정성을 다 쏟는 그녀에게 딸린 여러 명의 자식 학자금, 결혼 비용 심지어 이혼한 자식 재혼 비용까지 댔다. 나는 아버지의 행복을 위헤 장구 치는 옆에서 살살 북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는 나름대로 우리에게도 최선을 다했고 내가 이만큼 살도록 물심양면으로도 많이 도와주셨지만, 엄마가 돌아가신 후 우리 여자 형제들은 찬밥신세가 되었다. 이런 기억을 안고 사는 나는, ‘나 살아생전에 남편과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자. 죽고 난 후, 나 없어도 세상은 잘 굴러갈 것이다. 그리고 남은 사람은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라고 생각하며 산다.

, 살아생전 모은 재산의 반은 내 몫이다. 남편 몫이야 젊은 여자에게 쓰든 말든 내 몫만은 내가 원하는 곳에 써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나 남자들이 젊은 여자에게 미치면 물불 가리지 않을뿐더러 여자 또한 더 많은 재산을 차지하려는 것이 요즘 아니 늘 있었던 세상인심 아닌가! 누구 말처럼 반만년 찌들어 살다 진짜 돈맛을 보고 모두 돈돈하면서 환장하는 시대 아닌가?

리빙트러스트를 만들었다. 부부 중 하나가 가고 나면 남은 사람에게 전부 남겨지는 것이 아닌, 몫의 반만 받는 것으로그러나 그건 세상 뜨고 난 후의 서류상의 일이다이런저런 골 아픈 서류처리를 늙은 마누라인 내가 컴퓨터로 다 해결해주니 남편은 과연 행복할까? 

그냥 부부간의 행복했던 기억이 서로의 바람을 저 버리지 않는 의리로 연결되리라 믿고 싶다. 아버지가 엄마에 대한 의리로 재혼만은 마다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