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April 26, 2014

황혼 들러리

생각만 해도 신이 난다. 생전 들러리라고는 서 본 적이 없는데 잘하면 친구의 결혼식에 들러리를 서게 될 것 같다. 친구가 결혼하고 싶다니 들러리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부케 또한 받아 본 적이 없어 탐이 나지만 나는 이미 임자가 있는 몸.

매달 둘째 화요일 북클럽이 끝나고 친구들 서너 명과 그달 읽은 책에 관해 한바탕 수다를 떤다. 북클럽 시간에는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많아 입을 다물고 있다가 비슷한 처지끼리 남아 다물고 있던 입 운동을 하느라 집에 갈 생각도 않고 지껄이며 노는 것이다.

이번에는 우리 집에서 밤늦게까지 놀았다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잘한 일과 가장 후회스러웠던 일
을 각자 돌아가며 이야기하다 한 친구가 2년 동안 사귀던 남자와 결혼하고 싶다기에 60이 글피인 여자들이 들러리를 서겠다며 난리가 났다. 싱글인 친구가 부케를 받기로 하고.

결혼식은 버뮤다 휴양지에서, 비용도 각자, 드레스도 각자가 하겠으니 결혼 날짜만 잡으라고 모두가 흥분했다. 그중 한 친구 아들이 얼마 전 도미니카 휴양지에서 결혼식을 했다. 바닷가 모래밭에 뒹굴고 있는데 
엄마 빨리 와 나 결혼식 해야 해.’ 
하고 불러서 식장으로 부리나케 달려갔다는 이야기에 우리는 더욱 흥분했다.

먹고 마시고 놀다 
빨리 와 내 결혼식 시작했어.’ 
부르면 할머니들이 같은 색 드레스를 입고 뛰어가는, 게다가 나이 든 신랑 측 들러리들이 턱시도를 입고 늙어서 펭귄처럼 뛰어오며 저희 늙은 것은 생각 못 하고 
웬 할머니들이’ 
상상을 하니 웃음이 절로 난다.

뭐 어려운 일이겠는가? 이럴 때 유쾌하고 경쾌한 꺼리를 만들어 즐기며 살아야지여행 패키지값만 내면 리조트에서 결혼 준비를 다 해준다. 주례까지. 친구끼리 여행도 갈 겸 떠나고 싶은데 남편은 혀를 찬다
또 시작이야. 언제 철들래?” 
철들면 심심하고 외로워 그리고 피곤해 그냥 이렇게 나이브(naive)하게 살다 가면 안 될까?”

노인네처럼 툭하면 혀를 차는 남편을 확 내다 버리고 싶지만, 예전과는 달리 수입도 짭짤하게 만들어 오니 살살 꼬드겨 들러리 서러 휴양지에 가고 싶다. 그런데 친구가 나를 들러리 서라고나 할까? 얼굴 주름살은 눈에 띄지만 그중 내 허리가 가장 가늘어 드레스를 입으면 뒷모습은 봐 줄 만한데?

계획도 없는 일을 나 혼자 흥분하며 상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인생 별거 있나 할 수 있으면 재창조해 가며 즐겁게 남은 생을 살아야지.
"친구야, 내가 들러리 서지 못해도 좋으니 행복하게만 살아라."

Friday, April 25, 2014

Twilight bridesmaid

The mere thought of it makes me excited. I've never been a bridesmaid before, but I think I'll be a bridesmaid at a friend's wedding.

On the second Tuesday of every month, during the book club hours, there are many well-informed people talk, so I keep quiet. After the book club, I talk about a book with some friends. And we have fun without thinking of going home.

This time, we played late at night at my house. We talked about "the best thing we've ever done and the most regrettable thing we've ever done in our life." One of the friends wants to marry a man she has been dating for two years. Twilight women were uproar that they were going to be the bridesmaids. A single friend decided to receive a bouquet.

Everyone was excited to decide the date and place of the wedding. They wish to have a wedding at a resort like Bermuda and they said would pay for their bridesmaid expenses. One of the friend's sons recently got married at a Dominican resort. She was lying on the sand at the beach when her son called “Mom, come quickly, I have to get married” she rushed to the wedding hall!

I smile in my imagination that when we are eating, drinking, and playing, someone shout, “Come quickly Wedding is going to start,” the elderly bridesmaid runs in the same color dress, and the elderly best men runs like a penguin in their tuxedo.

What would be difficult? In this situation, we should make a pleasant and cheerful mind and enjoy our life. If we pay for the wedding package, the resort will prepare for the wedding. I want to go on the wedding trip with my friends, but my husband keeps his tongue on, "You are starting again. When will you become mature?" “If I become mature, I feel bored, lonely, and tired. Can't I just live like this?"

I want to throw away my husband, who often kicks his tongue like an old man, but he earns more money than before. If I want to go to the resort, I have to make my husband feel good. Should my friend ask me to be a bridesmaid? I can see the wrinkles on my face, but my waist is the thinnest among my friends. If I wear a dress, it would look nice in my back.

My friend may not be planning to marry, but am I alone in imaging her wedding and excited? If I can do anything about my life, I'll recreate it and enjoy the rest of my life.

Friend, if you don't want me to be a bridesmaid at your wedding, I am fine. Live happily ever after.

Saturday, April 19, 2014

머리를 볶아도

소위 낭만의 시절이라고 일컫는 70년대, 내가 염원했던 남자를 서너 번 만나자마자 버림받았다

장사꾼 아버지를 둔 나와 교수 아버지를 둔 그와의 사회적 인식의 틈을 메꿀 수 없어 헛소리를 한 나의 잘못으로. 그 내용은 차마 다시 거론하고 싶지 않다.

비가 억세게 내리던 날, 그에게 잘못을 구했으나 그는 "더는 만나고 싶지 않다."
고 했다푸른색 옷이 빗물에 푹 젖어 검은색으로 변할 때까지 빗속에 서 있었다며칠을 시름시름 앓았다. 그를 빨리 잊기 위해 나를 가장 혹사하는 방법으로 70년대 마이클 잭슨의 아프로 스타일로 머리를 또 볶았다.

그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건 이후 단 한 번도 머리를 볶지 않았다. 그러나 미장원 주인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내 머리를 맡겨도 괜찮겠다는 느낌에 확 저질렀다. 그녀는 내 얼굴이 작아서 잘 어울릴 거라며 머리를 말기 시작했다. 어릴 적 뽀글 머리에 덮인 그런대로 귀여웠던 내 모습을 상상하며 기대에 가득 차 끝나기를 기다렸다.

작은 얼굴을 폭 덮은 뽀글 머리에 뿔테 안경을 끼고 청바지에 쑥색 코듀로이(corduroy) 재킷을 입고 미팅에 나가면 적어도 퇴짜 맞는 일은 없었다어두컴컴한 다방에 앉아 턱을 괴고 수심에 찬 모습으로 남학생들의 길고도 지루한 개똥철학을 잘도 들어주곤 했기 때문인지.

어처구니없는 발상이지만, 긴장 속에 항상 정신을 곤두세우고 꽉 막힌 머리구조로 살아가는 내가 너무 싫다. 예전처럼 머리 외부가 변하면 내부도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해서 볶았다고도 할 수 있다. 나를 버리고 미쳐야 그럴듯한 발상에 근거한 새로움이 나오지 않을까?

헤르만 헤세의 나르시스와 골드문트에서 골드문트처럼 집을 떠나 자유로운 영혼으로 방황하고 싶다. 고정된 관습에서 벗어나 자신을 찾아 헤매며 온 힘을 예술에 불사르고 싶다. 그러나 그럴수 없는 지루한 일상 속에서 뭔가 나를 변화 시킬 수 있는 일을 찾다가 내가 한 짓이라고는 고작 미장원을 찾아간 것이다.

"머리가 잘 나왔어요." 
미장원 주인이 들이미는 거울을 차마 들여다볼 수가 없었다. 자리를 박차고 문밖으로 뛰쳐나왔다. 확 스치는 찬 바람에 정신이 들었다. 진부한 머리채를 바람에 날려 버리듯 마구 흔들었다
내가 왜 이러지!’ 

아무도 없는 집에 와 자세히 거울을 들여다봤다. 머리칼은 변했는데 내 머릿속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늘상적인 평범함으로는 안된다. 달라져야 한다. 변신해야 한다.' 

Friday, April 18, 2014

Even if I get a perm

In the '70s, the so-called romantic days, I was abandoned as soon as three or four times met the man I wanted. It was my fault that I talked nonsense because I couldn't bridge the gap between social awareness with him who had a father was a professor and I had a father who was a merchant. I don't want to go back to the detail.

On the day when the rain came down, I begged him for my fault, but he said, “I do not want to see you anymore.” The blue clothes stood in the rain until it turned soaked in the rainwater and turned black.

After several days of long illness, I got a perm my hair in the 1970s with the Afro style of Michael Jackson as a way to quickly forget him.

I haven't had a perm since the incident I don't want to remember. But when my eyes met the owner of the hairdresser, I felt it was okay to leave my hair with her. She began to perm my hair saying that my face was small and would look good on me.

There was no rejection at least when I went to a meeting with a perm hair, horn-rimmed glasses, and a artemisiagreen corduroy jacket. Maybe it was because I sat in a dark coffee shop, hung my chin and listened to the long and boring philosophy of boys.

It's a ridiculous idea, but I hate to live in a always alerted to the tension and living in a clogged structure. It can be said that I had a perm because I thought that changing my hair like before would change my inner head a little. Don't you think you need to abandon yourself and lose yourself to come up with a new idea?

I want to leave home like Goldmund in the "Narcissus and Goldmund" of Hermann Hesse and wander to the free soul. I want to get out of the fixed custom and search for myself and devote myself to art. But in this boring everyday life, the only thing that can change me is visiting a hairdresser.

I could not look into the mirror that the owner of the hairdresser showed. I ran out of the door. I was caught up in the cold wind. 'Why am I doing this!'

I came to the house where no one was there and looked closely into the mirror. My hair changed but it didn't affect me at all. It should not be ordinary mundane. It should be different. I must transform.

Saturday, April 12, 2014

Please do it yourself

덜그럭 쾅쾅 문 여닫는 소리에 이어 샤워 물소리가 난다. 다시 킥, 쾅 소리가 이어졌다
여보, 밥 줘.” 
달그락 달그락, 밥상 차리는 소리 그리고는 밥을 먹는지 조용했다.

여보, 약 먹게. .” 
냉장고에 있어요. 갔다 마셔요.” 
짜증 섞인 쇳소리에 잠이 다시 들려다 깼다. 남자가 일어나 부스럭거리며 냉장고 문을 열었는지 
물 어디 있어?” 
거기 있잖아요.” 물을 찾지 못했는지 앙칼진 소리가 
여기 있잖아요~” 
옆에 누워있던 남편이 벌떡 일어나 나갔다
밥 먹어.” 
아니 전 됐어요.” 
문이 쾅하고 닫히는 소리가 나는 것이 남편이 밖으로 나가나 보다. 나는 계속 누워있었다. 부엌에서는 여전히 남자가 뭔가를 요구하면 여자는 짜증 섞인 소리로 쉬지 않고 대꾸하며 대령하고를 반복했다. 그러다 큰소리가 났다가 수그러들고 다시 큰소리가 나는가 하면 간간이 소곤거린다.

결혼 전 여자의 목소리는 들어보기 어려울 정도로 말이 없고 다소곳한 사람이었다. 덩치가 커도 엄청 큰 남자는 가만히 앉아, 끊임없이 이 작은 체구의 여자를 종 부리듯 부린다.

누구를 탓하랴. 독자라고 떠받들어 키운 남자의 엄마다. 그리고 익숙하게 처리하지 못하는 남자를 보며 아예 본인이 하는 것이 더 빠르고 낫다며 앞장서서 하는 그의 와이프 탓이 아닌가. 거듭되는 실수를 통해 배우게끔 내버려 두지 않고 해 준 두 여인의 그릇된 생각이 만든 결과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잔소리했다고 대접도 받지 못하고 아등바등 늙어가는 이 작은 여자가 불쌍하다.

책 읽기를 즐겨 지식만이 그득한 남자, 그 지식은 정녕 생활과는 무관한 것인가! 세상을 둘러보지 않아도 책을 통해 다 알고 있는 남자의 머릿속. 세계사, 지리, 역사, 정치 모르는 것이 없이 해박하다. 고전에도 박식해 고시조를 줄줄 외운다. 영어에 스페인어 유창한 언어 실력을 갖춘 남자의 머릿속으로 정녕 생활의 지혜는 들어설 자리가 없었단 말인가!

우리 부부도 별다르지 않겠지?’ 
하는 생각을 하며 하염없이 누워 있었다. 남편과 아이들이 스스로 하게끔 해 주지 말아야 할 텐데
내가 할게. 놔둬요. 엄마가 해줄게.’
는 아이들과 남편을 홀로 서게 할 수 없다. 도와주지 않는 것이 그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임을 알면서도.

"남편아, 그리고 아들들아, 와이프와 이혼하지 않고 오손도손 행복하게 살고 싶으면 Please do It yourself. (스스로 알아서 해라. 제발)." 
남편이 좋아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 홈디포 비즈니스 구호다.

Friday, April 11, 2014

Please do it yourself

Following the clattering of doors, the shower water is heard. There was kick and a bang again. "Honey, give me the meal," he said, and then there was a noise setting the table. It was quiet as if they were eating.

"Honey, give me water to take the medicine." "It's in the fridge. Go and get it." The woman's irritating sound woke me up. The man stood up, fluttered, opened the refrigerator door, and asked, "Where's the water?" “It's there," followed by the woman's rasping.

My husband lying next to me got up and left the room. "Let's eat." "No thanks." The sound of the door banging shut seems to be my husband going out. I didn't get up. In the kitchen, the man still demanded something, and the woman responded with an irritated voice.

A woman's voice before marriage was too quiet and rather to be heard. Even though he's big, he sits still and constantly is looking for this little woman.

Who should blame? It was the fault of the man's mother who put him on the pedestal. And it was because of his wife who took care of all his demand. It was the result of two women's wrong thoughts that did not allow him to learn about his repeated mistakes on his own. I pity this little woman who is getting old being treated like a slave.

A man who enjoys reading books and is full of knowledge, and that knowledge has nothing to do with life! He knows everything about world history, geography, and politics. He is well versed in classic, and can memorize old Korean verse. He also speaks fluently English and Spanish but there is no room for wisdom in his head.

I would let children and husband do it themselves. Can let them stand-alone. Not helping them is what truly loves them.

Husband and sons, if you want to live happily with your wife without divorce, do it yourself. It's a Home Depot business slogan that my husband likes but doesn't practice.

Saturday, April 5, 2014

30년만의 맨해튼 귀환

새벽 4 23, 길 건너편 건물에도 나처럼 밤잠을 설치는 사람이 있다. 불이 훤하게 켜져 있다. 나는 브루클린 그린포인트를 떠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 못 하고 새벽에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남편은 크루즈를 타고 가는 느낌이라는 엉뚱한 소리나 지껄이고.

30년 만에 맨해튼으로 돌아온 것이다. 결혼하면서 살 곳을 마련하지 못해 맨해튼 소호에서 남편의 룸메이트와 셋이 살았다. 치솟는 렌트로 룸메이트는 서울로 우리는 저렴한 거처를 찾았다. 윌리엄스버그 다리를 건너 그린포인트 이스트 강가 끝 공장 건물에 똬리를 튼 것이 정확하게 30년 전이다.

"한번 사대문을 떠나면 사대문 안으로 다시 돌아가기 힘들다." 
친정아버지가 중구 남산동을 떠나 이태원에 살면서 끊임없이 내뱉던 푸념이다. 
"한번 맨해튼을 떠나면 다시 돌아가기 힘들다."
나도 아버지처럼 중얼거리며 살았다.

아이들은 브루클린 그린포인트를 무척 좋아한다. 물론 그곳에서 태어났고 자라서일 수도 있다. 그리고 젊은 사람들이 몰려와 자신들도 힙스터(Hipster)인 양 폼 잡고 젊음을 즐기느라 신이 나서 떠나기를 원치 않는다대학 졸업하고 직장을 잡으면 집을 떠날 줄 알았는데 전혀 반응이 없었다. 밥해 주기 싫은 내가 떠날 수밖에 없다.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키웠다고 생각한다. 남편이 아무리 불러도 대꾸하지 않다가도 아이들이 부르면 생선이 도마 위에서 튀듯 자다가도 벌떡 일어났다. 세상 모든 소리가 엄마~로 들을 정도로 아이들에게 나의 젊음과 에너지를 쏟았고 정든 보금자리까지 내 줬다.

그린포인트에 젊은 사람들이 몰려오고 개발한다고 주위가 어수선해서 언젠가는 떠나려고 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나는 나대로 각자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일 하며 최선을 다해 남은 삶을 자유롭게 살고 싶다. 물론 남편과 말이다.
한국 음식 먹고 싶으면 와라.” 
엄마 길 건널 때 차 조심해요. 바쁘다고 아무 데서나 막 건너지 말고요.” 
어릴 때 아이들에게 했던 잔소리를 요즈음 내가 듣고 산다. 저희 눈에는 맨해튼 큰길을 헤매는 조그만 엄마가 걱정스러운지 조심하라고 잔소리하고 야단도 친다. 길 건널 때는 손도 잡아주면서.

"너희나 잘 살아라. 대학 등록금까지 다 대 줬으니 더 이상은 없다. 결혼도 알아서 하고 나는 그저 결혼식 하객으로나 갈란다. 나중에 아이 낳아 지지고 볶든 말든 아예 키워 달라는 소리는 입 밖에 내지도 마라. 너희 키운 것으로 땡이다."

너희 인생이 소중한 만큼 엄마 아빠의 인생도 소중하단다. 

Friday, April 4, 2014

Return to Manhattan after 30 year

At 4:23 am, there is a person who woke up like me in a building across the street. The light is on. I left Greenpoint, Brooklyn and can’t adjust to the new environment and wake up at dawn and look out the window. My husband says it feels like he's riding a cruise.

I returned to Manhattan after 30 years. I couldn't find a place to live when I got married, so my husband's roommate and three lived in Soho, Manhattan. With the soaring rent, the roommate moved to live in Seoul and we found a cheap place. It was precisely thirty years ago that we crossed the Williamsburg Bridge and moved to the factory building at the end of the East River in Greenpoint.

Once you leave the four main gates of old Seoul, it is hard to return to the inside of the gate again. My father left Namsan-dong, Jung-gu that is in the four main gates, and lived in Itaewon, where he was constantly complaining. I also mumbled, 'It's hard to go back to Manhattan which once I left.'

My children love Greenpoint, Brooklyn. Of course, they were born and raised there. And many young hipsters came. That's why my children don't want to go away to enjoy their youth as a hipster.

I thought they would leave home when they got a job after graduating from college, but they didn't moved at all. I had to leave because I didn't want to cook for them. I think I raised my children as much as I could. No matter how much my husband called me, I don’t respond right away but when my kids called me I responded as if the fish popped up on the chopping board. I put my youth and energy into the children and gave them my beloved nest.

There were a lot of young people moving into Greenpoint and cluttered around, so I was going to leave someday. I want to do what I want to do, and I want to live the rest of my life freely, of course with my husband.

"Come here if you guys want to eat Korean food." "Mom, be careful of cars when you cross the street. Don't just cross anywhere because you're busy." I've been listening to the nagging kids that I used to do these days. In their eyes, the little mom wandering the streets of Manhattan must be worried. They are nagging me to be careful. They hold my hand when I cross the street.

Do well yourself. I have paid college tuition, so there is no more. You take care of your wedding. I just go to the wedding as guest. Do not ask me to raise your children later. I've done my job for your upbringing.

As much as your life is precious, father and mom's life is also import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