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June 19, 2010

미스터 크로우를 기다리며

정말 내 앞에 앉아 밥 먹은 사람이 미스터 크로우였다고? 
그렇다니까. 
그래! 난 웬 이상한 녀석이 앞에 앉아 있나 했지. 그 옆에 젊은 여자는? 
애인이라잖아요. 
꽤 어려 보이던데. 
아이고 다리야 .괜히 이 옷을 입었어. 힘들어 죽는 줄 알았네. 
호텔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나는 굽 높은 신발을 벗어 던졌다.

얼마 전, 우리는 남편이 속해있는 갤러리 디랙터와 함께 댈러스에 있는 미술관에 개인전을 하러 갔다. 공항에 도착하니 리무진이, 그것도 아주 긴 것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세상에 태어나 리무진을 다 타다니공항에서 호텔까지 분명히 가까운 거리는 아닌듯싶은데 왜 난 리무진을 탔다가 달려보지도 못하고 바로 내린 느낌이 들었는지! 리무진 안에서 보는 바깥 풍경은 작은 티브이 화면 만보다 갑자기 크고 질 좋은 화면을 보는 듯 신기해서 시간이 그리 빨리 달아나는 줄 몰랐다.

호텔에서 잠깐 휴식을 취하고 디너는 미술관 주인인 미스터 크로우와 함께 하기로 되어 있었다미술관에 초대해준 것도 고마운데 디너까지나. 예의를 최대한 갖추느라 평상시에 입지 않는 정장에 남편은 넥타이까지 맺다약속된 식당에 우리가 먼저 나타나 미술관 디렉터와 몇 마디 주고받고 있었다. 또 다른 정장을 한 콜랙터라는 두 남자가 들어왔고 긴 머리를 뒤로 묶은 허름한 옷을 입은 50대 중반의 남자가 빨간 드레스를 입은 젊은 여자와 나타났다. 청바지에 검은 중국 전통 상의를 걸친 영화 대지의 한 장면을 현대화한 분위기를 연상케 하는 이 남자가 우리 부부에게 다가왔다.

악수를 청하며 미스터, 미스에스 리냐며 자기는 트러멜 이고 함께 온 여자는 걸 프랜드라며 소개 했다. 흔히 기억하기 쉬운 미국 이름인 피터, 존이 아닌 생전 들어본 적도 없는 트러멜’, 고개를 갸웃거리며 남편을 향해 
우리 말고도 초대한 사람이 많은가 봐.”
댈러스 화가도 초대했나 보지.” 
다른 사람들은 모두가 정장 차림이었고 오직 이 사람만이 예술가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기대했던 값비싼 정장을 한 점잖은 모습의 미스터 크로우는 끝내 나타나지 않은 채 남편은 트러멜 앞에 나는 그의 여자친구 앞에 앉아 식사는 시작됐다미국에 그리 오래 살았어도 영어가, 영어가 시원치 않아 우리 부부는 물어보는 말에나 몇 마디 대답하며 조용히 그들 이야기를 들었다. 듣다 보니 바로 남편 앞에 앉은 이 포니테일의 주인공이 미스터 크로우라는 것을 알아챘다. 그러나 남편은 여전히 초대해 놓고 나타나지 않는 미스터 크로우를 기다리는 듯한 자세였다.

뭔 식사를 그리도 오래 하는지. 코스가 다양해 난 맨 처음 나온 것만 먹어도 배가 부른데 나오고 또 나오고 아예 주방장까지 나와 한마디를 거드니 밥을 어디로 먹은 것인지 정신이 없었다.

식당을 나와 호텔까지 모시겠다며 따라오는 리무진 운전기사를 따 돌리고 우리는 아무도 없는 댈러스 다운타운을 자유의 몸이 되어 걸었다
도대체 미스터 크로우는 왜 초대해 놓고 나타나지 않은 거야?”
남편이 물었다. 우리는 댈러스 다운타운이 다 울리도록 배를 잡고 웃고 웃다 뒹굴 뻔했다.

돈 많은 사람은 어떤 옷을 입어도 용서가 되고, 돈 없는 사람은 아무리 애써 멋을 내도 티가 나지 않는 게 돈의 힘인가 봐.” 
난 힙스터 차림으로 우리를 편하게 대해준 미스터 크로우가 맘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