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December 12, 2020

이웃이 땅을 사야만 되는 이유

좁은 산책길 맞은편 네 사람이 죽 늘어서 걸어온다. 내가 뚫고 걸어갈 틈이 없다. 전혀 비켜줄 기세가 아니다. 길가 쇠 난간에 붙어서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나쁜 인간들 같으니라고! 바이러스나 걸려라.” 
 홧김에 중얼거렸다.  
“잠깐, 저것들이 바이러스에 걸리면 그 주위 사람들도 걸릴 것이고 또 그 주변 사람에게 옮기다 보면 결국, 같은 동네에서 산책하는 나도?” 
괜한 걱정에 이르자 고약한 마음보를 슬그머니 내려놓는다. 
 “바이러스에 걸리지 말고 건강해라. 차라리 내가 쇠 난간에 잠깐 붙어 있을게.” 

 사촌이 망하면 나에게 나쁜 에너지가 올 것은 당연한 이치다. 돈 꿔 달라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촌이 땅을 사면 밥도 술도 얻어먹을 확률이 높다. 이웃도 마찬가지다. 내 콘도 이웃은 언제나 나에게 친절하고 환하게 대한다. 특히나 왼쪽 이웃은 상당한 이력을 지닌 재즈 음악 매니저이며 그림 수집가다. 우리도 모르게 갤러리를 찾아가 남편 그림 두 점이나 샀다. 그리고 얼마 후 그는 형편이 좋아졌는지 더 좋은 곳으로 이사 갔다. 

 그 유닛에 새로운 이웃이 얼마 전에 이사 왔다. 그런데 이 이웃은 문을 쾅쾅 여닫으며 드나든다. 게다가 남녀가 수시로 큰 소리로 싸운다. 여자 목청이 남자 소리를 압도하며 질러 되는 데야 어이가 없다. 둘이 싸우는 내용을 어슴푸레 들어보니 쩐의 전쟁인 듯하다. 

 주말에 온 남편에게 하소연했다. 남편도 그들과 똑같이 문을 쾅쾅 서너 번 여닫고 그 집 벽을 향해 그 큰 목청을 더욱더 높여 질러댔다. 얼마 동안은 조용했다. 그러나 싸우는 것도 습관인지 우리 유닛과 경계를 이루는 벽면에서 벗어난 다른 방에서 여전히 악다구니를 쓴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가 문 앞에서 그 커풀과 처음 마주쳤다. 싸우는 쉰 목소리만 듣고 내 나이 또래 늙은 여잔 줄 알았는데 젊은 뚱보 여자와 말라깽이 남자다. 손을 들어 인사했다. 여자는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계속 떠든다. 심술꾸러기 싸움닭이다. 그나마 지친듯한 인상의 남자가 손을 쳐들어 마지못해 대꾸했다. 허구한 날 소리를 질러 여자 목소리가 늙어버렸나 보다. 

 평화로웠던 내 삶에 웬일이란 말인가! 이 악다구니 이웃을 어찌 상대해야 할지가 나의 과제다. ‘싸우다가 언젠간 쪼개지고 갈라져 건물을 떠나지 않을까?’ 아니면 ‘돈을 많이 벌어 쩐의 전쟁을 종식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품어본다.

Why my neighbors must buy land

 Opposite the narrow promenade, four people are walking toward me. There's no room for me to walk through. They are not at all in the mood to step aside. Attached to the roadside iron railing, I waited for they to pass. 

 “What a bunch of bad guys! Get a virus.” 
I muttered in a fit of anger. "Wait a minute, if they get the virus, people around them will get it, and if they transfer it to the people around them, in the end, even me who walks in the same neighborhood?"
I quietly put down my nasty feelings. 
“Don't get the virus, be healthy. I'd rather stick by the iron railing for a while." 

 It is natural that bad energy will come to me if my cousin fails. He may ask to borrow money from me. However, if the cousin buys the land, there is a high probability of getting alcohol. The same goes for neighbors. My condo neighbors are always kind and bright to me. In particular, the neighbor on the left is a jazz music manager with a considerable history and a art collector. in spite of myself, he went to the gallery and bought two paintings of my husband. And after some time he moved to a better place because he became better. 

 A new neighbor moved into the unit not long ago. By the way, this neighbor walks in and out of the door with a bang. In addition, men and women often fight loudly. It is ridiculous for a woman's voice to overwhelm a man's voice. After listening to the story of the two fighting, it seems to be a money war between them. 

 I complained to my husband who came over the weekend. My husband, like them, stomped the door three or four times and raised the big voice even more toward the wall of the neighbor. It was quiet for some time. However, it is also a habit to fight, so they still fight in another room off the wall that borders our unit. 

 While waiting for the elevator, I encountered the couple at the door first time. Hearing the hoarse voices fighting, I thought she was an old woman my age, but she was a young fat woman and a skinny man. Raised my hand and said hello. The woman keeps talking without looking at me. She looks a grumpy fighting chicken. The man, who seemed to be tired, raised his hand and responded reluctantly. Screaming out constant, the female voice seems to have grown old. 

 What a peaceful my life so far! My task is how to deal with this neighbor. It is hoped that 'their fight will break apart and split one day and leave the building?' or 'I hope they make a lot of money to end the war.'

Friday, November 27, 2020

노 뉴스 굿 뉴스

 명절이나 생일마다 사람들은 불평불만을 늘어놓으며 투덜댄다. 선물을 받지 못했다고, 며느리가 연락하지 않아 섭섭하다고. 

 며느리가 생일에 돈만 보내고 전화는 하지 않았다고 화내는 시어머니도 있다. 돈 보냈으면 됐지 전화씩이나. 뭘 그리 골고루 바라는 것이 많은지. 며느리라는 사람도 아이를 낳았는데 시댁에서 선물해주지 않았다고 섭섭, 아니 저희가 좋아서 아이 낳고서 선물까지 바라다니. 남에게 바라며 섭섭하다고 징징거리는 사람치고 베풀지 않는다. 

 며느리, 시어머니라는 존재 이전에 그들도 한 인간이다. 그러니 누가 누구를 불행하고 힘들게 한다면 참을 이유는 없다. 

 요즈음 세상은 시어머니도 며느리도 직장 다니고 사회 활동하느라 모두가 바쁘다. 먹을 것이 지천이요 집안엔 물건으로 가득 찼는데 뭐가 더 먹고 싶고 가지고 싶단 말인가. 각자 먹고 싶은 것 사서 먹고, 사고 싶은 물건 사면 되지. 누가 누구를 챙기지 않았다고 불평 불만하면 자신과 가족이 힘들어져 물심양면으로 손해다. 서로가 자유롭게 살고 싶은 데로 내버려 두는 것이 선물이요 배려가 아닐까? 

 누구에게 사랑과 관심 받을 생각 말고 자신을 사랑하며 바쁘게 사는 것이 자신과 가족을 위하는 길이다. 나도 언젠가는 며느리를 볼지 모른다. 결혼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일만 하는 자식이라 확신할 수는 없지만,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다. 그저 저희 좋을 데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주는 것이 효도다. 

 “엄마, 땡스기빙인데요. 갈까요?” 
갈래요. 가 아니라 갈까요? 로 묻는다. 질문의 의미는 바쁘다는 뜻이다. 바쁜 아이 오라 가라 할 수 없다.  
“지금까지 만나지 않고 주의하며 잘 견뎠는데 요번 땡스기빙은 건너뛰자. 바이러스 약이 나왔다니 주사나 맞고서 만나자.” 
“엄마는 나 보고 싶지 않아요?" 
“보고 싶지만, 엄마 보러 오다가 바이러스 걸리면 어쩌려고.” 
“뭐 필요한 것 있어요?” 
“필요한 것 없다. 전화해 줘서 고맙다.” 

 나도 너희 나이에 엄청 바빴다. 연애하느라, 친구들과 노느라 내가 왜 그걸 모르랴. 멀리 산다면 모를까 보고 싶으면 지금이라도 당장 달려갈 수 있는 지척에 사는데. 실은 나도 바빠서.

No news good news

 Every holiday or birthday, people grumble. They are complaining about didn't get the gift, and their daughter-in-law didn't call. 

 There is also a mother-in-law who is angry that her daughter-in-law sent money on her birthday and did not call. What does she want so much? The daughter-in-law gave birth to a child, but she grumble she didn't get her a gift from the parents-in-law. I can't believe she wants gifts after having a baby because the couple love each other and have baby. People who whine about being disappointed in others usually do not give a favor to a person. 

 Before the existence of daughter-in-law and mother-in-law, they were also human beings. Therefore, there is no reason to tolerate someone who makes someone unhappy and difficult. 

 These days, both mother-in-law and daughter-in-law are busy working and socializing. we have got plenty to eat, and the house is full of things. What do we want to eat more and buy more? If someone complains that someone didn't take care of someone, you and your family will suffer both materially and psychologically. Isn't it a gift and consideration to let each other live, as they want to live freely? 

 The way for my family and I is to love myself and live busy without thinking of receiving love and attention from anyone. I might have my daughter-in-law someday. I can't be sure that my children who only works without thinking about getting married, but I don't mind if they get married or not. It is filial piety to just live healthy and happy, as they like. 

 “Mom, it is thanksgiving. Shall we go?” 
Asks the question. The meaning of the question means busy. I can't tell busy children to come. "We've been patient and careful not to meet. Let's skip this thanksgiving. Let's meet after getting a shot. I hear that a virus preventive drug came out.” 
"Mom, don't you miss me?" 
“I want to see you, but what if you come to see me and get a virus?” 
“Do you need anything?” 
“Nothing is needed. Thanks for calling.” 

 I've been very busy at your age, too. I fully understand it. I had been busy dating and hanging out with friends. If I want to see you, I live close by where I can run right now. But actually, I'm also busy too.

Friday, November 13, 2020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새벽 4시 전이다. 어제저녁에 간단히 집어 먹은 김밥이 체했나 보다. 날이 훤하면 공원으로 산책하러 나갈 텐데 어둡다. 나에게 산책은 만병통치약일뿐더러 혼돈 속에서 기쁨과 편안함을 준다. 그러나 너무 일찍 공원에 갔다가 복면 마스크 강도라도 만나면 어쩌려고. 

 커피잔을 들고 이방 저방을 서성이다 창가에 섰다. 건너편 건물 한 아파트 여섯 개 유리창 모두가 훤하다. 밤낮으로 사람 사는 흔적을 전혀 볼 수 없는데도 불은 항상 켜있다. 집주인이 깜박 잊고 코비드19를 피해 시골집으로 피신한 것은 아닐까?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는다니! 무척 궁금하다. 

 내가 사는 콘도 같은 층에도 3월 중순에 떠난 사람들이 9월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그러나 바로 오른편 유닛에 사는 부부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두툼한 옷을 가지러 왔는지 우리 집 문 앞에 밭에서 땄다며 사과 한 봉지를 놓고는 
“또 올게. 몸조심해.” 
쪽지를 남기고 다시 떠났다. 

 날이 밝자마자 공원으로 부리나케 갔다. 서울 남산 산책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차림의 동양 여자가 내 앞에 걸어간다. 마스크, 장갑, 모자로 중무장했다. 한국 여자 특유의 걸음걸이로 부지런히 걷다가 길가에 핀 꽃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언니가 왜 저기에?’ 
반가워서 나도 모르게 가까이 다가갔다. 다가오는 기척에 그녀는 얼른 피하듯 발걸음을 재촉해 멀리 가 버렸다. 맙소사. 

 한국을 떠난 지 40여 년이 흘렀건만 이따금 서울의 한 풍경 속에 있는 듯 착각할 때가 종종 있다. 갑자기 잔잔한 슬픔이 밀려왔다. 그동안 바이러스 핑계로 인간 접촉 없이 외딴섬에 갇힌 듯 고립된 생활을 지속하다 보니 헛것이 보였나 보다. 

노랑 잎들이 나를 반기듯 우수수 떨어진다. 고개 들어 우거진 숲을 올려다봤다. 온통 사방이 불 밝힌 듯 벌겋다. 친구에게 빌린 책갈피에 넣어주려고 바닥에 뒹구는 잎새 하나 집어 든다. 나무, 강, 다람쥐 그리고 비둘기들은 변함없이 예전 모습 그대로다. 자연이 건강하다면 곧 좋은 날이 오겠지? 

 올해 많은 사람이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 마치 세상이 종말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세상은 계속 돌고 좋은 날은 온다. 희망을 품고 인내하면 어느 날 우리는 세상이 끝나지 않았음을 자축할 것이다. 저기 고지가 보인다. 

 살아있다는 것은 행운이고 끈기 있게 버틸 수 있는 능력은 선물이다.

The heart is a loney hunter

 It's before four in the morning. I guess the kimbap I ate last night have an upset stomach. I'll go out for a walk to the park if it's bright, but it's dark. For me, walking is not only a panacea but also gives me joy and comfort in chaos. But what if I go to the park too early and meet the masked robber? 

 I stood by the window holding a cup of coffee. All six windows of an apartment building across the street are bright. The lights are always on even though there are no signs of human life day and night. Maybe the resident forgot and took refuge in a country house to avoid Covid19? Still, haven't come back this long! I am very curious. 

 Even on the same floor where I live, people who left in mid-March didn't return until September. However, the couple living in the unit on the right still has not returned. They may had come to take some thick clothes and she put a bag of apples that she picked from a field at the my door and said, “I will come again. 
"Take care of yourself." 
she left a note saying, and left again. 

 As soon as the day dawned, I hurried to the park. Commonly seen on the Namsan promenade in Seoul an Asian woman in her clothes walks in front of me. She was heavily armed with a mask, gloves and hat. She was walking diligently with a Korean woman's peculiar gait and she takes a closer look at the flowers blooming along the promenade. 
'Why is my sister over there?' 
I approached without knowing. At the sound of the approaching, she hurried to step away as if avoiding. Oh, no! 

 Forty years have passed since I left Korea, but sometimes I am mistaken for being in a landscape of Seoul. Suddenly, calm sadness came. I guess I saw phantom thing as I continued living in isolation as if I was trapped on a remote island without human contact due to the excuse of a coronavirus. Yellow leaves are falling down like they welcome me. I looked up at the thick forest. As if the lights are on, the park is bright. I pick up a leaf lying on the floor to put in a bookmark I borrowed from a friend. Trees, rivers, squirrels, and pigeons remain the same as they used to be. If nature is healthy, a good day will soon come. 

 Many people are going through a hard time this year. It may seem as if the world is at its end, but the world keeps spinning and good days come. If we persevere with hope, one day we will celebrate that the world is not over. I see the high ground over there. 

 Being alive is good luck and the ability to persevere is a gift.

Saturday, October 31, 2020

아리스토파네스의 딸꾹질

“나훈아의 ‘테스형’ 노래 틀어봐.” 
남편의 재촉에 샐쭉해진 나는 
“좋아하는 음악이 나와 달라도 너무 달라. 곡조가 다 똑같잖아.” 
남편과의 저녁 밥상머리를 망치고 싶지 않아 듣기 싫지만, 꾹 참고 노래를 유튜브에서 찾아 틀었다. ‘그저 와준 오늘이 고맙기는 하여도, 죽어도 오고야 마는 또 내일이 두렵다.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아! 소크라테스형 사랑은 또 왜 이래.’ 

 “테스형이라는 노랜데 가사가 너무 좋아. 한번 들어봐.” 
친구가 카톡으로 동영상을 보내왔다. 받자마자 지워버렸다. 와! 짜증 나. 왜들 테스형인지 할아버진지의 노래를 들어보라고 난리들인지. 순간, 과연 나는 소크라테스에 관한 책을 읽기나 했던가? 적어도 나훈아는 읽었으니까 노래 가사를 썼을 것이 아닌가? 

집마다 리빙룸 한자리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는 시커먼 피아노를 볼 때마다 ‘엄마가 피아노 연습하라는 소리가 나올까 봐 아이들은 그 주위를 잽싸게 피해 다닌단다. 나야말로 거물인 피아노를 피해다니 듯 소크라테스가 늘어놓을 난해한 변명이 읽기 싫었다. 결국엔 ‘테스형’ 노래가 나오고 나서야 ‘플라톤의 대화편인 소크라테스의 변명.크리톤.파이돈.향연’을 펴들었다. ‘아테네 사람들이여’로 시작하는 책은 나의 예상을 뒤엎고 약간은 재미있게 술술 책장이 넘겨졌다. 

소크라테스의 제자였으며 연인관계였다는 설이 있는 알키비아데스는 향연에서 소크라테스의 말씀을 들을 때마다 신들린 상태가 되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며 눈물은 하염없이 줄줄 흘러내려 옆에 앉아 있다가는 제명에 죽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어떤 글도 남기지 않고 대화를 통해서만 철학을 했다는 소크라테스의 생각을 포착하기가 난해했다. 

향연에서 술자리에 모인 소크라테스와 그의 친구들이 에로스에 관해 한 사람씩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다. 에로스가 자신의 반쪽을 찾아서 완전함을 이루고자 하는 욕망이라고 말한 아리스토파네스가 예기할 차례였다. ‘그가 딸꾹질을 계속하는 바람에 얘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의 아래쪽에 앉아 있던 의사인 에릭시마코스에게 자네가 내 딸꾹질을 그치게 해주던가 아니면 내 딸꾹질이 그칠 때까지 나 대신 얘기를 하든가, 둘 중 하나를 해 주어야겠네. 그러자 에릭시마코스가 말했다. 그러면 내가 두 가지를 다 해주겠네. 자네 차례에 내가 얘기를 할 것이니 자네 딸꾹질이 그치면 얘기하게나. 자네는 한참 동안 숨을 멈추고 있어. 그렇게 해도 그치지 않으면 물을 입속에 머금어서 입 안을 씻어내게. 딸꾹질이 심할 때는 어떤 것을 가지고서 콧속을 간지럽혀서 재채기가 나오게 해보게.’ 

책을 덮고나니 딸꾹질에 관한 희극적인 부분만 기억난다. 나 자신을 탓하며 숙제하듯 ‘플라톤의 대화편인 소크라테스의 변명.크리톤.파이돈.향연’을 간신히 끝냈다.

Aristophanes' hiccups

“Play Na Hoon-a’s ‘Mr. Tes’ song.” My husband's urging me “Your favorite song is different from what I like. All of his tunes are the same.” I don't want to hear the song but I don't want to ruin my dinner table with my husband, I held back and played the song on YouTube. 'I am grateful for today to come anyway, I am afraid of tomorrow also coming anyway. Ah! Mr. Tes, why is it so hard to live on, Why so hard Ah! Mr. Socrates, why is it so hard to fall in love.’ 

 "It's a song called Mr. Tes, the lyrics are so good. Listen.” A friend sent me a video via KakaoTalk. I erased it as soon as I received it. Wow! It's annoying. Why is everyone asking me to listen to a song called Mr. Tes? At the moment, did I ever read a book about Socrates? At least Na Hoon-a read the book, so wouldn't he have written the lyrics of the song? 

 Whenever I watch a big black piano that occupies a living room in each house, the children quickly avoid around the piano, because they are afraid that their mother will tell them to practice the piano. I also didn't want to read a book about Socrates as if children were avoiding the piano. In the end, only after the song Mr. Tes was released, I start read the ‘Plato's dialogue, Socrates' Excuse. Krypton.Phaidon.Feast. The book beginning with ‘Athens People’ overturned my expectations and the pages of the book turned over easily. 

 Alcibiades, who was a disciple of Socrates and was rumored to have been in a relationship, said that "whenever I hear Socrates' words, I feel like an inspired of god, my heart is pounding like crazy, and tears flow down. If I’m sitting next to him, I won't die of a natural death" But for me, the book is difficult to capture Socrates' idea of philosophy only through dialogue without leaving any writing. 

 At the Feast, Socrates and his friends gathered at a drinking party talk about Eros one by one. It was the turn of Aristophanes, who said that Eros was a desire to find his half and achieve perfection. 'He is the next in line to speak, but he is undergoing an attack of the hiccups and is unable to speak. He asks Eryximachus, the doctor, to speak in his place. Eryximachus agrees to make a speech now so that Aristophanes can speak afterward, when his hiccups are gone and he said to Aristophanes, you've been holding your breath for a while. If that doesn't stop, keep water in your mouth and rinse your mouth. When hiccups are severe, take something to tickle your nose and sneeze.' 

 As I blaming myself for remembering only the comical part about hiccups the moment I closed the book, I barely finished the ‘Socrates’ Excuse.Krypton.Phaidon.Feast,’ as if doing homework.

Saturday, October 17, 2020

점점 작아지는 엄마

“엄마 왜 이렇게 작아졌어요.” 
너는 점점 커질 때마다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는 것을 기억하니?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엄마 왜 이렇게 늙었어요.’라는 소리로 들렸단다. 내가 늙는다는 것이 서럽다기보다 너희들이 잘 자라는 것이 기뻤다.  

 너희들이 브루클린, 그린포인트에서 태어나 자라고 학교를 졸업하고 다른 나라에서 일하다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도 이 엄마는 늘 작았단다. 너희들이 이 글을 읽을 때는 이미 나는 너무 늙거나 아니면 이 세상에 없겠지. 살아있다 한들 희미해진 기억을 정확히 말해주지 못할 것 같다. 그래서 난 오래전부터 잊혀 사라질 날들을 잡아서 기록하고 있다. 

 내 아버지, 너희들의 외할아버지는 방과 후 집에 오는 버스 정류장에 나를 마중 나오곤 하셨다. 할아버지는 내 손을 잡아 흔드시며 학교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하라고 재촉하셨지. 또한 저녁 전 반주 하시며 당신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워낙에 건강한 할아버지는 늙지도, 죽지도 않고 언제까지나 내가 부르면 반갑게 이야기를 해줄 거라고만 믿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가 작아지고 늙었다는 것을 깨닫고 몹시 슬펐다. 
“아버지, 나에게 못다 들려준 지난날의 이야기를 적어 놓아요?” 할아버지가 돌아가셔도 그가 남긴 노트북을 틈틈이 들여다보며 살아간다면 좋겠다는 생각에 부탁했지. 물론 나는 미국 온 후에도 할아버지와 대화를 이어가고 싶어서 일주일에 한 두통씩 오랜 세월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를 할아버지가 모았다가 돌아가시기 전에 보내와서 간직하고 있다. 어제 일을 이야기하듯 할아버지와의 기억이 생생하게 적혀있는 소중하고 애틋한 기록이다. 

 너희들은 엄마가 건강하다고 생각하고 걸프렌드나 강아지와 시간을 보내느라 나의 글을 읽을 시간이 없는 줄 안다. 그러나 너희들도 언젠가는 나와의 기억을 떠올리고 싶을 때가 있을 거다. 나이가 들수록 그런 기억들이 소중해진단다. 문자로 써 놓지 않으면 희미해져 사라진다. 못하는 영어지만 그동안 써 놓은 글을 다 번역했다. 너희들이 한국말은 곧잘 하지만 아무래도 읽기와 쓰기는 쉽지 않아서다. 

 사람은 20살 이전의 기억으로 산다고 한다. 나도 어린 시절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했던 기억과 사랑에 의지해서 삶을 살았다. 기록은 단지 기록으로만 남지 않고 삶의 연장으로 함께 살아간다. 며칠만 지나면 예전 같지 않게 희미해지는 기억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더욱더 간절해지는구나. 너희들도 너희 삶을 기록해두기 바란다. 삶의 기록을 남기려면 아무래도 삶에 충실할 수밖에 없지 않겠니? 

 엄마의 기록이 너희에게 용기를 주고 행복한 삶에 보탬이 되기 바란다.

Mom is getting smaller

 “Mom, why are you getting smaller?” 
Remember you said, stroking my head every time you got bigger? Whenever I heard that, it sound like, 'Mom, why are you so old?' I was happy that you guys were growing up well, rather than being sad that I was getting old. 

 I was always short when you guys were born and raised in Greenpoint, Brooklyn, graduated from school, worked in another country, and returned home. By the time you guys read this, I'm either too old or I may be not in this world. I don't think I can accurately tell the fainted memories even if I'm alive. So I have been recording the days that will be forgotten and disappear from a long time ago. 

 My father who is your grandpa used to pick me up at the bus stop when I came home after school. Your grandpa grabbed my hand and shook and urged me to tell the story of what happened at school. He also told me his turbulent story while drinking before dinner. 

 I had believed such a healthy grandfather did not grow old or die, and only believed that he would gladly tell me the story whenever I called him. Then one day, I felt very sad when I realized that your grandfather was small and old. 
"Daddy, do you write down the stories that you didn't tell me?" 
Even if grandfather died, I asked for the idea that it would be nice if I could live by looking at his notebook he left behind. Of course, I wanted to continue the conversation with your grandfather even after I came to America, so I sent a long letter, one or two times a week. The letter was collected by grandfather and sent to me before he died. As if talking about yesterday's incident, it is a precious and affectionate record with vivid memories of your grandfather. 

 You guys think I am healthy and you don't have time to read my writings because you spend time with a girlfriend or dog. However, there will be times when you also want to recall memories of me one day. Those memories become more precious as we get older. If we don't write it in text, it will fade and disappear. Though I am not good at English, I translated all my writings I had written, because you guys speak Korean well, but it is not easy to read and write. 

 It is said that people live with memories before the age of 20. I also lived my life based on the memories and love I had with my mother and father when I was a child. Records do not remain only as records, but live together as an extension of life. I feel more and more desperate that I don't want to miss the fading memories. I hope you guys also write down your life. If you want to keep a record of your life, you have no choice but to be faithful to your life. 

 I hope my records give you courage and help you guys live a happy life.

Saturday, October 3, 2020

그때는 그랬다

그 여자 이름은 상숙이었다. 성은 모른다. 내가 그녀의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중학교 삼학년이었다. 어른들이 ‘상숙이가’, 이모들이 ‘상숙이 년이’라고 수군덕거려서 귀에 박혔나 보다. 이상도 하지. 결혼 전에 만났던 남자들 이름은 생각나지 않지만, 아버지 내연녀 이름은 평생 잊지 못하다니! 나 자신을 믿을 수 없다. 

극성스러운 이모들이 엄마를 끌고, 나를 밀며 도착한 아파트 단지는 그리 크지 않았다. 짙은 회색 아파트 건물을 올려다보자 거대한 괴물과 맞닥뜨린 듯 섬찟했다. 발이 떨어지지 않아 머뭇거리며 어디론가 숨고 싶어 두리번거렸다. 그때 오른쪽 둔덕에 파란 용달차 서너 대가 눈에 띄었다. 내 눈에 왜 용달차 대여점이 눈에 띄었을까? 

아파트 번호를 모르는 이모들은 건물 1층 오른쪽부터 벨을 누르라며 내 등을 쿡쿡 떠밀었다. 
“아픈 엄마를 돌봐야 해. 앞장서지 않고 뭘 해. 아파트마다 벨을 눌러. 찾을 때까지.” 
이모들이 번갈아 내 등을 철썩철썩 내려치며 떠밀었다. 

키 작은이모가 발돋움해서 상숙이의 머리채를 낚아채고 큰이모가 아귀처럼 달려들어 패던 장면은 선명하지만, 지면상 독자들이 상상하시길 바란다. 

“이제 그만해. 사람 죽이겠다. 고만하지 못하겠니?” 
힘없는 목소리로 엄마가 이모들에게 소리쳤다. 
“너도 불쌍한 팔자구나. 우리 집에 함께 가서 나와 살자. 내가 병이 들어 아이들을 제대로 돌볼 수 없으니 네가 도와다오.” 
파란 용달차가 와야만 싸움이 끝날 것 같다는 생각이 갑자기 내 머리통을 쳤다. 
“엄마, 오다 보니까 가까운 곳에 용달차 서너 대가 있던데 용달차 아저씨보고 여기에 있는 짐을 싣고 우리 집으로 가자고 할까?” 

엄마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고는 일이 해결되지 않을 것 같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용달차 대여점으로 달려갔다. 용달차를 타고 아저씨와 함께 와서 대충 짐을 실었다. 그리고는 조수석에 앉아 우리 집으로 안내했다. 나의 단조로운 어린 시절은 그날로 끝났다.  

상숙이 아줌마는 우리와 얼마간 함께 살았다. 키가 크고 무척 말랐다. 그리고 착했다. 아침에 내 도시락을 싼 보자기 틈에 용돈을 넣어주며 학교에 잘 다녀오라며 슬픈 미소를 짓곤 했다. 덕 많은 엄마와도 잘 지냈다. 그러나 그녀와 사는 것에 저항하는 몇몇 사람이 있었다. 결국, 엄마의 마음을 헤아린 그녀는 우리집을, 아버지를 떠났다. 엄마가 상도동에 전세를 얻어주고 다달이 생활비를 보내줬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 그녀와의 끝이다. 

코비드-19를 통해 사람들이 삶의 지혜를 터득해 고난의 시간을 헤쳐나가듯 그 사건은 나에게 상처로 남지 않았다. 오히려 상처를 받을 때마다 더 나은 방향으로 비행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At the time I did

Her name was Sangsook. I don't know the last name. When I first heard her name, I was a junior in middle school. It must have stuck in my ears because adults said, 'Sangsook,' and aunts said, 'Sangsook bitch.' That's weird. I can't remember the names of the men I met before my marriage, but I can't forget the names of my father's mistress forever! 

The apartment complex, which was arrived by the enthusiastic aunts dragging my mother and pushing me, was not very big. When I looked up at the dark gray apartment building, I felt like I was encountering a giant monster. My feet couldn't be lift, so I hesitated and looked around to hide somewhere. At that time, on the right mound, three or four blue delivery vans stood out. Why did the delivery van rental shop stand out in my eyes? 

The aunts, who did not know the apartment number, pushed me on the back to press the apartment bell from the right side of the first floor of the building. 
"You have to take care of your sick mother. Do take the lead. Ring the bell for each apartment until find it," 
The aunts alternately slapped me on the back and pushed me. 

The scene where the younger aunt stood on tiptoe and grabbed Songbooks’ hair and the elder aunt rushed in and beat her like a beast is clear, but I hope readers will imagine it. 

"Stop it now. You guys are going to kill her. Can't you please stop?” 
In a feeble voice, the mother shouted to the aunts. 
"You're a poor fate, too. Let's go to my house and live with me. I'm ill and can't take care of the children properly, so you can help me." 
The thought that the fight would end only when the blue delivery van came, suddenly hit my head. 
"Mom, on the way here, there are three or four vans nearby. Shall I ask the driver to take the luggage here and go home?" 

Mom said nothing. However, she looked as if things would not be resolved without doing so. I ran to the delivery van rental shop. I came back with a driver in a van and roughly loaded Songbooks’ luggage. Then I sat in the passenger seat and guided driver to my house. My monotonous childhood ended that day. 

Aunt Sangsook lived with us for some time. She is tall and very thin. And she was good person. In the morning, she would put the pocket money in the crevices of wrapping my lunch box and smiled sadly saying to have a good day at school. She got along well with my virtuous mother. However, there were some people who resisted living with her. Knowing my mother's heart, she left my father. It was the end with her when I heard that my mom got her a lease in Sangdo-dong and sent her monthly living expenses. 

The incident did not leave a scar on me. These days, just as people have mastered the wisdom of life through Corona-19, rather, I have learned how to fly in a better direction whenever I get hurt.

Saturday, September 19, 2020

돈이라도 생긴다면 모를까

‘생긴 대로 살다 보면 사는 대로 생긴다.’기에 돈이라도 생긴다면 모를까 웬만 해서는 화도 짜증도 내지 않는다. 

보통 날과 다름없이 점잖게 산책하러 나갔다. 키 작은 통통한 남자의 잔뜩 찌푸린 눈과 마주쳤다. ‘왜 쳐다봐.’ 하는 표정이다. 
“엄마, 요즘 밖에 나가면 사람들과 눈도 마주치지 말고 조심해요.” 작은 아이가 한 말이 번득 스쳤지만 이미 늦었다. 그의 가슴에 안긴 아기도 나를 빤히 쳐다본다. 아기 눈에도 내가 다르게 생겼다는 것을 인지하는지 고개를 젖히며 내 얼굴에 눈을 박았다. 

 찌익~찍. 찌익~찍. 맑은 새벽 공기를 찢는 소리가 들린다. 오른쪽으로 기운 다리로는 뛰고 왼쪽 다리는 시멘트 바닥을 끄는 말라깽이 할머니의 운동화 소리다. 괴이한 모습으로 같은 거리를 반복적으로 뛴다. 되돌아올 때도 왼쪽 다리로 둥글게 원을 그리며 뛰느라 고무 닳는 소리가 더욱 커진다. 몸이 이상하다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운동을 끝내고 갈 때 보니 멀쩡히 걷는다. 왜 멀쩡한 몸으로 이상한 소리를 내느냐고? 짜증 나게. 

그야말로 ‘너 보기가 역겨워’다. 젊은 동양 여자가 두 손을 얌전히 깍지 끼고 다리를 넓게 벌렸다. 허리는 끝 간 데 없이 내리고, 쫙 달라붙는 레깅스 입은 엉덩이를 뒤로 쭉 뺀 채 무릎을 구부렸다 폈다 반복한다. 아니 엉덩이를 강 쪽으로 두거나 아니면 남쪽이나 북쪽을 향해 서서 하면 될 텐데 왜 하필이면 사람들이 분비는 쪽으로 빼냐고? ‘야, 너 역겨워. 집에 가서 해.’ 소리 지르고 싶어 짜증이 확 올라왔다. 

홀푸드 가는 길에 서 있던 젊은 홈리스 여자가 공원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서성거린다. 간밤에 공원에서 잤나 보다. 청바지 지퍼는 내려지고 짧은 윗옷 사이로 배가 툭 나왔다. 임신한 배다. 언제, 어디서? 임신시킨 사내라도 주변에 있나 두리번거렸지만, 있을 리 없다. 나는 그녀를 4년 전 홀푸드로 장 보러 가다가 처음 봤다. 젊다. 마른 몸매에 긴 다리, 선텐한 듯한 피부를 한 작은 얼굴은 햇볕 아래서 반짝였다. 허구한 날 같은 장소에서 조용히 중얼거리는 것이 멀쩡한 처자는 아니다. 지나는 사람들에게 돈을 구걸하지는 않는다. 어쩌다 홈리스가 됐을까? 어두워지면 어디로 갈까? 궁금했다. 비바람 추위에 몇 년이 흐르고 나니 그녀의 멀쩡했던 모습도 이젠 많이 낡았다. 그나저나 임신한 몸으로 어찌 겨울을 나고 아이는 어디서 키운단 말인가? 

허드슨강 위 맑은 하늘에 딱 한 점 구름 떠 있다. 허허벌판에 혼자 남겨진 석유 시추 기계처럼 고개를 아래위로 반복해 껄떡이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습이다. 홈리스 여자를 닮았다. 혼자 남겨진다는 것은 몹시도 슬픈 일이다. 

쓸데없이 돈도 생기지 않는 짜증을 아침 댓바람부터 내다가 생각에 잠기다니!

Wouldn't I know if happen to get any money?

I don't even get angry or annoyed if will not happen to get any money, because 'If you live as you look, you will become as you live'. 

I went out for a walk as decent as usual. I met the frowned eyes of a short, chubby man. It’s an expression of 'why are you staring at me'. 
“Mom, if you go outside these days, don’t make eye contact with people and be careful.” 
The words of my little son flashed, but it was too late. The baby in father's chest also stares at me. Even the baby knows my face is different from others. J

jik~ Jjik~ A sound is heard tearing the fresh morning air. The sound of skinny grandmother's sneakers are running on the right leg and pulling the left leg. She runs the same distance repeatedly with a strange appearance. It would be natural if the body was weird, but when she finished exercising, she walks fine. Why does she make a strange sound with a fine body? Annoying. 

It's really 'disgusting to see you'. A young Asian lady gently clasped her hands and spread her legs wide. Lower her waist endlessly, and repeatedly bend and straighten her knees with butt pull back in tight leggings pants. Why does she have her butt out towards the crowd? 'Hey, you're disgusting. Go home and do it.' I was so annoyed that I wanted to scream. 

A young homeless lady who has been standing on my way to Whole Foods wanders as if she is waiting for someone in the park. She must have slept in the park last night. The belly comes out between the unzipped jeans and the short top. It's a pregnant belly. When and where? I've been wondering if there is around the man who got her pregnant, but of course he isn't there. 

I saw her for the first time four years ago on the way to go shopping at Whole Foods. Young and skinny body, long legs, and a small face with tanned skin shone in the sun. She's not healthy person to mutter quietly in the same place every day. She doesn't beg for money from people passing by. How did she become homeless? Where does she go when it gets dark? I was curious. After several years of rain, wind and cold, her fine appearance is now a lot old. By the way, how does she get through winter with a pregnant body and where does she raise her child?  

Only one cloud is floating in the clear sky above the Hudson River. It looks like an oil drilling machine left alone in an empty field, repeating a head up and down, waiting for someone. Resembles the homeless lady. It is very sad to be left alone.

Saturday, September 5, 2020

'집콕' 블루스

눈을 떴다. 아침 7시다. 다시 잠이 들었다. 일어나려고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시계를 봤다. 7 30분이다. 눈이 감겼다. 일어나야 한다. 후려쳐져 나동그라진 벌레 몸통이 바닥에 들러붙은 것처럼 팔과 다리만 허우적거린다. 일어나려고 용을 쓸수록 더욱 늘어진다. 팔과 다리를 허우적거릴 때는 벌레 같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등을 떼려고 하자 뒤집힌 거북이 등이 바둥거리듯 매트리스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머리통도 몸통에 짓뭉개져 짜부라진 뻐근하다.

어느 아침, 출근해야 하는 남자가 갑자기 벌레로 변한 카프카 소설 변신 주인공이 생각났다. 주인공은 벌레로 살며 방을 떠나지 못하고 식구들에게 구박받는다. 나도 구박받지 않으려면 일어나야 하는데

 

맨해튼 거리 거리를 활개 치고 누비던 다리는 코비드로 이방 저방만 왔다 갔다 뿐이다. 스케줄이 짜인 달력을 들여다보며 오늘은 무슨 옷을 입고 나갈까? 음식은 무얼 먹을까 궁리했던 지난날과는 달리 대충 때우며 와인이나 홀짝거리다. 이젠 한계에 부딪힌 같다.

 

엎친 덮친 격으로 보름 전부터 팝콘이 부풀 온몸에 두드러기가 올라왔다. 긁다가 자다가 깨서 긁고 새벽녘에 잠든 몸이 무거워서 일으킬 없다. 산책을 여러 걸렀다. 몸이 늘어져 생활의 루틴이 깨졌다. 알레르기약을 먹은 놀랍게도 툭툭 튀어나왔던 두드러기가 그동안 미안했다는 듯이 슬그머니 들어갔다. 약을 먹지 않으면 심통을 부리듯  다시 고개를 내밀었다. 약에 취해 비몽사몽의 시간을 보냈다. 그냥 이대로 누워 것이냐? 아니면 일어날 것인가? 지체하면 지체할수록  습관으로 연장될 같은 두려움이 몰려왔다. 안간힘을 쓰며 간신히 일어났다. 실내에 있다가는 도로 누울 같은 두려움에 공원으로 내달았다.

 

개의 나무토막 위에 몸통을 올리고 걷는 어기적거리며 걸었다. 허드슨강이 보이는 리버사이드 공원 노천식당 의자에 주저앉았다. 식당 문이 열리기 전이다. 히스패닉 남자가 손님 맞을 준비를 한다. 왜소한 위에 걸친 바지는 너무 길다. 여러 접은 바짓단 밑으로 검은 운동화 코만 빼꼼히 보인다. 주방용 셔츠도 얻어 입은 커서 어깨선이 팔꿈치까지 내려왔다.

 

커다란 하얀 속에 묻혀 자기 키만 빗자루를 들고 차분히 쓰레질하는 그를 보는 순간, 동자승이 고요한 이른 아침 마당을 쓰레질하듯 보였다. 지난밤 식당 문을 닫고 한쪽 구석에 쌓아 식탁은 하나씩, 의자는 4개씩 오른쪽 어깨에 메고 와서는 자리에 놓는다. 식탁과 의자들을 꼼꼼히 닦는다. 10개의 식탁 중앙 봉에다 붉은 파라솔을 조심스럽게 하나씩 꽂고 줄을 당겨 꽃피우듯 우산을 편다. 노천식당 주위 5 쓰레기통의 쓰레기를 비우고 검은 쓰레기 봉지를 씌운다.


담담한 그의 움직임이 늘어진 나를 일으킨다. 남자처럼 성실한 삶을 꾸려가는 인간이 되고 싶다고 재촉하며 생기를 서서히 찾는다. 이제 같다.

homestuck blues

I opened my eyes. It's 7 in the morning. I fell asleep again. I looked at the clock, struggling with arms and legs to get up. It's 7:30. My eyes closed again. I have to get up. Only the arms and legs flutter as if the body of the bug, which has been battered and flattened, sticks to the floor. The more I try to get up, the more I get stretched out. When I flounder my arms and legs, I thought I was like a bug, but when I tried to take my back off, my back wouldn't come off the mattress like a overturned turtle's back. The head is also stiff as if a body crushed it.

 

One morning, I remembered the main character of the Kafka's novel 'Transformation,' in which a man who had to go to work suddenly turned into a bug. The main character lives as a bug, cannot leave the room, and is abused by his family. I have to get up if I don't want to be abused.

 

My legs, which were roaming the streets of Manhattan, are just going back and forth from one room to the other by Cobid-19. What should I wear to go out looking into the calendar that was packed with schedules? Unlike in the past, when I was thinking about what to eat, I spend time sipping wine. I think I've hit the limit now.

 

The rashes have risen all over the body as if popcorn was swelling from 15 days ago. I woke up while scratching, scratching, and fell asleep at dawn. The body is heavy so cannot get up. I skipped many days for a walk. My body was drooping and my life routine was broken. After taking the allergy medication, the hives that had popped out surprisingly went into, as if sorry. If I didn't take the medicine, the rashes held out  again as if they were testy. Drunk on medicine, I spent a half-sleepless. Am I just going to live lie down like this? Or will I get up? The longer I delayed, the more I feared it would extend into my habits. I managed to get up with all my might. I ran to the park in fear that I would lie back on the bed.

 

I put my torso on two pieces of wood, and walked, as if walking. I sank into an open-air dining chair in Riverside Park, where I could see the Hudson River. It's before the restaurant door opens. The Hispanic man is getting ready to greet the guest. The pants on the dwarf body are too long. Under the pants that have been folded several times, can only see the nose of the black sneakers. He also wore a big white kitchen shirt's the shoulder line came down to his elbow.

 

The moment I saw him, buried in a large white garment and calmly sweeping with his tall broom, he looks seemed to be a young monk who sweeping temple yard in a quiet early morning. He puts the table and chair in place and thoroughly cleans them. Carefully insert red parasols one by one on the center pole of the 10 dining tables, pull the string and open the umbrella like a flower. Empty the trash in the 5 trash bins around the open-air restaurant and put on a black empty trash bag.


His calm movements cause me to rise. I slowly seek life, urging me to become a woman who leads a sincere life like this man. I slowly find my vitality. I think I'm going to live some now.

Saturday, August 22, 2020

차라리 교만하고 말지


미세스 리는 교만한 사람이야.” 
옆자리에 앉아 떠들던 권사라는 여자가 나를 향해 뜬금없이 말했다
교만? 저의 어떤 면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자기 자신을 믿고 사는 삶이 교만하다는 증거야. 당장이라도 교회 나가지.” 
교회 가야만 하나님을 믿는 건가요?”
라는 말이 입에서 떨어지려는 것을 꿀꺽 삼키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주여~”

오랜 이민 생활, 이런저런 역경 속에서도 항상 감사하며 기쁜 맘으로 살았다. 좋게도 사기꾼도 만나지 않았고 억울한 일도 크게 당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부터 내가 이야기 하려는 것은 생각할수록 기분이 언짢다.

 

나는 LA 사는 1.5, 손아랫동서를 무척 좋아한다. 착하다. 귀찮게 하지 않는다. 물론 나에게 잘한다. 나는 동서 말을 들으려고 노력하다가 아차 실수했다

형님, 우리 시어머니와 아버지 상조회를 들었으면 하는데요?” 

동서가 운을 뗐다. 상조회가 뭔지도 모르고 그저 착한 그녀가 하자니까 동의했다.

 

청구서를 받아보고 나는 어머니 몫을 낸다는 것을 알았다. 동서 몫인 시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다. 나는 1993년부터 2016 중순까지 23 동안 하루도 늦지 않고 교회에서 운영하는 상조회에 15000불을 완납했다. 그리고 매년 별도의 회비도 냈다. 상조회비를 내는 23 동안 그리고 이후에도 회칙이 계속 바뀌었다. 시작할 때는 20 동안 14250달러를 완납하면 돌아가신 15000불을 주겠다고 했다. 회칙이 15000 전액을 완납해도 14250불만 주겠다로 바뀌었다. 재정상 그렇게 됐다며 750불은 헌금 한샘 치라는 것이 아닌가! 익스큐즈도 없이 헌금하면 좋은 일이라는 식으로 교회 근처도 가는 나에게. 이후에도 회칙이 바뀌었다. 앞으로도 계속 바뀔 터인데 이러다가 재정이 곤란하다며 시어머니가 돌아가셔도 헌금 한샘 치라고 나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죽음으로 향하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돈을 끌어모아 상조회를 만들었으면 적어도 재정 전문가가 있었을 텐데? 주판 흔들며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했단 말인가! 23 동안 액수를 땅에 묻어놨어도 원금을 찾을 있었다. 전문가도 아닌 나도 2007년부터 뱅가드 인덱스 펀드에 투자해서 자금을 불렸다. 내가 상조회에 가입해서 27 동안 바보 같은 짓을 것인지? 자신을 탓하며 후회하고 했다.

 

점을 치러간 남자에게 점쟁이가 

점괘가 사자에게 죽임을 당할 있으니 조심하라.” 했단다. 동물원에만 가지 않으면 사자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겠지 했던 남자가 어느 죽었다. 사자 조각상 밑에 앉아 졸다가 동상이 무너져서.’


나야말로 교회 나가지 않는다고 교만하다는 소리를 수없이 들으면서도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불미스러운 일에 말려들지 않으려고 멀리했다. 그런데 동물원 근처에 얼씬거리지 않았음에도 화를 당해 죽듯이, 교회에 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교회 상조회의 계속 바뀌는 회칙에 끌려다니다 드디어는 깔려 눕게 생겼다. 차라리 교만하고 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