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November 13, 2020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새벽 4시 전이다. 어제저녁에 간단히 집어 먹은 김밥이 체했나 보다. 날이 훤하면 공원으로 산책하러 나갈 텐데 어둡다. 나에게 산책은 만병통치약일뿐더러 혼돈 속에서 기쁨과 편안함을 준다. 그러나 너무 일찍 공원에 갔다가 복면 마스크 강도라도 만나면 어쩌려고. 

 커피잔을 들고 이방 저방을 서성이다 창가에 섰다. 건너편 건물 한 아파트 여섯 개 유리창 모두가 훤하다. 밤낮으로 사람 사는 흔적을 전혀 볼 수 없는데도 불은 항상 켜있다. 집주인이 깜박 잊고 코비드19를 피해 시골집으로 피신한 것은 아닐까?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는다니! 무척 궁금하다. 

 내가 사는 콘도 같은 층에도 3월 중순에 떠난 사람들이 9월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그러나 바로 오른편 유닛에 사는 부부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두툼한 옷을 가지러 왔는지 우리 집 문 앞에 밭에서 땄다며 사과 한 봉지를 놓고는 
“또 올게. 몸조심해.” 
쪽지를 남기고 다시 떠났다. 

 날이 밝자마자 공원으로 부리나케 갔다. 서울 남산 산책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차림의 동양 여자가 내 앞에 걸어간다. 마스크, 장갑, 모자로 중무장했다. 한국 여자 특유의 걸음걸이로 부지런히 걷다가 길가에 핀 꽃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언니가 왜 저기에?’ 
반가워서 나도 모르게 가까이 다가갔다. 다가오는 기척에 그녀는 얼른 피하듯 발걸음을 재촉해 멀리 가 버렸다. 맙소사. 

 한국을 떠난 지 40여 년이 흘렀건만 이따금 서울의 한 풍경 속에 있는 듯 착각할 때가 종종 있다. 갑자기 잔잔한 슬픔이 밀려왔다. 그동안 바이러스 핑계로 인간 접촉 없이 외딴섬에 갇힌 듯 고립된 생활을 지속하다 보니 헛것이 보였나 보다. 

노랑 잎들이 나를 반기듯 우수수 떨어진다. 고개 들어 우거진 숲을 올려다봤다. 온통 사방이 불 밝힌 듯 벌겋다. 친구에게 빌린 책갈피에 넣어주려고 바닥에 뒹구는 잎새 하나 집어 든다. 나무, 강, 다람쥐 그리고 비둘기들은 변함없이 예전 모습 그대로다. 자연이 건강하다면 곧 좋은 날이 오겠지? 

 올해 많은 사람이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 마치 세상이 종말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세상은 계속 돌고 좋은 날은 온다. 희망을 품고 인내하면 어느 날 우리는 세상이 끝나지 않았음을 자축할 것이다. 저기 고지가 보인다. 

 살아있다는 것은 행운이고 끈기 있게 버틸 수 있는 능력은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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