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날과 다름없이 점잖게 산책하러 나갔다. 키 작은 통통한 남자의 잔뜩 찌푸린 눈과 마주쳤다. ‘왜 쳐다봐.’ 하는 표정이다.
“엄마, 요즘 밖에 나가면 사람들과 눈도 마주치지 말고 조심해요.”
작은 아이가 한 말이 번득 스쳤지만 이미 늦었다. 그의 가슴에 안긴 아기도 나를 빤히 쳐다본다. 아기 눈에도 내가 다르게 생겼다는 것을 인지하는지 고개를 젖히며 내 얼굴에 눈을 박았다.
찌익~찍. 찌익~찍. 맑은 새벽 공기를 찢는 소리가 들린다. 오른쪽으로 기운 다리로는 뛰고 왼쪽 다리는 시멘트 바닥을 끄는 말라깽이 할머니의 운동화 소리다. 괴이한 모습으로 같은 거리를 반복적으로 뛴다. 되돌아올 때도 왼쪽 다리로 둥글게 원을 그리며 뛰느라 고무 닳는 소리가 더욱 커진다. 몸이 이상하다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운동을 끝내고 갈 때 보니 멀쩡히 걷는다. 왜 멀쩡한 몸으로 이상한 소리를 내느냐고? 짜증 나게.
그야말로 ‘너 보기가 역겨워’다. 젊은 동양 여자가 두 손을 얌전히 깍지 끼고 다리를 넓게 벌렸다. 허리는 끝 간 데 없이 내리고, 쫙 달라붙는 레깅스 입은 엉덩이를 뒤로 쭉 뺀 채 무릎을 구부렸다 폈다 반복한다. 아니 엉덩이를 강 쪽으로 두거나 아니면 남쪽이나 북쪽을 향해 서서 하면 될 텐데 왜 하필이면 사람들이 분비는 쪽으로 빼냐고? ‘야, 너 역겨워. 집에 가서 해.’ 소리 지르고 싶어 짜증이 확 올라왔다.
홀푸드 가는 길에 서 있던 젊은 홈리스 여자가 공원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서성거린다. 간밤에 공원에서 잤나 보다. 청바지 지퍼는 내려지고 짧은 윗옷 사이로 배가 툭 나왔다. 임신한 배다. 언제, 어디서? 임신시킨 사내라도 주변에 있나 두리번거렸지만, 있을 리 없다.
나는 그녀를 4년 전 홀푸드로 장 보러 가다가 처음 봤다. 젊다. 마른 몸매에 긴 다리, 선텐한 듯한 피부를 한 작은 얼굴은 햇볕 아래서 반짝였다. 허구한 날 같은 장소에서 조용히 중얼거리는 것이 멀쩡한 처자는 아니다. 지나는 사람들에게 돈을 구걸하지는 않는다. 어쩌다 홈리스가 됐을까? 어두워지면 어디로 갈까? 궁금했다. 비바람 추위에 몇 년이 흐르고 나니 그녀의 멀쩡했던 모습도 이젠 많이 낡았다. 그나저나 임신한 몸으로 어찌 겨울을 나고 아이는 어디서 키운단 말인가?
허드슨강 위 맑은 하늘에 딱 한 점 구름 떠 있다. 허허벌판에 혼자 남겨진 석유 시추 기계처럼 고개를 아래위로 반복해 껄떡이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습이다. 홈리스 여자를 닮았다. 혼자 남겨진다는 것은 몹시도 슬픈 일이다.
쓸데없이 돈도 생기지 않는 짜증을 아침 댓바람부터 내다가 생각에 잠기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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