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떴다. 아침 7시다. 다시 잠이 들었다. 일어나려고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시계를 봤다. 7시 30분이다. 또 눈이 감겼다. 일어나야 한다. 후려쳐져 나동그라진 벌레 몸통이 바닥에 들러붙은 것처럼 팔과 다리만 허우적거린다. 일어나려고 용을 쓸수록 더욱 늘어진다. 팔과 다리를 허우적거릴 때는 벌레 같다고 생각했던 나 자신이 등을 떼려고 하자 뒤집힌 거북이 등이 바둥거리듯 매트리스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머리통도 몸통에 짓뭉개져 짜부라진 듯 뻐근하다.
어느 날 아침, 출근해야 하는 남자가 갑자기 벌레로 변한 카프카 소설 ‘변신’의 주인공이 생각났다. 주인공은 벌레로 살며 방을 떠나지 못하고 식구들에게 구박받는다. 나도 구박받지 않으려면 일어나야 하는데…
맨해튼 이 거리 저 거리를 활개 치고 누비던 내 다리는 코비드로 이방 저방만 왔다 갔다 할 뿐이다. 스케줄이 꽉 짜인 달력을 들여다보며 오늘은 무슨 옷을 입고 나갈까? 음식은 무얼 먹을까 궁리했던 지난날과는 달리 대충 때우며 와인이나 홀짝거리다. 이젠 한계에 부딪힌 것 같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보름 전부터 팝콘이 부풀 듯 온몸에 두드러기가 올라왔다. 긁다가 자다가 깨서 긁고 새벽녘에 잠든 몸이 무거워서 일으킬 수 없다. 산책을 여러 날 걸렀다. 몸이 늘어져 생활의 루틴이 깨졌다. 알레르기약을 먹은 후 놀랍게도 툭툭 튀어나왔던 두드러기가 그동안 미안했다는 듯이 슬그머니 들어갔다. 약을 먹지 않으면 심통을 부리듯 다시 고개를 내밀었다. 약에 취해 비몽사몽의 시간을 보냈다. 그냥 이대로 누워 살 것이냐? 아니면 일어날 것인가? 지체하면 지체할수록 습관으로 연장될 것 같은 두려움이 몰려왔다. 안간힘을 쓰며 간신히 일어났다. 실내에 있다가는 도로 누울 것 같은 두려움에 공원으로 내달았다.
두 개의 나무토막 위에 몸통을 올리고 걷는 듯 어기적거리며 걸었다. 허드슨강이 보이는 리버사이드 공원 노천식당 의자에 주저앉았다. 식당 문이 열리기 전이다. 히스패닉 남자가 손님 맞을 준비를 한다. 왜소한 몸 위에 걸친 바지는 너무 길다. 여러 번 접은 바짓단 밑으로 검은 운동화 코만 빼꼼히 보인다. 주방용 흰 셔츠도 얻어 입은 듯 커서 어깨선이 팔꿈치까지 내려왔다.
커다란 하얀 옷 속에 묻혀 자기 키만 한 빗자루를 들고 차분히 쓰레질하는 그를 보는 순간, 동자승이 고요한 이른 아침 절 마당을 쓰레질하듯 보였다. 지난밤 식당 문을 닫고 한쪽 구석에 쌓아 둔 식탁은 하나씩, 의자는 4개씩 오른쪽 어깨에 메고 와서는 제 자리에 놓는다. 식탁과 의자들을 꼼꼼히 닦는다. 10개의 식탁 중앙 봉에다 붉은 파라솔을 조심스럽게 하나씩 꽂고 줄을 당겨 꽃피우듯 우산을 편다. 노천식당 주위 5개 쓰레기통의 쓰레기를 비우고 검은 빈 쓰레기 봉지를 씌운다.
담담한 그의 움직임이 늘어진 나를 일으킨다. 이 남자처럼 성실한 삶을 꾸려가는 인간이 되고 싶다고 재촉하며 생기를 서서히 찾는다. 이제 좀 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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