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이에, 앞으로 만나면 몇 번이나
더 만날 수 있니?"
친구의 말이 생각하면 할수록 예사말이 아니다.
“나야, 수임이.”
전화할까 말까 망설이다 조심스럽게 전화했다.
“어디야? LA에 왔니? 우리 집에 와.”
“됐어, 그냥 목소리나 듣고 가려고
전화했어.”
“야 되긴 뭐가 돼. 우리가 만나면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만날 수 있다고. 만날 수 있을 때 만나는 거야.”
성격이 밝고, 재미있는 친구라 항상 바쁘지만 내가 LA에 갈 적마다 대학 동기들을 모두 불러 바비큐를 해준다.
어린 시절엔 친구를 만들고, 친해지느라 만났는데 이제는 헤어지기 위해서 만난다니. 전화로만 안부를 주고받고자 했던 일이 만나서 회포를 풀며 늙어가는 친구들과 헤어지는 연습을 밤늦도록 했다.
재미있는 친구를 만나면 맑고 밝은 기운을 받아 기분이 좋아지며 다시 만나고 싶어진다. 매사에 부정적이고 문제가 많은 친구는 언젠가 그 골치 아픈 건수가 해결되면 밝아지겠지 기대하지만, 계속되는 평탄치
못한 일상생활 때문에 생기는 또 다른 우울증을 의논해야 하는 만남이
지속된다. 그리고는 마지못해 만나다 연락이 끊길 수밖에 없는 인연으로 남는다.
원색 옷을 즐겨 입는 지인이 있다. 그는 잘 이야기 하다가도
갑자기 발끈하며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하곤 한다. 자라면서 삐딱하게 내부에 쌓인 Anger (화)를 기분만 뒤틀리면 벰파이어 에너지를 발산하듯 뿜어대는 것이다. 매사에 부정적인 그의 화려한 원색 옷 속에 숨어 있는 암울함을 마주하고 나면 며칠은 마음이 편치 않다. 즐거운 만남도 많은데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조심조심 두근두근하는 긴장 속의 만남을 굳이 지속할 필요가 있을까?
누구도 나의 삶을 기분 좋게 그리고 행복하게
해줄 의무도 없고, 해 줄 수도 없다. 남편과 자식조차도. 스스로 행복할 방법을 찾아 삶을 창조해야만 다른 사람과도 즐거운 만남을
유지 할 수 있지 않을까?
나와 학교 동기인 남편은 대학 시절엔 섣부른 인연이라도 맺어질까 봐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았던
사이였다. 돌고 돌아 이 넓은 미국 땅에 와서 선배가 외로운 남자를 소개해 준다길래 나가보니, 떡 버티고 앉아 ‘어 아직 시집도 못 가고, 여기는 웬일이야?’
했던 사람이 내 남편이 될 줄이야!
사이 좋을 때는 하늘이 점지해 준 인연 운운하면서 좋아라 유난을 떨다 별일 아닌 것으로 티격태격하며 열을 올린다. 끝장 볼 때까지 가 볼까 하다가도 언젠가는 헤어질 너와 난데, 결국 죽음에 의해 헤어질 수밖에 없는 인연이거늘.
사이 좋을 때는 하늘이 점지해 준 인연 운운하면서 좋아라 유난을 떨다 별일 아닌 것으로 티격태격하며 열을 올린다. 끝장 볼 때까지 가 볼까 하다가도 언젠가는 헤어질 너와 난데, 결국 죽음에 의해 헤어질 수밖에 없는 인연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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