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재빨리 껐다.
화면에서 노트르담 성당이 불타고 있기 때문이다. 건축, 음악, 희귀서적 그리고 미술
작품 등의 상실에 수반되는 슬픔은 다른 상실과는 수준이 다르다. 햇살 아래 성스럽게 반짝이는 스테인드글라스는
어떡하고! 차마 더는
타들어 가는 모습을 계속 보고 있을 수 없었다.
악마처럼 날뛰는 불에 휩싸여 노트르담이 꿈틀대고 뒤틀리며
허망하게 무너져 내린다는 상상을 했다. 머릿속을 스쳐 가는 영화
Before
Sunset이 생각났다. 주인공 남녀가 세느강 보트에서 노트르담을 바라보며 주고받는
이야기다.
제시: 독일군이 파리를 점령하고 후퇴할 때 노트르담을 폭파하라고
전보를 쳤다는 이야기 들은 적이 있어. 그들은 스위치를 켜는 일을 담당할 한 사람을 남겨야 했어. 그러나 그 군인은, 노트르담의 아름다움에 감격해서 차마 할 수 없었어. 연합군이 들어왔을 때, 모든 폭발물이 그대로 놓여 있고 스위치를 돌리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했어.
시라인: 그게 사실이야?
제시: 나도 몰라. 하지만 난 항상 그 이야기를 좋아했어.
노트르담이 다 타서 잔해만 남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안타까운 상상으로 이어지자 영화 The Pianist가 떠올랐다.
잿더미 속 폐허가 된 건물 안에 숨어서 아사 직전이던 유대인 주인공이 나치 장교와 맞닥뜨리는 장면이다.
독일 장교: 너 여기서 뭐 해? 일해?
피아니스트: 아니, 나는 피아니스트였어.
독일 장교: 그럼 연주해 봐.
피아니스트는 쇼팽의 녹턴
20번을 연주한다. 건축의 아름다움에 감격해 명령을 거역하면서까지 노트르담을 폭파하지
않았듯이 독일 장교는 피아노 연주에 빠져 먹을 것을 가져다주고 외투까지 벗어 주며 피아니스트를 살린다.
노트르담 성당은 프랑스 혁명의 혼돈 속에서 훼손되고 방치되어 헐자는 여론이 있었다. 그러나 문학과 예술가들에게 많은 감명을 주었던 성당은 1831년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의 꼽추’로 다시 대중화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앤서니 퀸의 기가 막힌 분장과 허스키한 목소리가 어우러진 영화 장면이 떠오른다.
노트르담 대성당을 재건할 자금이 모금되었다니 다행이다. 게다가 불타기 전 모습을 0.1인치까지 세세하게 담아낸
3D 자료가 있어 복원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라니 천만다행이다. 인간의 원초적 감성을 자극하여 생기를 주는 그리고 오래전에 살았던 사람들과 서로 뗄래야 뗄 수 없는 과거와의 연결 고리인 예술 작품들이여
영원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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