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May 10, 2014

미국사는 맛

맨해튼으로 이사 온 후, 두 다리에 모터가 달린 듯 수시로 집 밖을 들락거린다.  

한발은 액셀, 다른 한발은 브레이크를 밟도록 서울에서 잘못 배운 운전 탓에 미국에서 첫 시험은 바퀴도 굴려보지 못하고 떨어졌다. 학원 다니며 한발로 연습하고 시험장에 갔지만, 운전교사가 실수로 차에 키를 놓고 문을 잠그는 바람에 두 번째도 헛공사.

남편에게 운전 배우다 이혼한다는 소리를 듣고 감히 가르쳐달란 말도 꺼내지 못했는데 남편은 학원 선생보다 편하게 가르쳐줬다. 산달이 거의 임박해 남산만 한 배를 안고 시험장에 갔다. ‘이번에 운전면허를 받지 못하면 아이를 키우면서 더욱 힘들 것 같다.’는 하소연 덕이었는지 합격했다.

운전도 내력인지 친정식구 모두가 소질이 없다. 이 생각 저 생각 하다 스탑사인에 그냥 지나가고, 내가 찾던 곳을 보고 신이 나서 갑자기 멈추고, 뒷좌석에서 난리 치는 아이들을 뒤돌아보고 혼내다가 사고를 여러 번 냈다. 연락을 받고 사색이 되어 달려와 단 한 번도 화를 내지 않는, 내가 차를 몰고 나가면 불안해 안절부절못하는 남편을 생각하니 운전대를 더는 잡을 수 없었다.

시집식구들은 모두 다 운전을 잘한다. 차를 달고 사는 LA이기는 하지만, 소질도 있고 즐기기까지 한다. 신기한 것이 짜증 많은 남편이 운전대만 잡으면 마치 고용된 운전사처럼 친절하다. 아침에는 클래식을 오후에는 록 음악을 들려주며 아이 둘 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학교에 데려다 주고 데려왔다. 사춘기 때 탈선할 틈이 없을 정도로 아이들의 과외 활동도 운전해 줬다. 한마디로 빠져나갈 틈을 아예 틀어 막아버린 것이다. 내가 외출 시에도 재즈를 들려주며 드라이브해 줬으니 아마 남편은 전생에 우리 친정집 운전사였나 보다.

허구한 날 드라이브해준 아빠에게 고맙고 미안했는지 아니면 부담스러운지 아이들은 차에 대한 미련 없이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나 또한 더는 남편에게 미안해서 내 건강하고 짧은 두 다리에 날개를 단 듯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선글라스를 끼고 긴 머리 휘날리며 오디오 볼륨을 한껏 올린 채 운전대를 잡고 달릴 때 미국 사는 맛을 느낀다는 한 지인이 운전대를 전혀 잡지 않는 나에게 무슨 맛으로 사냐?’고 의아해했다
나는야 두 다리로 활기차게 맨해튼을 누비며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맛으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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