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November 1, 2014

터키탕

친구들과 목욕탕에 갔다. 탕 안은 밖에서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천정에서 녹물이 떨어지고 뿌연 탕 물 위에는 때가 둥둥 떠다녔다. 머뭇거리는 나를 탕물 안으로 끌어들인 친구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깔깔거렸다. 움츠린 몸 가까이 둥둥 떠 오는 때를 손으로 밀어냈다. 때가 돈벌레로 변하며 슬슬 다가왔다소스라쳐 놀라는 순간 꿈이라는 생각에 눈을 번쩍 떴다

섬뜩하고 지저분한 꿈을 꾸고 나니 친구와 함께 간 터키 Cappadocia(카파도키아)가 떠올랐다. 바위굴을 파고 만든 가족이 운영하는 숙소, 동굴의 천연색을 살리려는 듯 원색으로 칠한 문과 창틀, 고풍스러운 러그와 아기자기한 장식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하는 감탄사를 연발하게 한다. 며칠 있다 보면 천정이 너무 낮아 빈혈이 심한 머리는 흔들리고 습함에 떠나고 싶어졌던 곳이다.

식당 입구엔 개들이 꼬리를 흔들며 반긴다. 식당 안에는 우리 나이 또래 숙소 주인장 친구들이 눈인사했다. 친구가 터키탕 좋은 곳이 없느냐고 물었다. 물 좋은 곳으로 안내해 주겠단다.

이스탄불에서도 터키탕에 갔었다. 흰색과 붉은색 줄무늬 천으로 중요 부분을 가리고 누워 있었다. 똑같은 천으로 아랫부분만 가린 남자가 때를 밀어줬다. 한번은 호기심에서 했다. 두 번은 가고 싶지 않았지만, 카파도키아 바위틈에 선녀들이 가끔 내려와 즐기는 분위기 있는 노천탕을 상상하며 남자 둘과 밴을 타고 산속으로 들어갔다.

밑도끝도없이 어두운 숲 속을 달리는 덜컹거리는 밴 안에 앉아 있다 보니 겁이 덜컥났다. 낯선 남자들을 따라 야밤에 산속에 있는 목욕탕을 간다는 발상이 잘못됐다는 것을. 한 시간가량 가서 도착한 터키탕이라는 곳엔 아무도 없었다. 운영하다 폐쇄된 곳 같았다. 황당했다. 두리번거리는 우리에게 저쪽으로 가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나오면 자기네 둘이 한사람씩 때를 밀어주겠단다. 아이고머니나! 수영복으로 갈아입으러 가는 척하면서 
"잘못 온 것 같아. 여기서 빨리 빠져나가야 해."
꼬깃꼬깃한 백 불을 쥐여주며 태연한 척 
"이곳 말고 더 좋은 곳으로 내일가자." 
고 설득했다. 얼굴이 굳어진 둘은 잠시 머리를 맞대고 상의하더니 차에 타라고 했다. 돌아오는 내내 혹시나 앞의 두 분의 마음이 변할까 봐 얼마나 초조했던지. 숙소 앞에 와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숙소로 들어오는 우리를 본 주인장의 표정이 이상했다. 반가움, 안심, 이상한 의구심 등등. 너무 긴장하고 피곤해서 표정을 제대로 읽을 수는 없었지만,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은 분명했다.

문득문득 카파도키아 산속 허물어진 터키탕, 색 바랜 푸른색 타일 위에 붉은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는 우리를 상상할 때마다 'Thank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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