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이 덮지 않아서였나? 실로 오랜만에 맞이하는 한국 가을 날씨와도 같은 화창함에 집에만 있을
수가 없었다.
도시락 들고 나가는 남편을 배웅하기가 무섭게 가는 청춘이 아쉬운 듯 밖으로 쏘다녔다. 오페라 공연, 재즈 축제, 미술관, 공원 등으로 헤매다 저녁에 집에 와 한술 뜨고는 잠에 떨어졌다.
도시락 들고 나가는 남편을 배웅하기가 무섭게 가는 청춘이 아쉬운 듯 밖으로 쏘다녔다. 오페라 공연, 재즈 축제, 미술관, 공원 등으로 헤매다 저녁에 집에 와 한술 뜨고는 잠에 떨어졌다.
9월 마지막 일요일 날씨가 좋아도
너무 좋았다. 친구가 링컨센터에서 하는 연주회에 가자니 신경 써 몸단장하고 나갔다.
지하철에서 나와서 우아하게 걷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어디야? 정신을 어디다 두고 쏘다니는 거야”
남편의 버럭 소리에 놀랐다.
“가스에 뭘 올려놓고 왔길래. 빨리 집으로 가 봐.”
“가스에 뭘 올려놓고 왔길래. 빨리 집으로 가 봐.”
저녁준비
한다고 올려놓은 된장 뚝배기의 불을 끄지 않고 나왔다는 생각이 퍼뜩 났다. 택시를 부리나케 잡아탔다.
택시 운전사에게 사정 이야기를 하며 빨리 가자고 했다.
"가스 불에 올려놓은 것으로는 쉽게 불이 나지 않아요."
택시 운전사의 말이 위로가 됐지만, 도어맨은 열쇠가 없고 열쇠가 있는 슈퍼는 출타 중이라니
불에 타들어 가는 아파트에 대한 오만 잡생각에 달리는 택시 안에서 초주검이 되었다.
운전사가 콘도 코너에 내려놓으며
‘봐요. 불이 나지 않았잖아요."
건물 밖까지 된장 탄 냄새가 확, 건물 안은 말도 못 할 정도로 진동했다.
도어맨도 당황해서 우왕좌왕하며 열쇠가 없어 결국에 소방관이 문을 따고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부리나케 아파트로 올라갔다. 소방관이 꺼멓게 탄 뚝배기에 물을 부어 놓고 창문이란 창문은 모두 열어 놓았다.
문고리는 쓸 수 없이 망가지고 문짝도 드문드문 깨져 칠이 벗겨졌다.
냄새를 피우며 이웃을 놀라게 했다. 쥐구멍에 숨기라도 하듯 아파트 안으로 부리나케 들어갔다. 이웃집 남자가 나를 따라 부엌까지 들어왔다.
"커튼에 불이 붙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야."
된장 냄새를 풍기지 않으려고 그동안 얼마나 조심하며
살았던가! 동양인은 냄새나 피우고 말썽을 부린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항상 우아하게 미소 짓거나 고상한 척을 하느라 힘들었다. 제복 입은 도어맨이 문을 열어주고 물건을 엘리베이터까지
들어다 주면 ‘팁을 줘야 하나? 마나?’ 하고 문 드나드는 것도 신경 쓰면서.
“앞으로 밖에 나갈 때는 저녁 준비
하지 마.”
남편이 엄한 얼굴로 말했다. 드디어 나는 저녁밥 짓는 것에서 해방되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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