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June 28, 2014

생각지도 않은 일이

그 검은색 옷 때문이었을까? 그 옷만 입고 나가면 되던 일도 망치는데 왜 그리 좋아했는지

아버지 사업에 연관된 분의 남 동생이란다. 서울대를 강조하며 내가 ‘No’만 하지 않으면 결혼은 다 된 분위기다. 남자를 만나 연애하고 결혼하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부모가 정해주는 사람과 결혼해서 선생이나 하며 그냥저냥 살면 편할 것 같았다.

이번에 보는 선을 마지막으로 친구들이 서둘러 간 결혼을 나도 하는구나.’ 편안한 마음으로 그 검은 옷을 입고 나갔다. 적당한 몸매에 빛나는 눈, 툭 나온 하얀 넓은 이마 위에 곱슬머리, 슈베르트처럼 생긴 사람이 심각하게 앉아 있다. 마음에 든다. 몇 마디 나누자마자 술 한잔 하러 가잰다. 내가 다녔던 대학은 허구한 날 술독에 빠져 지내기라도 하는 듯 남자들은 툭하면 한잔하잔다. 뭐 나도 원하는 바지만.

남자는 술을 연거푸 입에 쏟아 붓더니 
"오랫동안 사귀는 여자가 있습니다. 집안에서 반대하며 선을 보라고 강요해서 할 수 없이 나왔습니다. 부탁이 있는데, 아버지에게 내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말해 주시겠어요."
어쩐지 진도가 빠르더라니. 세상은 내 편이 아니라는 생각에 잠깐 멍하다가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라 떨떠름했다.

괴로워하는 남자의 표정과 어색한 분위기를 전환하려고 우아하게 폼 잡던 술잔을 들어 입에 털어 넣었다. 그의 잔에 술을 따랐다.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될, 꼭 이루어져야 하는 그의 사랑 이야기에 고개를 떨구며 우리는 잔을 비웠다.

지적이면서도 예술적인 워낙에 내가 곱슬머리를 좋아하는 데다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남자를 만났는데. 나도 이런 사람 만나서 그런 사랑 하고 싶은 마음 굴뚝 같지만, 남의 애절하고 고귀한 사랑에 끼어들 수도 없고.
마음에 들지 않아요.” 
뭐가?” 
툭 나온 이마와 곱슬머리가.” 
너 지금 곱술 머리 따지게 됐니? 나이가 몇인데.” 
천정을 올려다보며 한참을 말이 없던 아버지는 
결혼이 뭐 별 대수냐. 못하면 어때. 무자식이 상팔자다. 그래 자유롭게 훨훨 너 살고 싶은 데로 살아라.”

살고 싶은 데로 멋지게 살라며 나를 위로하고 격려해주던 아버지는 지금 하늘나라에 잘 계실까? 돌아가시기 전에 저 세상에서 엄마에게 야단맞을까 봐 걱정하셨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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