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봄 수선화가 수줍은 듯 방긋 웃으며 고개를 들면
쑥은 얼어붙은 땅을 뚫고 파릇파릇 올라온다. 개나리가 샛노랗게 물들고 목련이 활짝 폈다가 지면 쑥은 지천으로 널부러져 쑥쑥 잘도 자란다.
‘더 자라면 안 되는데.’
애태우면서 쑥 뜯다 걸려 지문 찍고 벌금 물까 봐 캐고 싶어도 꾹 참고 공원을 헤매는 내 심정을 그 누가 알랴.
'어찌하면 쑥을 뜯어볼까?'
벼루고 살피고 휘둘러보며 맨해튼 리벌사이드 공원 외진 곳까지 걸었다.
저 멀리 젊은 여자들이 쭈그리고 앉아 잡초를 뽑는 듯했다. 가까이 다가갔다. 여대생 여러 명이 쑥을 뿌리째 뽑으며 땅을 정리하고 있다. 자원봉사로 공원 청소를 하는 중이란다.
"쑥을 뜯어도 되나요?"
물었다. 함께 일을 거두는 줄 알고 몹시 반가워했다.
내가 갑자기 나타나 정신없이 잡초를 귀한 것인 양 뜯어
브라운 종이백에 담자
"무엇에 쓰려고 그러세요?"
물었다. 자세히 설명해 줬더니
저희도 조금씩 챙겨 일어나길래 나도 함께 숲을 나왔다.
나는 이른 봄마다 쑥티를 마시기 위해 쑥 타령을 한다. 따온 쑥을 깨끗이 여러 번 씻어 물기 제거기에 넣고 물을 뺀 후에 지퍼백에
담아 낸동실에 보관한다. 냉동실에서 꺼낸 쑥에 뜨거운 물만 부으면 일 년 내내 쑥 향기와 씁쓸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족욕
할 때 넣으면 매끈매끈한 발뒤꿈치를 유지할 수도 있다.
남편은 잘 알아보고 마시라지만 내가 이나마 건강해진
것이 쑥 티를 마시며 족욕을 해서가 아닐까? 얼음조각을 만지듯 놀라며
내 손을 잡던 남편이 지금은 붕어빵처럼 따뜻하다고 한다. 설사를 자주 하다가도 쑥 티를 마시면 멈춘다. 하루에도 서너 번 커피 대신 따뜻한 쑥차를 마시는 내
경우엔 이른 봄 1시간가량만 밭농사 짓듯 쪼그리고 쑥을 뜯어 냉동에 보관하면 티 값
절약하고 건강해진다. 쑥 타령을 매년 하지 않을 수 없다. 일 년 치 쑥을 쟁여 놓고 나면 봄 농사가 끝난
듯 느긋해져 허드슨 강 바람에 퍼지는 아카시아 꽃향기에 코를 실룩 거린다.
사람의 추억은 오감과 연결된다더니, 어릴 적 시골 길을
걷다가 아카시아 꽃이 바람에 보송보송 마른 함박눈처럼 떨어지면 눈 속 강아지처럼 즐거웠다. 꽃 한 움큼
입에 넣고 씹으면 단맛과 향기가 입안 가득했던 기억이 봄이오면 나의 오감을 활짝 열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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