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April 20, 2013

친구가 아니란다

어느 화창한 봄날, 풍광 좋은 야외에서, 즐거운 식사 도중이었다

친군데요
내가 대답하자 그녀는 
친구 아닌데요.” 
했다. 뜻밖의 대답에 나는 놀라 어쩔 줄 몰랐다. 우리 둘의 관계가 궁금해서 물었던 사람이 
"그럼 어떤 사이?"
다시 물었다. 그녀는 
"남편과 친구 사이예요."
나하고는 친구가 아니고 내 남편하고 친구라니너무 황당한 대답에 할 말과 밥맛을 잃은 나는 수저를 놓고 멀리 허공을 무상하게 응시했다.

친구들은 나에게 식사 초대도 하고, 입지 않는 쓸만한 옷가지도 건네곤 한다. 나도 무언가 답례를 해야 하는데 뭐 줄 것이 없나 집안을 둘러보지만, 쇼핑 기피증이 심해 집안이 횅하도록 가진 것이 없는 나는 친구에게 준 기억이 별로 없다. 요리 실력도 신통치 않아 사람 부르기도 망설여지는 것이 사실이다흔한 말로 서울 깍쟁이라 사람들에게 얍삽한 정도 웬만해서는 주지 않았다. 게다가 불가근불가원가까이도 멀리도 하지 않는 인간관계를 주장하며 살았으니.

그녀가 30여 년 전에 유학 와서 처음 만난 사람은 같은 학교의 내 남편이었다. 그러나 그동안 남편보다 더 나와 이런저런 모임에서 만남을 이어오지 않았는가
"나 혼자만의 친구였었나그녀가 폐경기를 치르느라 신경이 날카로워 심리적으로 혼란스러워서인가?"
이 상황을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어 나 또한 혼란스러웠다. 뭐 오랜 세월 나눈 사이가 아무것도 아니라니 할 말은 없지만. 나 같아도 얌체인 나를 친구로 하고 싶지 않겠지. 그래도 난 그녀를 좋아했는데.

친구가 아닌데요.” 
라는 그녀의 말이 섭섭해야 할 텐데,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홀가분 해져 자유로워진 이 기분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외국인을 남편으로 둔 그녀는 모임에서 만나면 수다쟁이인 나를 제치고 그동안 못한 한국말을 토하듯 쏟아 내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더는 그녀와 이야기할 일이 없으니 이 사람 저 사람 골고루 이야기하고 싶었던 나의 바람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그러고 보니 그녀도 나의 친구는 아니었던 듯하다.

며칠 전 모임에서 그녀를 만났다. 딱히 할 말도 없고 반갑지도 않았다. 스쳐 지나며 다른 친구에게로 갔다. 오랜 세월 해 왔던 데로 이야기를 나누려고 그녀가 다가왔지만, 등을 보이며 남편에게로 갔다. 또다시 다가왔다. 친구라고 말한 내 남편에게 그녀를 맡기고 나는 또 다른 친구에게로 갔다.
"친구 아니라며."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