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아주 작은, 입천장이 까진 곳이 발단이었다. 음식을 먹을 때마다 상처 난 곳을 스치는 통에 제대로 음식 섭취를 못 했다.먹는 것은 신통치 않은데 매일 걷는 운동을 과하게
하다 오른쪽 엉치뼈와 다리를 이어주는 조인트가 빠졌는지 갑자기 꼼작할 수가 없었다. 다리를 펼 수도 몸을 돌릴 수도 없을 정도로 통증이 심했다.
그 전날도 3시간 이상 춤을 췄으니. 무릎이
아프다, 발바닥이 그리고 허리가 아프다는 친구들에게
"아무리 춰도 내
다리는 끄떡 없네."
잘난 척을 엄청나게 해 대더니만. 파스를
붙이고 찜질을 하고 며칠을 누워있으니 식욕이 떨어지고 기운이 빠졌다. 몸이 약해지자 감기가 들어왔다.
콧물에 기침에 그야말로 죽을 지경이다.
김씨 성을 가진 친구가 치킨 수프에 넣어 끓여 먹으라며
도라지 뿌리를 가져왔다. 앓고 있는 나를 힘들게 하지
않으려고 성당 가는 길에 집 앞에 두고 갔다. 도라지 뿌리가 들어간 치킨 수프를 먹고 감기가 멈추는
듯하더니만 입덧하듯 속이 계속 메슥거렸다.
‘건강 이외에는 다 부질없다.’며 오만 잡생각을 하며 몇 날 며칠을 누워 있었다. 평소 친정아버지 말대로 여자는 늙을수록
허리선을 살려야 한다는 지론을 살리면서 운동을 좀 심하게 했나보다. 혹시나 우연히 첫사랑이라도 길에서 마주치면 ‘나 아직 늙지 않았다.’며 쏙 들어간
허리를 보여주려고 했는지? 나이 들어서는 살집이 있어야 아파도 빨리 회복할 수 있다던 오동통한 시누이 말이
실감 났다.
또 다른 김씨 친구에게서 초대의 이메일이 왔다.
"옳다구나 잘됐다. 가서 요기 좀 하고 놀면 기운이 날꺼야."
남편이 친구 집에 태워다 줬다.
어릴 적 밥맛 없어 비실거릴 때마다 엄마는 아이들 틈에 끼어 먹고 놀다 오라며 형제가 여섯인 집에 보내곤 했었는데.
허약해진 나는 자비스러운 미소를 띤 후덕한 보살인
친구의 얼굴을 보는 순간 마음이 편안해 졌다. 한약 냄새가 나는 차를
수시로 가져다주고 허리와 어깨에 핫팩을 해줬다. 모처럼 푸짐한 저녁을 먹고 노니 기운이
솟는 듯했다. 웬걸 밤새도록 추워서 떨다 새벽녘에서야 잠이 들었다.
내가 비실 된다는 소식을 뒤늦게 들은 또 다른 뉴저지에
사는 김씨인 친구가 교회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이라며 김치와 서울에서 공수해온 냄새 안 나는 청국장을 집 앞에 두고 쏜살같이 사라졌다. 아픈 나를 성가시게 하지 않으려고 친구 남편은 차
시동을 걸고 차 안에서 바쁘다는 시늉을 했다. 친구가 손수 담근 김치는
예전에 땅에 묻어둔 김치맛으로 엄마가 밥술 위에 찢어 얹어 준 바로 그 맛이다.
나는 3명의 김씨인 애숙, 자원 그리고 금란의
성화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들은 천주교, 불교 그리고 기독교
신자다. 잘 버무린 종교의 힘이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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