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August 1, 2015

내게 말을 걸어온 그녀

"아파트 문을 열고 나 서면 세계중심에 서 있고 문을 닫고 들어서면 절해고도와도 같은 곳." 어느 작가가 맨해튼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맨해튼에 살면서 거의 매일 공원을 걷는다. 도서관에서 하는 주민들을 위한 클래스에도 가본다. 또 동네에서 열리는 행사를 1년 넘게 기웃거리기도 했다. 그런데 아무도 말을 거는 사람이 없다. ? 내가 아시안이라서? 아니면 그들의 대부분이 자아의식이 강한 유대인이라 설까?

한여름 더위로 활짝 열어 놓은 출입구를 서성거리는 나이 든 도어맨들은 열심히 인사를 한다. 나는 도어맨들에게나 인기 있는 여잔가 보다. 그들과는 가볍게 인사를 주고받으며 실없이 웃는다

영어가 매끄럽지 못한 아시안과는 알고 지내봐야 불편하기만 할 텐데.’ 하는 그들의 선입견도 있을 것이다. 뉴욕에 처음 왔을 때다. 무거운 짐을 들고 층계를 올라가는 할머니를 보고, 뭣도 모르고 거들다 봉변을 당한 적이 있다. 할머니는 짐을 빼앗기라도 하는 듯 나를 노려보며 고함을 질렀다. 그 황당한 사건 이후론 절대 모르는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걸거나 접근하지 않는다.

어느 날 명상 클래스에서 한 여자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운동복이 좋다며 "어디에서 샀느냐?"고 물었다. 별 볼일 없이 낡고 오래된 운동복이 좋다니 뭔가 건성으로 묻는 것 같았다. 우물쭈물하다 모처럼 받아보는 질문인지라 반응을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이어지는 질문, ‘뭐하냐?’ ‘Artist.’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동양인의 흔한 직업이 아니었는지 갸우뚱했다. 그리곤 "Ah!, Nail Artist.’라고 하는 것 아닌가!

자기는 코미디언이란다. 남을 웃길만한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는 머리가 좋고 말발이 센 그녀, 코미디라도 한 구절 하는 듯 정신없이 떠들더니, 갑자기 내 전화번호를 달란다. 그 자리에서 자기 전화번호를 입력하라며, 나에게 전화 걸어 녹음에 남기지를 않나! 이메일 주소는 줘도 전화번호를 주지 않는 나였다. 순식간에 그녀의 적극적인 접근에 나야말로 괜한 피해의식에 쩐 코리언이 된 듯 겁이 났다.

유튜브에 그녀의 이름을 쳤다. 일 년 전 브로드웨이 코미디 클럽에서 하는 동영상이 딱 하나 떴다. 작년 말 쇼로 내가 먼저 Kindness(친절)를 베풀면 더 많은 친절이 나에게 돌아온다.’는 건전한 내용이었다.

어차피 남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는 것도 아닌 자기 인생을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하는데, 이왕이면 자기가 하는 일을 즐기며 친절을 베풀면 서로 기분이 좋지 않을까?’ 나도 불친절한 사람들을 접할 때마다 느끼던 아쉬움이었다. 그래서 조회 수도 거의 없는 그녀의 동영상을 서너 번 들락거리다 ‘Like’에 클릭했다.

무대 위에서 관객을 웃기지는 못하고, 뜬구름을 잡으려는 듯 떠보려고 애쓰는 코미디언, 동병상련이라고 무대 위에 선 그녀의 애처로운 모습에서 나의 모습을 본다. 그녀를 닮은 나를 발견하곤 씁쓸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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