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난 한 달간 하루에 한 번은 상추쌈을 먹었다. 한국 상추 4장을 차곡차곡 포개
밥과 된장을 얹어 소가 되새김을 하듯 창밖을 내다보며 천천히 꼭꼭 씹었다. 왜 사람들은 숫자
4를 싫어할까? 를 생각하면서.
아주 오래전 내 룸메이트는 야채 가게에서 케셔일을
했다. 그녀는 퇴근길에 상추를 잔뜩 가져와 밤늦게 풀잎 뜯어먹는 소리를 냈다. 부엌을 기웃거리는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것이 상추쌈이라며 멋쩍게 웃곤 했다.
상추쌈만을 먹기에는 뭔가 심심하고 지루하면 멸치를
고추장에 찍어 먹는다. 오랜 미국생활에서 양식에
익숙해지기는커녕 거꾸로 샌드위치는 꼴도 보기 싫다는 지인을 떠올렸다.
"금방 뜸들인 흰 쌀밥에 멸치를 고추장에 찍어 먹는 것이 제일 맛있어."
고급 레스토랑 분위기를 연상시키는 지인의 식탁 위에 올려진 초라한 고추장과 멸치를 상상하며
나도 따라 해 봤다.
만약 풋고추가 있었다면 멸치는 먹지 않았다. 상추를 공수해 준 스테이튼 아일랜드에 사는 언니 말이 예년과는 달리 뜨겁게
달궈진 날이 드문 올여름 상추 농사는 그런대로 됐는데 다른 채소들은 별로란다.
작년에도 깻잎을 잔뜩 따 가지고 와서 깻잎 장아찌를
만들어줬다. 올해는 비 오는 날 브라운 백에 상추를 가득 담아 버스 타고 전철 갈아타고 와서는 현관으로 나오라고는 던져주고 갔다. 바삐 갈 일이 있다는 사람을 붙잡지도 못하고 물에 흠뻑 젖은 브라운 종이
백을 안고 미안하고 고마워서 어쩔줄을 몰랐다. 로비에 황망히 서 있는 나를 보고 도어맨이 어깨를
으쓱하기에 엘리베이터 버튼을 재빨리 눌렀다.
찌는 듯 무더운 날 또다시 상추를 공수한다기에 무료
스테이튼 아일랜드 페리에 앉아 몇 번 왔다 갔다 하다 보면 진득한 더위를 식힐 수 있을 것 같아 다녀왔다. 친언니도 아닌 언니의 정성을 생각해서 그 많은 상추 한 잎 버리지 않고
다 먹었다. 마지막 시들시들한 것은 물에 한나절 담가 놓으니 신기하게 원상 복귀 씩 이나!
찌는 한여름에 서향인 커다란 부엌 창문으로 작렬하는
햇살과 오븐에서 뿜어대는 열기 때문에 부엌에 들어가기가 지독히 싫다. 남편이 좋아하는 맥주를 박스로 사다가 시원하게 재 놓았다. 귀가하는 남편을 반기는 착한 마누라를 생각해서라도 지인이나 예전
룸메이트처럼 흰 쌀밥에 상추쌈과 멸치를 고추장에 찍어 자연 그대로의 음식을 섭취해 주신다면 얼마나 고마울까? 만 글쎄올시다?
쪄도 너무 찌는 날이다. 목줄 맨 강아지가 끌려가듯 부엌으로 들어갔다가 밥만 안치고 돌아 나왔다.
일단 맥주로 기분이 좋아진 남편에게
“날씨도 후덥지근해서 자연 밥상인데요.
서방님~”
밥상 위에 놓인 상추와 멸치를 보고는 인상을 쓰려다
“좋지, 나 같은 남편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마지못해
수저를 든다. 성질 많이 죽었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