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분이세요. 두 분이 오셨나 봐요?”
지중해 크루즈에서 갑자기 한국말 소리에 반가워 돌아보니 자그마한 체구의 남자가 물었다.
한국에서 온 열 명의 손님을 모시고 가이드로 배를
탔단다. 열 명으로는 회사가 손해 보면서도 예약 손님들과의 약속 때문에 왔다는
이야기를 곁들였다. 정박지에서 버스 투어를 함께하면 싸게 잘 해주겠단다. 배에서 내려 육로로 가는 목적지가 그리 탐탁지 않은
곳이다. 여러 사람과 함께 움직여야 할뿐더러 가격도 만만치 않다. 그들과 합류하지 않았다.
다음 날 저녁 ‘11명이 배를 타지 못했다. 배를
놓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방송이 나왔다.
“어머 그 한국분들이 배를
놓쳤나 봐.”
“아무리 이 많은 사람 중에 그럴 리가!”
남편은 부인했다. 하기야 여행객 2000 명에 반 이상은 미국에서 온 사람
그리고는 온갖 나라별로 조금씩에 승무원이 1000명 정도니 그 사람들이 배를 놓쳤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웠지만, 내 직감은 왠지 그쪽으로 쏠렸다.
아침마다 배에서 내려 부근 도시를 두리번거리다가 배
타기 전 와인 가게에 들렸다. 그 가이드분과 마주쳤다. "혹시 배를 놓치셧나요?" 궁금해서 물었다.
"프랑스에서 현지 운전자의 미숙으로 배를 놓쳐 밤새도록 버스를
몰아 다행히 이탈리아에서 잡아탈 수 있었어요. 모시고 온 손님들에게 미안해서 와인을 대접하려고. 버스에서
밤을 지새운 손님들이 기침할 적마다 가슴이 철컹 내려앉아요."
그의 표정은 몹시 피곤했다. 나는 세상에 쉬운 일이 없다는 생각에 침묵했다.
우리부부는 방문한 고장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고 있나 보고 느끼고 싶어서 배에서 내려 대중교통을 이용해 둘러본다. 굳이 모든 것을 봐야
할 필요도 없다. 발 닿는 데로 돌아다니다 동네 식당이나 카페에서 와인을 곁들인 가벼운 식사를 한다. 서둘러
배를 타고는 식당에서 여유롭게 칼질하고 수영과 사우나를 즐겼다. 밤 극장 공연 프로그램이 끝나면 흔들리는
요람에 빠진다.
가이드는 한국과 미국 크루즈 가격 차이 때문에 모시고 온 한국
사람과 우리와 굳이 만나서 말 섞는 것을 염려하며
"혹시 제가 모시고 온 분들과
마주치더라도 배 가격을 말하지 말아 주세요."
덧붙여 이런 부탁을 하는 자신의 비애를 이해해 달라던
가이드의 ‘비애’라는 말이 머리에 남아 뱅뱅 돈다.
여행은 피곤하다. 그래도 또 떠난다. 자신과
다른 삶의 모습 혹은 지나간 시간의 흔적을 마주하면서 희로애락을 만끽하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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