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임, 수임씨 아니 언니,"
오랜 세월 서로가 거리낌 없이 반말하다 갑자기 언니는? 친구가 보내온 카드에 써진 나의 호칭이다. 그동안 5살의
나이 차이를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말 트고 지내다 갑자기, 왠지 낯설고 불편했다.
미장원에 갓 들린 머리에 화사한 복장과 액세서리, 커다란 두 눈을 더욱 크게 뜨고 반가워하는 너무 환한 모습에 머뭇거리는
나를 그녀가 꼭 껴안는다.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교회에서 반주하고 예술을 삶이라 여기며 사는 친구다. 호기심이 많아 항상 배우려는 자세로 살며 밝은 기를 전한다. 내가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만남을 피해도 기다리며
부담 주지 않는, 만나게 되면 만나고 못 만나도 섭섭해하지 않지만, 오랫동안 못 보면 보고 싶다고 귀엽게 칭얼거린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살면서 친동생 말고는 누구에게도
‘언니’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다. 체구가 작고 철이 없어 전혀 윗사람으로 대접할 분위기가 아니라 설까? 언니는커녕 오히려 동생처럼 나를 챙겨줬다.
사람을 만나는 일은 쉽지 않다. 혼자서 하는 일이야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지만 사람과의 교제는 상대의
처지를 이해하고 배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많은 사람이 고집과 자기주장이
세진다. 만나면 일단 꼬리를 올리고 발톱을 세우며 상대방의 단점을
지적하다 뭔가 수틀리면 달려들어 상처를 남기고 미련없이 사라지는 묘한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절대 건드리면 안 된다. 옳다구나 잘됐다며 평생 잊기 힘든 일이 벌어진다.
반면에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 그럴 수도 있다며 너그럽게 늙어가는 사람도 있다. 또한, 지나온 삶을 뒤 돌아보고 자신을 비워 빈 백지 위에 새로운 삶을 설계하는 사람도 있다.
늙어가면서 사람들은 좋은 방향으로, 나쁜 쪽으로 아니면 자신을 재창조하는 쪽으로
갈린다.
너그러운 사람을 만나면 너그럽지 못한 나 자신이 부끄럽고, 살쾡이 과를 만나면 두려움에 숨이 막힌다. 윗사람으로 언니, 사모님, 선생님으로 대우받는 것도 부담스럽다.
나이가 나보다 훨씬 어려서 말을 놓아도 좋으니 너무 너그럽지도 살쾡이처럼도 아닌 관계로 우울증이 없어야 하고 약속 시각
잘 지키며 돈거래를 하지 않고 종교 이야기만 하지 않는다면 오랜 친구로 남지 않을까? 유머감각까지 곁들인다면
노후의 삶은 더욱 풍요롭다.
인간관계를 이렇게 이것저것 따지는 것이 나야말로 넉넉히
쳐서 살쾡이 과는 아니더라도 햇볕 드는 창가에 웅크리고 있는 검은 고양이는 아닌지? 아! 정말 살쾡이 같은 할머니로 늙어가기는 싫은데.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