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만 알고 있으래이."
나만 알고 있기는 이미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별 볼 일 없는 일을 툭하면 비밀인 양 입버릇처럼 떠들던 나이 지극한 지인이 한국으로 떠난 후 주변이 정리된 듯 조용해졌다.
이미 입에서 굴러떨어져 나간 말은 내 것이 더는 아니다. 그 사람이 그의 입으로 말하겠다는데 어쩌겠는가. 그렇게 중요한 이야기라면 아예 꺼내지 말고 어느 영화에서처럼 나무에 뚫린 구멍에 대고 토한 후 진흙으로 봉하던지. 일단 뱉어진 말을
"꼭 니만 알고 있으락 했는디 와 캤노."
따져바짜 또 다른 니만 알고 있으래이의 반복이다.
모두다 고만고만하고 그저 그런 삶을 사는 이 나이에
친구 대여섯 명이 함께 잘 지내다가 누구는 빼고 누구는 끼워주며 왕따를 한다. 껴 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정작 빠진 사람들은 바빠서 생각지도 않는 일을 무슨 피로 맹세한 동지끼리 기밀이라도 누설한 양 쉬쉬한다.
끼워주지 않아도 전혀 섭섭하지 않은 그렇고 그런 모임을 편하고 화기애애하게 이끌어가면 되지 누가 뭐래. 오히려 쉬쉬하는 것이 ‘뭔가 있긴 있나?’ 잠깐 의심이
들었지만, 있으면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어차피 자기 인생 자기가
짊어지고 가야 하는데.
“뉴욕이 발칵 뒤집힐 일이 곧
터질 거야.’"
자신들의 이혼을 전쟁 포고하듯 거창하게 선포했다.
뉴욕은 여전히 조용했고 사람들은 이미 그들 부부의 잦은 싸움으로 ‘예상했던 일이
터졌나 보다’며 무덤덤했다.
"왜 이렇게 조용한 거야?"
하며 오히려 자신들의 속이 뒤집히지나 않았는지 모르겠다.
떠나온 모국에서 남의 일에 거품 무는 습속과는 달리
조그만 일이라도 다 자신이 처리해야 하는 바쁜 뉴욕생활에서 남의 골치 아픈 일에 엮이길 원치 않을뿐더러 관심을 가질 만큼 한가하지도 않다.
"혹시 누가 나를, 나에게,
나에 대해서…"
다 본인의 착각이다.
누가 뭐랬냐고? 왜 쉬쉬하다 ‘네가 그랬니,
내가 그랬니.’ 하며 난린지. 개인의 문제와
고민은 각자 해결하고 친구들과의 만남에서는 즐거움을 나눠야지 우리 나이에 누구 눈치 보며 쉬쉬하며 불안한 만남을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
"친구야, 그동안 내가 했던 이말 저말 다른 사람에게 다 전해도 난 상관없다.
너도 너 나름대로 사연과 사정이 있어서 ‘니만 알고 있으레이’라는 토를 다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알아서 하지 말아야 할 말은 안 하고, 할 말은 네가 하지 말라고 해도 할 거다."
그런데 나는 뭘 그리 잘났다고 이렇게 부질없는 이야기를
거창하게 긁적거리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