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December 21, 2013

우울한 방문

"아버님이 당신에게 아파트 물려준다는 것을 확실하게 받아 공증해 놔야 해. 그렇지 않으면 돌아가시고 나서 복잡해 진단 말이야. 당신 할 수 있겠어? 오늘 해. 더 미루면 안 돼. 알았지." 

어느 여자가 남편에게 초조한 듯 간절한 목소리로 전화하는 소리가 병원 휴게실에 앉아 있는 나에게 선명하게 들렸다. 불안한 듯이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며 한동안 뭔가를 생각하던 여자는 확신에 찬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떴다.

아버지가 위급하다고 해서 서울에 나가 병원을 들락거렸다. 병간호인이 24시간 붙어 있어 굳이 할 일도 할 말도 없는 나는 주위 사람들 이야기에 귀가 솔깃했다. 모두가 금전 이야기이다. 그것도 내 소유가 아닌 것을 어떻게 하면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느냐였다.

돈은 은행하고만 이야기하는 뉴욕 생활에 익숙해진 나는 이런 음습한 수작을 들으며 숨죽여 긴장해야 했다. 병간호인도 그 틈을 타서 먹지도 움직이지도 못하는 환자임에도 돈을 주면 좋아한다고 은근히 효도 운운하면서 나를 꼬드겼다. 환자가 챙길 수 없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여유와 인심이 곳간에서 나오듯 항상 주저하지 않고 뒷주머니에서 꺼냈던 아버지의 두툼한 지갑과 통장의 행방은 어디로 갔는지…. 
"어딜 가느냐?"
검사받으러 이동할 때마다 혼자 버려지는 것은 아닌지 불안한 눈으로 사방을 휘둘러보곤 하셨다.

몸이 아픈 것보다 불안이 환자를 힘들게 했다. ‘그냥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재산을 가지고 있으면 불안하지 않을 텐데는 옛말로, ‘욕심 있는 자식이 누워있는 노인에게 강제로 자신에게 물려 주게끔 강요하는 것이 요즈음 한국의 대세란다.

저녁도 거르고 숙소로 돌아와 잠에 빠졌다. 불안해하는 아버지를 보고 침묵해야 하는 괴로움에 밥맛을 잃었다. 뱃속에서 나는 요란한 소리에 눈을 떴다. 뭔가 먹어야 한다. 허기진 배를 안고 숙소를 나와 신사동 가로수 길을 걸었다.

쇼윈도를 기웃거리는 젊은이들의 물결로 걷기조차 힘들었다. 옆길로 빠졌다. 술집이 끝없이 이어지고 철판 위에 갖다 쏟아놓은 듯한 지글거리는 붉은 음식을 놓고들 술 취해 제정신들이 아니다. 내가 들어갈 만한 곳이 없다. 모두가 젊고 싱싱한 젊은이들뿐이다.

길바닥 하수구 맨홀에서 올라오는 시쿰한 시궁창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배고픔이 확 달아났다. , 돈 하는 이 어두운 터널을 지나 먼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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