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어 하는 여행이라 설까? 어디를 가서 무엇을 보고 온 것인지 기억이 가물가물 안갯속을 헤매다 나온
듯하다. 그나마 사진에 찍혀진 순서대로 훑다 보면 생각나긴 한다. 눈보다는 입이 더 기억을 잘한다. 먹었던 음식들의 맛과 색깔을 떠올리며 군침을 삼킬 정도다. 옆 사람들과
떠들었던 분위기도 생생하다.
라인 강 크루즈를 탔다. 강 배는 바다 배와는 달리 작아서 다양한 오락 프로그램은 전혀 없었다.
배가 정박지에 도착하면 아침 투어를 하고 점심 후엔 동내 한 바퀴 돌듯 산책하고 돌아와 갑판에 누어 일광욕하다 저녁 식사
때 사람들과 떠드는 것이 일과다. 배가 작다 보니 사람들과의 접촉이 많을 수밖에 없다. 승객 190명 몽땅 미국인인 하얀
사람, 우리 부부만 누랬다. 그들도 우리의 존재가 불편했겠지만 어쩌겠는가!
조용히 남편과 식사하며 요리를 즐길 수 없는, 딱히 할 일 없는 배 안이라 식사
시간엔 모두 모여 한 식탁에서 떠들어야 했다. 영어가 영어인지라 불편은 했지만 견딜 만은 했다.
독일이 맥주로만 유명한 줄 알았는데 햇볕이 잘 드는
라인 강가 야트막하게 펼쳐진 언덕은 화이트 와인 밭 천지였다. 와인 밭 언덕 위로 이따금
우뚝 솟은 옛 중세 성채 벽만 남은 성곽 위에 크레인을 세워 놓고 복원공사가 한창이다.
모든 것이 역사적 스토리 텔링에 굶주린 미국인 관광객을 노린 것이 분명하다.
혼자 여행 온 나이 든 남자가 있었다. 다리가 약간 불편한, 그의 선한
눈과 마주칠 때마다 인사를 나누곤 했다. 그분은 항상 비닐봉지를 들고 다니며 배에서 내려서는 쓰레기를 줍는
것이 아닌가! 세상 모든 쓰레기를 찾아서 여행하는 듯한 초연한 자세로, 미국생활에서 길든 강박관념의 한 토막을 보는 듯 쓰레기 줍는 그의 구부정한 모습이 진하게 새겨졌다.
피곤한 몸을 끌고 집에 돌아와 침대에 등을 대는 순간
‘돼지우리라도 내 집이 편하다.’는 것을 누누이 느끼면서도 세상은 넓고 그 안에 사는 그 누구도 나와 같지 않기에 다름을 찾아서 또 여행을 떠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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