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남편한테 쥐여사니?”
40년 만에 멀리서 뉴욕을 방문한 친구가 나에게 내뱉은 말이다.
‘너는 네 남편 눈치 보지 않아
그러고 사니?’ 라고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런데
요 입이
“마음대로 살다가 얘 이혼당했잖아.”
라고 옆에서 부지런히
밥 먹고 있는 또 다른 친구를 향해 화살이 날아갔다.
40년 만에 만난 세 여자가 그냥
헤어질 수 없었다. 이혼하고 혼자 사는 친구 집에서 하룻밤을 자며 밀린 수다를 떨었다.
"우리 하루만 더 놀자."
친구들이 나를 붙잡길레 남편에게 전화했다.
“내일은 꼭 집에 간다니까. 한 번만 봐 줘요.”
남편은
당장 오라고 소리를 꽥꽥 질렀다.
“너 왜 그러고 사니?
네 남편이 왜 너를 믿지 못하는데? 너 남편에게 죄지었니?”
라고 나를 몰아세웠다. 결국엔 옆에서 잠잠히 듣던 친구도 합세해서 합창했다.
처지를 바꿔서, 남편이 40년 만에 친구를 만나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과연 기분이 좋을까?
중고등학교 시절 아침에 만원 버스를 타고 학교 가는
내가 안타까워 아버지는 나를 버스에 밀어 넣고 가며 지켜보시느라 앞에 전봇대가 있는지도 모르고 부딪칠 뻔하셨다. 학교에서 돌아올 때면 버스정류장에 나와 기다리셨다. 이태원 길가에 있던
웨스턴이라는 식당에서 크림 숲과 치킨을 사주시며 학교 이야기를 물어보곤 하셨다. 아버지의 사랑을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어느 독자가 말했듯이 “신문에 아버지 이야기를 많이 쓰네요.”
할 정도로 나는 엄마와 아버지에 대한 사랑의 기억으로 살아간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3년 후 첫아이를 낳았다. 엄마에 대한 사랑이 아이에게로 옮겨갈 때까지 나는
엄마가 생각나면 훌쩍 되곤 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남편에게로 사랑이 옮겨가는 중이다. 남편이 나를 믿지 못해서도 아니고 내가 남편에게 죄를 지어서도 아니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는 좋은 일(친구들과 노는 일)보다는 옳은 일(남편이 있는 집으로
돌아오는 일)을 선택해야 했다.
엄마와 아버지의 사랑이 기억나면 가슴이 먹먹해지며 눈물 흘리다 마음이 따듯해지고 입가에 웃음이 번지며
힘이 솟는다. 그 사랑을 아이들과 남편에게 전달하며 살려고 애쓴다. 결국, 내가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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