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찾아온다는 거예요?
부르지도 않은 남의 집에.”
오프닝에서 ‘한번 찾아뵐게요.’ 라는 누군가의 인사말을 듣던 어린 나이에 미국에 온 1.5세가 나에게 어눌한 한국말로 물었다.
오프닝에서 ‘한번 찾아뵐게요.’ 라는 누군가의 인사말을 듣던 어린 나이에 미국에 온 1.5세가 나에게 어눌한 한국말로 물었다.
한국에서는 그런 인사말이 일종의 친밀한 감정의 표현이라고
얼버무리려다. ‘아니 초대도 하지 않은 집에 왜 오겠다고 초대하라. 마라느냐!’ 며 1세인 나도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좀 불러요.’라고 말하는 사람 대부분은 자신의 집은 보물창고라도 되는 듯 단단히 걸어 잠근다. 청소해야지.
음식 장만해야지. 손님 비위 맞춰야지. 등등
힘든 일은 하기 싫고 남의 집에 가서 한 끼 때우기는 쉽기 때문이다. 느긋하게 늦잠자고 온종일 굶다가 빈손으로
나타나 배를 채우고 나면 ‘바빠서 이만’ 하며 사라지는 부류들리 적지
않다.
여러 번 초대를 받았으면 한 번이라도 부르던지, 초대하지 못할 사정이 있으면 부르라는 소리를 말든지.
그 많은 후배와 동료들을 초대하고 재워주다 부부 사이가
나빠진 이 선배님, 어떻게 그리 베풀 수 있었는지?
뭐 그럴싸한 집이라도 장만하시고 초대한 것도 아니다. 없는 살림에 음식 장만해서 먹이고 돌아가며 노래 부르라고 재촉하던
그분에게 감사하다는 표현을 하고 싶지만 이미 고인이 되셨다.
이 선배님뿐만 아니라 김 선생님, 배 선생님, 정 선생님에게도 여러
번 초대받았다. 그 보답으로 건강하고 화목하시라는 바람이 통했는지 모두 잘 계신다.
그런 정겨운 기억으로 나도 결혼하고서는 수시로 사람들을
불렀다. 많을 경우엔 50명 이상이나.
‘그날 재미있었어요.
또 부르세요.’ 하던, ‘우리 집에도 한 번
오세요.’가 아니라 초대하면 기꺼이 가 줄 수 있다는 지인들의 소리가 어느 날부터인가 몹시 거슬렸다.
그동안 나는 ‘부르는 호구’였구나?
하는 심술이 발동했다. ‘좀 불러요.’ 라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이 들고 힘들어 이젠 못 해요.”라고 젊잖게 거절할까? 아니면 ‘나이가 몇살인데 아직도
그런 말이나 하고 다니냐고?’고 심술부릴까? 망설이다 입을 꽉 다물고
못 들은 척한다. 그리고 부르는 요란한 해픈잉에서 발을 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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