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May 16, 2015

모두가 스승이다

친구가 결혼하고 신혼여행을 다녀와 아침에 일어나 부지런을 떨었다. 새 신랑은  계속 자다가 눈을 뜨자마자 TV를 켰다. 자신의 앞날이 불 보듯 뻔하다는 생각에 무척 실망했다는 친구의 옛이야기를 흘려 듣지 않았다.

나 또한 결혼해서 늦게 일어났다. 나는 평생 아파서 누워 있던 엄마 곁에 누워 자랐다. 아픈 몸을 추슬러 외출하고 돌아와 열 일을 제쳐놓고 누웠던 엄마처럼 나도 밖에 나갔다 오면 일단 눕는 것인 줄 알았다. 내가 부지런히 움직이지 않아도 집안은 돌아갈 것이라는 철없는 생각이 결혼해서도 친정에서처럼 그냥 먹고 사는 줄 알고 가난한 화가와 결혼했다.

남편은 나와는 반대로 가만히 있지 않고 항상 일을 찾아서 한다
멀쩡한 사지는 가만 놀리는 게 아니다.’
연속극에서 자주 듣던 이야기처럼 함경도 시부모님을 닮아 부지런하다. 속으로는 게으른 나에게 무척이나 실망했겠지만, 한 번도 나에대해 불평한 적이 없다.

맨해튼 고급 식당 유리창 안을 들여다보며 내가 왜 저 사람들처럼 식탁에 앉아 칼질할 수 없는지를 결혼 후 금방 깨달았다. 친정부모에게 떼만 쓰면 이루어지던 일들이 결혼 후에는 내 힘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 나의 현실이라는 것을.

가난에 울고 나와 다른 사람과 함께 사는 고통에 울며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철들었다. 피는 속일 수 없는지 큰아이는 남편을 닮아 쉬지 않고 일하며 부지런하다. 작은 아이는 나를 닮아 누워있기를 좋아한다.

천장을 보고 누워 있는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는 나도 어린 시절 거미줄처럼 얼기설기 사방으로 뻗어 나간 벽지 무늬를 따라 시선을 옮기며 누워 있기를 즐겼다. 여행을 떠나 듯 무늬를 따라 정처 없이 가다 보면 막다른 골목에서 무늬가 끊긴다. 끊긴 무늬를 찾아내려는 듯 뚫어져라 보고 있노라면 스르르 잠이 들곤했다. 

"일어나. 공부 좀 해야지." 
엄마가 방바닥에 흩어진 머리카락을 쩌억쩍 소리 내며 테이프에 붙이면서 살금살금 다가와 내 등 뒤에 붙은 머리카락을 쩍쩍 쩍
엄마 제발 그만해.” 
신경질 내며 벌떡 일어나 책상 앞에 앉아 책을 펴면 엄마도 하던 행동을 멈추고 씨익 웃었다.

"하늘나라에서 장모님이 부지런해진 마누라를 보시면 놀라서 씨익 웃으시겠다.’ 
남편도 나의 변화에 감탄한다
"작은 아이야, 이 엄마가 하늘나라에서 놀라기 전에 살아있을 때 너의 부지런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래."
우리 남편같은 독한 여자와 결혼해야 나처럼 정신을 차릴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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