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May 2, 2015

혼자 노는 연습

전화가 끊겼다. 더는 연결할 수 없다.’는 녹음이 나온다. 아니 전화를 끊기 전에 새로운 번호를 주지도 않고 끊다니! 허무하고 허망해 한참을 멍해 있었다.

딸을 따라 서부로 이사 가서 손주들을 돌보느라 바빠 전화만 간간이 했지만, 점잖고 겸손하고 솔직하고 마음이 여린 무척 좋아하는 친군데 연락할 수 없다니!

먼젓번 통화에서 딸 아이가 낳은 손주 둘을 키워 유치원에 보내고 이젠 좀 쉬어야지 하며 한숨 돌리려는데 사위가 어머니 아버지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아이를 잘 키워 줬으니 뭔가 효도 하려나? 했더니 셋째를 가졌는데요.’ 싱글벙글 기쁜 얼굴로 쳐다보는 데는 너무 황당해, 할 말을 잃고 멍해 있었단다. 옆에서 듣던 친구 남편이 아니 너희는 철도 없이!” 하고 긴말이 이어지려는데 좋아하실 줄 알았는데 오히려 놀랐다.'는 표정으로 실망하며 저희가 키울게요. 걱정하지 마세요.’라며 시무룩해 하는 아이들을 어찌했으면 좋겠냐는 하소연을 했다.

나야 아이들이 결혼도 하지 않았으니 손주 키우는 기쁨과 어려움을 어찌 알겠느냐마는
엄마 나 결혼해서 아이 낳으면 키워 줄래요?” 
큰아들의 뜬금없는 질문에 기겁하며 
너 키운 것으로 끝이야. 네 자식은 네가 키워.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도 마.” 
엄마가 나를 키우듯 잘 키울 것 같아서요.” 
결혼도 하지 않은 것이 한다는 소리치고는 
네 자식 네가 키우는 것만큼 잘 키우는 것은 없다. 자리 다 잡고 네가 키울 수 있을 때 애를 낳던지. 키울 수 없으면 낳지 마라.”

손주가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는 옛 일본 속담이 있다고 서울에 갈 때마다 볼일 봤으면 서둘러 가라.’던 친정아버지,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조용히 혼자 사는 집에 누구라도 오면 삶의 루틴이 깨지고 불편해서다. 그런 아버지의 생활을 존중해 돌아가시기 전 몇 년은 굳이 친정엄마도 없는 친정집에 머물지 않고 호텔에 있다 왔다.

손주 봐 주지 않았다고 늙은 부모 나 몰라라 해도 나는 좋다. 이제는 더는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으련다. 내 멋데로 편히 살란다. 그저 멀리 뚝뚝 떨어져 건강하게 각자 할 일 하다 가끔 만나 밥이나 먹고 (밥값은 내가 낸다.) 내 몸 내가 돌볼 수 없으면 양로원에 가던지 병간호원 부르던지 돈이나 꽉 쥐고 있어야지.

양가 부모님이 우리 부부 열심히 뒷바라지했어도 멀리서 해드린 것도 없이 저세상으로 가시지 않았던가. 잘해주고 재산 줘도 부모가 앓고 누워 부르고 돈 달라면 좋아할 자식이 어디 있을까?

생각과 현실은 엄청나게 다르기에 해준 것은 깨끗이 잊고 받을 생각은 아예 하지도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리라. 말은 쉽지!

2 comments:

  1. 120프로 동의합니다. 근데...그 나긋나긋하고 포동포동한 아기를 품엔 한 번 안아보신 다음에도 마음이 안 바뀌실까요? ㅎ ㅎ
    아무래도 저희가 먼저 손주를 보게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큰딸아이가 금년 10월로 날을 잡았으니. ^^ 두 분 다 건강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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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돌아오셔서 글을 업데이트하시고 이렇게 댓글을 달아주시니 반가워요.
      그렇치 않아도 예쁘신 딸과 사위 될 분 사진을 들여다보며 '와우' 했는데
      항상 글 속에서 다정다감함이 느껴져서 저와 제 남편과는 다른 분이라는 생각 했는데. 결혼식에서 딸 아이 손 잡고 걸으시는 모습 또한 상상해 봤네요. (저희는 딸이 없어서 남편이 서운해 하는 장면이예요)
      축하드립니다.
      글쎄 전 아이들을 무척 좋아하고 열심히 키웠지만 아직 손주 볼 길이 멀어서인지... 그래도 아마 손주를 보면 확 달라지겠지요. 아이들을 키우면서 맡았던 젖내가 그리고 세상 모든 소리가 '엄마' 로 들렸던 그 시절이 그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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