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May 23, 2015

에라 모르겠다

엄마 짱양이 결혼했어요!” 
언제?” 
요번 휴가에 집에 가서.” 
사귀는 여자 없댔잖아?” 
"없는데 나이 많은 어릴 적 옆집 여자친구가 혼자 있길래 시티홀에서 서약만 하고 결혼 했데요. .”
와우! 멋있다.” 
생긴 것은 완전히 중국 사람인데 쿨해요. 엄마도 만나면 좋아할 거예요. 짱양 결혼식 때 베스트맨으로 중국에 갈 거예요.” 
뉴욕에도 오라고 해라?” 
중국사람은 나처럼 가고 싶은 곳 마음대로 갈 수 없어요."

짱양은 중국에서 영어를 전공하고 싶었지만 대학에서 강압적으로 하라는 일본어를 전공하고 우리 작은 아이와 나이 차이는 나지만 일본에서 함께 일하며 친하게 지내는 사이다.
엄마, 나는 다른 곳은 다 갈 수 있는데 한국사람으로 태어나서 한국에는 갈 수 없는 것이 새드(sad) 해요. 한국 고궁과 절에도 가고 싶고 음식도 먹고 싶어요.” 
글쎄 말이다. 어쩌다 그렇게 됐는지!”

어릴 적 아이는 한국에 세 번 갔었다. 뿌리교육재단에서 하는 모국방문 프로그램으로, 중앙대학교 모국어 연수로도 그리고 태국에서 한 학기 공부할 때 한국에 들렀었다. 일본에서 지척이면 갈 수 있는 한국은 불행히도 미국에서 태어났어도 1998년 6월 13일 이전 출생자 : 출생 당시 아버가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은 출생과 동시에 한국 국적을 취득하 부계 혈통주의군대에 가야 한단다한마디로 지랄같은 법이다. 법 취지는 원정출산을 막고자 만들었는데 엉뚱한 젊은 남자들만 골탕 먹는다. 일하다 군대로 끌려갈 수도 없고 한국만 가지 못하고 주위의 나라를 빈둥거리는 안타까운 자신의 국적에 몹시 실망했다.

화상 채팅 중 갑자기 나이도 어린 아들이 멀리서 11살 많은 일본 걸프랜드랑 우리에게 알리지도 않고 친구 짱양처럼 시티홀에서 결혼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마쓰미 (아이의 걸프랜드)는 결혼할 나이가 지났는데 너보고 결혼하자고 하디?” 
딱 한 번 말했어요.” 
그래서 넌 ?” 
잘 모른다고 했어요.” 
우리 둘 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해서 말이 잘 통하고. 정말 쿨한 여자예요.”

우리 부부처럼 번거로운 것을 무척이나 싫어하는 아이들도 시티홀에서 선서하는 결혼만을 할 거라며 중얼거리곤 했다. 비용도 들지 않고 주위 사람에게 청첩장 돌릴 일 없으니 나야 좋지만, 과연 여자들이 원할까? 어릴 적부터 엉뚱한 짓을 잘하는 아이가 혹시나 하는 생각에.
스카이프가 이상한가? 엄마는 네가 아직도 고등학생 아기처럼 보이네! 엄마 얼굴도 젊어 보이냐?” 
스카이프에 얼굴을 가까이 대며 아이가 결혼할 나이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느라 헛소리나 할 수밖에. 에라 모르겠다. 알아서 잘하겠지

Friday, May 22, 2015

He'll do well on his own

"Mom, Chang-yang is married!" "When?" "When he went home on vacation." "He didn’t have a girlfriend, did he?" “No, but he asked older childhood friend who live next door to marry him. They just made a pledge at the City Hall.

"Wow! "It's cool." "Mom will you like him if you meet. I will go to China as the best man at the wedding." "Ask him to come to New York.” "Chinese cannot go where they want to go."

Chang-yang wanted to major in English in China, but he majored in Japanese for coercion in college. Although he is older than my son, they work together in Japan and get along very well.

"Mom, I can go anywhere else, but it is sad that I cannot go to Korea even if I was born as a Korean. I want to go to the Korean palace and temple and eat Korean food." "Well. How it happened!"

My son went to Korea three times. It was a program to visit the mother country through the Root Education Foundation, and as a native language-training course at Chung-Ang University. Also he visited Korea when he was studying for semester in Thailand. Unfortunately, born before June 13, 1998, in the United States: a person whose son had Korean nationality at birth had to go to the army with a paternalist lineage that acquired Korean nationality at the time of birth.

In a word, it is ridiculous. The purpose of the law was to prevent maternity trips, but the young men are having trouble. My son was deeply disappointed with his sad nationality that he could not be dragged into the army when he was working.

During the video chat, suddenly I doubt if my son is going to marry his Japanese girlfriend at City Hall without telling us. "Matsumi (the son's girlfriend) is old enough to marry and did she ask you to marry her?” "She said it once." "So, I answered, I do not know. We both love Murakami Haruki. It makes perfect sense. She's a really cool girl.”

Our sons who hate the hassle like our couple mutter, saying that they are going to married at city Hall. It’s good to me because we do not have to pay for the wedding and there’s no need to invite to people around us, but I wonder if women who get married our son want?

"Is the Skype weird? Mom looks like you're still a high schoolboy! Do I look younger, too?” I put my face closer to Skype. I have to make bullshit to emphasize that the child is not old enough to get married with. Oh, I do not know. He'll do well on his own.

Saturday, May 16, 2015

모두가 스승이다

친구가 결혼하고 신혼여행을 다녀와 아침에 일어나 부지런을 떨었다. 새 신랑은  계속 자다가 눈을 뜨자마자 TV를 켰다. 자신의 앞날이 불 보듯 뻔하다는 생각에 무척 실망했다는 친구의 옛이야기를 흘려 듣지 않았다.

나 또한 결혼해서 늦게 일어났다. 나는 평생 아파서 누워 있던 엄마 곁에 누워 자랐다. 아픈 몸을 추슬러 외출하고 돌아와 열 일을 제쳐놓고 누웠던 엄마처럼 나도 밖에 나갔다 오면 일단 눕는 것인 줄 알았다. 내가 부지런히 움직이지 않아도 집안은 돌아갈 것이라는 철없는 생각이 결혼해서도 친정에서처럼 그냥 먹고 사는 줄 알고 가난한 화가와 결혼했다.

남편은 나와는 반대로 가만히 있지 않고 항상 일을 찾아서 한다
멀쩡한 사지는 가만 놀리는 게 아니다.’
연속극에서 자주 듣던 이야기처럼 함경도 시부모님을 닮아 부지런하다. 속으로는 게으른 나에게 무척이나 실망했겠지만, 한 번도 나에대해 불평한 적이 없다.

맨해튼 고급 식당 유리창 안을 들여다보며 내가 왜 저 사람들처럼 식탁에 앉아 칼질할 수 없는지를 결혼 후 금방 깨달았다. 친정부모에게 떼만 쓰면 이루어지던 일들이 결혼 후에는 내 힘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 나의 현실이라는 것을.

가난에 울고 나와 다른 사람과 함께 사는 고통에 울며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철들었다. 피는 속일 수 없는지 큰아이는 남편을 닮아 쉬지 않고 일하며 부지런하다. 작은 아이는 나를 닮아 누워있기를 좋아한다.

천장을 보고 누워 있는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는 나도 어린 시절 거미줄처럼 얼기설기 사방으로 뻗어 나간 벽지 무늬를 따라 시선을 옮기며 누워 있기를 즐겼다. 여행을 떠나 듯 무늬를 따라 정처 없이 가다 보면 막다른 골목에서 무늬가 끊긴다. 끊긴 무늬를 찾아내려는 듯 뚫어져라 보고 있노라면 스르르 잠이 들곤했다. 

"일어나. 공부 좀 해야지." 
엄마가 방바닥에 흩어진 머리카락을 쩌억쩍 소리 내며 테이프에 붙이면서 살금살금 다가와 내 등 뒤에 붙은 머리카락을 쩍쩍 쩍
엄마 제발 그만해.” 
신경질 내며 벌떡 일어나 책상 앞에 앉아 책을 펴면 엄마도 하던 행동을 멈추고 씨익 웃었다.

"하늘나라에서 장모님이 부지런해진 마누라를 보시면 놀라서 씨익 웃으시겠다.’ 
남편도 나의 변화에 감탄한다
"작은 아이야, 이 엄마가 하늘나라에서 놀라기 전에 살아있을 때 너의 부지런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래."
우리 남편같은 독한 여자와 결혼해야 나처럼 정신을 차릴는지.

Friday, May 15, 2015

What is my reality?

After a friend got married, she got up early in the morning and worked diligently, but her groom turned on the TV as soon as he got up late. I remembered the story of a friend who was worried about her future with disappointment about her husband.

I also got married and got up late. I grew up lying next to my mother who was sick for a lifetime. Even though I married a poor artist and did not work diligently, I though I lived well as if I lived in my parents' house.

My husband is always diligent, as opposed to me like a parent-in-law. He would have been very disappointed with my lazy self, but never complained.

Looking into the glass windows of Manhattan's high-end dining room, I immediately realized why I could not eat like those people sitting at the table. After the marriage, my reality the things that used to do with my parent should do by myself.

I cried in poverty, cried in pain of living with others, and raised children. I became mature. Blood can’t be deceived. Older son is like a husband, working hard and diligent, and a young son likes to lie down like me.

Like my young son who likes to lie down, I also enjoyed lying down, moving my gaze along the wallpaper pattern that stretched out like a spider web in my childhood. As I went on my journey, I went through the pattern, and the pattern disappeared as if I was reaching a dead end. If I were looking to find a broken pattern, I would be asleep without even realizing it.

'Wake up. 'My mother attached the hair to the tape the hair scattered on the floor and sneaks up on me and attached the hair to the tape on my back. "Mommy, please stop." I jumped up and nervously and laid a book in front of my desk, and she stopped acting and laughed.

My husband is very impressed with my change,' he said, 'if mother-in-law look at my wife who became diligent in the kingdom of heaven, she will be amazed.' Younger son, please show me your diligence when I am alive before I am amazed in heaven. I wonder if he has to marry a harsh woman like my husband!

Saturday, May 2, 2015

혼자 노는 연습

전화가 끊겼다. 더는 연결할 수 없다.’는 녹음이 나온다. 아니 전화를 끊기 전에 새로운 번호를 주지도 않고 끊다니! 허무하고 허망해 한참을 멍해 있었다.

딸을 따라 서부로 이사 가서 손주들을 돌보느라 바빠 전화만 간간이 했지만, 점잖고 겸손하고 솔직하고 마음이 여린 무척 좋아하는 친군데 연락할 수 없다니!

먼젓번 통화에서 딸 아이가 낳은 손주 둘을 키워 유치원에 보내고 이젠 좀 쉬어야지 하며 한숨 돌리려는데 사위가 어머니 아버지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아이를 잘 키워 줬으니 뭔가 효도 하려나? 했더니 셋째를 가졌는데요.’ 싱글벙글 기쁜 얼굴로 쳐다보는 데는 너무 황당해, 할 말을 잃고 멍해 있었단다. 옆에서 듣던 친구 남편이 아니 너희는 철도 없이!” 하고 긴말이 이어지려는데 좋아하실 줄 알았는데 오히려 놀랐다.'는 표정으로 실망하며 저희가 키울게요. 걱정하지 마세요.’라며 시무룩해 하는 아이들을 어찌했으면 좋겠냐는 하소연을 했다.

나야 아이들이 결혼도 하지 않았으니 손주 키우는 기쁨과 어려움을 어찌 알겠느냐마는
엄마 나 결혼해서 아이 낳으면 키워 줄래요?” 
큰아들의 뜬금없는 질문에 기겁하며 
너 키운 것으로 끝이야. 네 자식은 네가 키워.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도 마.” 
엄마가 나를 키우듯 잘 키울 것 같아서요.” 
결혼도 하지 않은 것이 한다는 소리치고는 
네 자식 네가 키우는 것만큼 잘 키우는 것은 없다. 자리 다 잡고 네가 키울 수 있을 때 애를 낳던지. 키울 수 없으면 낳지 마라.”

손주가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는 옛 일본 속담이 있다고 서울에 갈 때마다 볼일 봤으면 서둘러 가라.’던 친정아버지,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조용히 혼자 사는 집에 누구라도 오면 삶의 루틴이 깨지고 불편해서다. 그런 아버지의 생활을 존중해 돌아가시기 전 몇 년은 굳이 친정엄마도 없는 친정집에 머물지 않고 호텔에 있다 왔다.

손주 봐 주지 않았다고 늙은 부모 나 몰라라 해도 나는 좋다. 이제는 더는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으련다. 내 멋데로 편히 살란다. 그저 멀리 뚝뚝 떨어져 건강하게 각자 할 일 하다 가끔 만나 밥이나 먹고 (밥값은 내가 낸다.) 내 몸 내가 돌볼 수 없으면 양로원에 가던지 병간호원 부르던지 돈이나 꽉 쥐고 있어야지.

양가 부모님이 우리 부부 열심히 뒷바라지했어도 멀리서 해드린 것도 없이 저세상으로 가시지 않았던가. 잘해주고 재산 줘도 부모가 앓고 누워 부르고 돈 달라면 좋아할 자식이 어디 있을까?

생각과 현실은 엄청나게 다르기에 해준 것은 깨끗이 잊고 받을 생각은 아예 하지도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리라. 말은 쉽지!

Friday, May 1, 2015

It's easy to say

I called a friend. There is a recording of ‘the phone was disconnected.’ Get rid of the phone number without giving me a new number. I was absent-mined for a long time.

She moved to the west along with her daughter and was busy looking after her grandchildren. She is a gentle, humble, honest, hearted friend of mine. But I cannot contact her!

The conversation in the previous phone call with her was that she was trying to raise two grandchildren from her daughter and sent them to kindergarten. Now she wants to take a rest. Suddenly, her son-in-law said, “I have good news for you.”

She has raised her daughter’s children well. So she expected what is the son-in-law trying to do for her. "My wife is pregnant with the third child.” Her son-in-law word’s totally different from what she expected. She was so embarrassed to look at his happy face that she was speechless and absent-mined. Her husband, who was listening next to her, said, "No, you guys are not immature." The son-in law said, "I thought you would like it, but I was disappointed with the expression that you were surprised. Do not worry. We will raise the child.

I have not married son, so how do I know the joy and difficulty of raising a grandchild? When my eldest son asked me, "Mom, if I marry and have children would you raise them?” I was surprised and said, “Don’t even talk nonsense. There is nothing better then you raise your child. Give birth when you have the ability to raise a child.”

Whenever I go to Seoul, my father says, "It is a pleasure to have you when you come but I’m more glad when you get back. It is not that he doesn’t love me, but the routine of his life is broken and uncomfortable when anyone comes to his house that lives alone quietly. I respect the life of such a father and stayed at the hotel.

I don’t mind even if my sons do not help me because I will not raise their children. I live comfortably in my own way. Just stay away and health and do focus your own things. I pay for the meal when we meet sometimes. If I cannot take care of myself, I should go to a nursing home, I just hold tightly on money.

Even though our parents backed up us they died without anything we did. Well, Even if I am good to my children, no sons to like if I am ill and ask them come and go. I do not expect my sons to do anything good to me. I just want them to be happy.

Thoughts and realities are so different. That does forget what I’ve done to others and don’t even think about getting from others. Go alone like a horn of silence. It's easy to s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