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을 치려고 만나는 것이 아니라 잘해 줘야 하는 인연
때문에 서울 갈 때마다 꼭 함께하지 않으면 안 되던 점쟁이가 있다.
내가 유치원에 들어갈 즈음 엄마는 막냇동생을 낳다
출혈이 심해 호르몬과 관련된 병으로 항상 누워계셨다. 모든 집안일은 가정부가
했다. 엄마는 늘 너희가 말 안 들으면 일하는 사람이 나간다며 ‘잘해야
한다.’는 말을 수시로 듣고 자랐다. 나가면 득달같이 이모들이 구해
오긴 했지만, 구할 때까지 집안이 엉망진창이니 상전이 따로 없었다.
그때 듣고 자란 버릇이 지금까지 남아있다. 식당에 가서도 서빙하는 사람에게 뭘 더 어떻게 해달라는 말을 주저하게
된다. 집수리하러 온 사람들에게도 돈을 지불 하기 전 자잘한 마무리 요구를 못 하고 끝내 남편과 내가 한다.
결국엔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를 시중들던 아줌마에게도 잘해야 좀 더 편히 모실 거라는 생각에 그저 그녀가 하자는 대로 했다. 아버지를 돌보는 틈틈이 점도 치고 부적도 팔아 용돈을
챙기는 그녀 옆에서 친구 가족의 생년월일을 주며 사주를 보게 해 복채도 챙겨주고 그야말로 바람잡이 역할을 하곤 했다.
어느 날 그녀가 손님에게 부적을 넣어 줄 복주머니를 사러
함께 나가자고 했다. 과연 부적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서 보여 달라며 얼마냐고 물었다. 몇십만 원대의 다양한 가격이라며 부정 타기 때문에 함부로 보여줄 수
없다고 했다. 종잇조각에 뭐라고 쓰였길래 그리도 비싼 것인가 궁금해하던
어느 날 그녀의 열린 방안을 들여다봤다. 그녀가 뭔가 열심히 쓰고 있었다. 살짝 다가가 등 너머로 봤다. 사람 인자 ‘人’을 정 삼각형 모양으로 잔뜩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실 나는 부적을 본 적도 없고 어떤
내용을 근거로 쓰는지도 모르지만, 사람 ‘人’ 자를 피라미드 모양 안에 잔뜩 그려 넣는다는 것은 뭔가 수상쩍었다.
“부적 써요?” 깜짝 놀라더니 후다닥 가렸다. “그거 사람 ‘人’
자 아닌가? 그걸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돈을 내고 사요?”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부적을 간직하면 마음의 평안을 줄 수 있다.”며 대충 얼버무렸다.
어색해 하는 눈길을 피하며 방안을 둘러봤다. 아버지 손때 묻은 골동품들이 그곳에 옮겨 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오랜만에 방문한 아버지 방엔 침대와 난초 화분만 덩그러니 텅 빈 느낌에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긴 했었는데.
일하는 사람이 나갈까 염려스러워 ‘잘해야 한다던’
엄마의 가르침은 결국엔 주객을 전도시켰다. 아버지의 남은 인생이 ‘그녀가 아버지 머리 꼭대기에 앉아 좌지우지하며 끝나는구나!’ 라는 생각에 가슴이 쓰라렸다.
젖어오는 눈시울을 보이지 않으려고 조용히 방문을 닫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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