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나 사진에서 멋진 여행지를 보면 찾아가 보고 싶다. 벼루고 벼루며 상상하다가 찾아가서는 실망하곤 한다. 사진에서 본 것과는 달리 때에 찌든 낡고 후줄근한 모양새를 접하기 때문이다.
몇천 년 동안 돌길에 움푹 팬 마차 바퀴 자국을 보며
그 당시 살던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하다가
‘좋겠다. 돌로 튼튼하게 지어 유적지로 남게 한 조상 덕에 하루에도 수많은 여행객이 몰려 와 넉넉히 살고 있으니!’
이탈리아 시비타베치아(Civitavecchia)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강력한 고대 도시의 하나로 이 지역을 다스렸던 영주와 그 부속인들이 거주했던 성채 타르퀴니아(Tarquinia)를 찾아가기 위해서다. 대부분 사람이 영어를 못 했지만, 그나마 버스 운전사와는 소통할 수 있었다. 버스표가 없으면 승차할 수 없으니 주위에 타바코
(T) 담뱃가게 사인이 있는 곳에서 표를 사라고 했다.
우왕좌왕하며 버스표를 구하러 다녔지만, 허탕 치고 돌아와 한참을 기다려서야 온 버스 운전사에게 표를 구하지 못한
사정을 장황하게 늘어놓으며 현찰을 받으라고 사정했다. 망설이던 운전사가 그냥 타라고 손짓 했다. 공짜에 신이 난 나의 작은 눈에 타르퀴니아는 데자뷰(daja vu) 현상으로 다가왔다.
언젠가 어디선가 전생에 지나친 듯한, 기억을 더듬듯 골목골목을 도장 찍듯 발을 옮겼다. 가장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겨울 회갈색의 토스카니(Tuscany) 전원 풍경은 애써 찾아온
보람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서둘러 돌아온 버스 정류장에는 우리 말고도 두 커풀의
관광객이 오지 않는 버스를 초조히 기다리다 이탈리아에서 겪었던 에피소드를 주고받았다. 그중 한 여자가
"이탈리아 하면 생각나는 것이 오래전 여행 중에 막차가 오지 않아 한밤중에 어두운 버스정류장에서 밤을 세웠어요. 무섭고 추워 벌벌 떨다 새벽차를 탔던 기억이 생생해요. 여행이란 것이 관광지 구경보다는
예기치 못한 일로 생긴 경험이 머리에 진하게 남아요?"
모두 고개를 끄떡였다.
그러더니 갑자기 화제를 바꿔 우리에게
“북한에서 왔어요? 남한에서 왔어요?”
물었다. 남편이
“우리 부모는 북한 제2의 도시 함흥에서 태어났고 우리는 남한에서 태어났어요.”
“북한에 간 적이 있나요?”
또 물었다.
“없지만, 만약 살아생전
통일이 된다면 말로만 듣던 부모님들의 고향을 꼭 찾아가 보고 싶어요.”
"나는 복부인 차림으로 남편따라 가서 평소 바람인 바다가 훤히 보이는 언덕배기에 노후를 보낼 조그만 땅을 마련하고 싶어요."
나도 한마디 끼어들었다.
‘왜
우리는 이런 질문을 수시로 받아야 하는지?’ 이루어질 수 없는 현실 때문인지 회색빛 도는 싸늘한 하늘로 시선을
돌리며 실없이 웃어야 하는 신세하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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