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했어. 마누라.”
“수고는 뭐 재미있었는데.”
거의 찾아오는 이 없는 나 홀로인 집에 2주 동안 LA에서 온 남편 남동생
부부와 딸이 머물다 갔다.
글을 쓰거나 작업하다가 일주일에 한 번 장을 보러 트레이더 조(Trader Joe’s)에 가며 맨해튼을 걷는 교양 있는 여자의 일상에 갑자기 세 사람이 끼어들었으니. 처음엔 난감했지만
힘든 일을 즐거운 일로 바꾸는 내가 아닌가!
일단 안방을 손님에게 내주고 (침대 있는 방을 내주니 할 일을 다 한 듯 마음이 편했다.)
작업실로 쓰는 큰방에 이불을 깔고 기거했다. 바닥에 누워 커튼 없는 밤하늘을 보니
왜 이제야 내다보느냐는 듯 달이 하얀 얼굴로 섭섭하다며 차갑게 쳐다보는 듯했다. 대낮엔 둥둥 떠가는 뭉게구름을
보며 누워 있다가 낮잠을 잤다.
1.5세 동서가
1세인 나보다 철이 들고 보수적인 조선 시대 아낙이다. 일단 동서는 아침에 산책하고
오면 커피 끓여 놓고 점심엔 나가 돌아다니다 저녁엔 장 봐와서 저녁상을 차리고 설거지까지 했다. 핸디맨인 남편의 남동생은 그동안 고치지 못한 껌벅이는 등도 고치고 정수기 필터도 바꿔줬다.
말상대가 없어 다물고 있던 나의 입은 운동을 시작했다. 일단 시집식구들의 못마땅한 점을 돌아가며 지적하다 친정식구에게까지 와전되었다.
체면 교양과는 거리가 먼 여자가 되어 떠들었다. 형님이 아니라 먼 아래 동생뻘처럼
행동하고 말하는 내 모습을 보고 동서도 놀랐겠지만, 그런 내가 싫어도 상관없다는 듯 일단 나는 하고 싶은
말은 해야 했다.
형님이라고 말조심하며 작업실에 들어가 글을 쓰거나
이젤 앞에 우아하게 앉아 품을 잡는다면 ‘작업하는 형님을 방해할까.’
봐 동서가 미안해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하긴 했지만, 일단 우아하고는 거리가 먼 교양을 오래 떨면 몸져누워야 하는, 떨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체질이다.
“일단 올해 말까지만 그동안 쌓인 불만, 원망 다 털어놓으시고 새해부터는 교양있는 여자로 돌아가시지요. 사모님.”
남편의 충고를 받아들여 정초 아침 동서와 차례를 지내고 식탁에서 또 미처 토해내지 못한 찌꺼기를 입안 청소하듯 토하려는 입에
떡국을 목이 메도록 부지런히 넣었다.
시집식구를 보내고 크리스마스 선물로 아들의 여자친구에게 받은 운동복을 바꾸려고 유니클로(Uniqlo)에 갔다. 미안하지만, 크거니와 분홍색이라서 그동안 세일을
기다려도 하지 않은 다운 코트에 돈을 얹어 바꿨다. 따뜻한 코트를 입고 맨해튼을 걸었다. 가볍고 포근하고 기분이 좋다. 시집 식구를 잘 모신 (동서가 나를 모셨지만) 내가 기특해서 나에게 주는 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