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February 8, 2014

끝에 있었다

여자는 떠나고 남자는 또다시 혼자 남는다.

한때는 번성했던 고향이 낙후되자 도시로 떠났던 여자가 세월이 흐른 후 남루한 모습으로 낡은 가방을 들고 고향을 찾는다. 여자는 자그마한 어선들이 끄덕거리는 부둣가를 거닐다 마을을 떠나지 못하고 술로 허함을 달래던 옛 남자 친구를 만난다. 남자는 술기운에 쑥스러우면서도 반가운 눈으로 여자를 반긴다. 그들은 한동안 함께하다 또다시 여자는 떠나고 남자는 예전보다 더욱더 쓸쓸한 모습으로 남겨진다.

쇠락한 마을을 떠나 외지를 돌다 돌아와 더욱 낙후된 모습에 다시 떠나는 가슴 아픈 사연을 지닌 영화를 연상시키는 메인주 동쪽 끝, 캐나다 국경 해안마을을 연민에 쌓여 둘러봤다.

언덕 위 숙소 오피스 문을 열고 들어섰다. 중년 여자가 모처럼 손님이 온 듯 환하게 웃으며 반겼다. 거센 바닷바람에 패인 얼굴의 주름이 더욱 깊어진다. 그 주름만큼이나 숨은 사연을 지닌 듯한 여자는 으스스한 숙박 오피스를 지키며 동네를 떠나지 못하고 떠나간 연인을 기다리기라도 하는 것일까?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둔덕에 핀 알 수 없는 작은 꽃들은 거센 바람으로 선명함을 잃은 낡은 핑크색 솜털 방망이 모습이다. 더 넓은 바다로 나가거나 대처로 떠난 주인을 기다리며 죽지 못해 사는 가련한 모습 같다.

한때는 커다란 배가 뱃고동을 우렁차게 울리며 들락거렸을 아담한 언덕을 끼고 있는 도시, 바삐 사람들이 오가며 부에 흥청거렸을 모습이 동네 메인 스트릿에 세워진 그럴듯한 건물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거의 내팽개치듯 텅 빈 채로 버티고 있을 뿐이다. 곳곳에 집 판다는 사인이 붙어있다.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오래전에 내놓았는지 사인 또한 낡거나 바닥에 누워있다.

숙소 앞, 배란다 난간에 매단 깃대에 여러 나라 깃발들이 거센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한국 국기도 있다. 처량함을 동반한 반가움이랄까? 어쩌다 너도 나처럼 이곳 멀리까지 와서 거센 바람에 시달리고 있는지! 과연 이곳까지 또 다른 한국인이 왔을까?

영화 속 주인공처럼, 다음날 나도 가방을 차에 넣고 동네를 휘둘러보고는 떠났다. 아직도 영화 세트장처럼 허전하고 텅 빈 마을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까닭은 오랜 세월 고국을 떠나 채워지지 않은 허한 마음으로 타국에서 떠도는 신세라 설까?

1 comment:

  1. 타국살이의 마음들은 비슷한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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