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February 15, 2014

아무 말 못 했다

강남 신사동 가로수 길가 숙소에  잠시 머물렀다. 길을 오가며 빵집 유리창 안을 들여다봤다하얀 유니폼 안에 가는 몸매와 높다란 흰 모자 아래 희고 고운 얼굴의 여자가 열심히 반죽하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서 빚어진 반죽 안에 달콤한 내용물이 채워진 후 노릇노릇 구워져 진열대에 먹음직스럽게 놓였다. 젊은 연인들은 머리를 맞대고 빵을 베어 물고는 웃었다. 쌀쌀한 겨울, 밖과는 대조적으로 빵집 안은 포근하고 아늑해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빵집에 들어갔다.

잘 있었어? 아버지 돌보느라 수고가 많구나.”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왜 이렇게 늙었어? 후줄근해서는. 길에서 보면 몰라보겠다.”
나는 머리를 쓸어 올리며 피식 웃었다.

병원에서 왜 아버지를 계속 살리는지 알아? 다 돈 때문이지. 그놈의 돈 벌려고.”
나는 아무 말 하지 못했다. 

아버지 친구, 엄청나게 돈 많은 분도 병들어 눕자 본인 스스로 단식 투쟁하듯 절식해 생을 마감했다는데. 우리 아버지는 백 살까지 살려는지.”
나는 말을 잃었다.

아직도 여자가 그렇게 좋을까? 누워서도 병간호인 아줌마가 예쁜지 팁을 주며 즐거워하니.”
나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너나 아버지나 둘이 똑 닮아서는 자기들뿐이 몰라.”
나는 다 식은 쓴 커피를 홀짝거렸다.  

어떻게 그리도 여자 형제 모두가 지지리도 못사는 데로 시집가서 제대로 돈도 쓰지 못하고 궁상떨며 사는지. 베풀어야 복을 받지.”
나는 빵을 뜯어 입에 구겨 넣었다.

간신히 눈을 들어 브랜드네임 값비싼 옷에 묻힌 왜소한 몸 위에 놓인 역삼각형 얼굴을 쳐다봤다. 앞머리는 벗어지고 양쪽에 조금 남은 가는 머리털은 가지런히 빗어 넘겼다. 깊게 팬 넓은 미간 아래 작은 입은 쉴 새 없이 불만을 토해냈다
'예전에도 이렇게 생겼었던가?' 
전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타인 같다. 머리통이 더 커진 듯하다. 자세히 보니 부은 것도 같다. 화가 머리로 뻗치면 머리통이 붓는 것인지.

그러게, 못살아도 아버지한테서 멀리 떨어져 독립해서 자유롭게 살지. 평생 아버지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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