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November 23, 2013

남이섬 가는 길에

립스틱 짙게 바른 아줌마가 쉬지 않고 떠든다. 옆에 앉아 듣고 있던 아줌마는 꾸벅꾸벅 존다. 말 상대를 잃은 아줌마는 맞은편에 앉은 여자가 그 옆 남자에게 뭔가를 물어보자 끼어들어 참견한다.

7호선 상봉역에서 경춘선을 갈아타고 가평 가는 55분간 아줌마는 단 한 번도 입을 쉬지 않았다. ‘친정 막냇동생을 어떻게 시집보냈는데 어찌어찌 잘 산다는, 며느리에게 잘해주는데 며느리는 자기를 피한다.’는 둥 상투적인 넋두리다.

결국, 나는 조금 떨어진 곳으로 옮겨 앉았다. 아줌마 목소리는 여전히 쉴 새 없이 들렸다. 나도 그사이 수다를 못 참아 피하는데 평생을 함께할 며느리는 오죽하겠는가.

잠에 빠진 아저씨 옆에 동그란 눈을 토끼처럼 뜬 아줌마가 맞은편에 앉아 있다. 새로 장만했는지 똑같은 붉은색 재킷을 입은 두 사람은 부부다. 아줌마는 전화기에다 대고 신이 났다. ‘부부동반으로 등산 간다.’. 잠에 빠진 남편은 끌려 나온 듯 피곤한 모습이다.

그 옆으로 '초 늙으니' 아저씨 여섯 명이 히말라야산맥 언저리라도 정복할 듯한 등산복을 입고 떠든다. 하의 실종(위만 걸치고 아래는 거의 내놓은)의 여자가 지나가자 떠들다 멈추고 흘끔흘끔 쳐다본다. 그들의 입은 벌어지고 눈은 희번덕거린다. 와이프 옆에서 자는 아저씨와는 대조적으로 피곤한 기색이 전혀 없이 즐겁다는 표정이다.

가평역에서 내려 시내버스를 타고 가상국가, 나미나라공화국으로 불린다는 남이섬에 갔다. 배를 타고 섬으로 들어가 오른쪽으로 꺾어져 강가를 따라 섬 한 바퀴를 돌았다. 그리고는 반달처럼 생긴 섬 중앙을 가로질렀다. 작고 앙증맞아 내 손에 넣고 싶을 정도로 탐 나는 섬이다.

울창한 소나무 울타리 숲 안, 쏟아지는 햇볕 아래 넓은 잔디밭 광장은 짙게 물든 작은 단풍나무를 안고 조는 듯 포근한 모습이다. 내가 만약 나미나라공화국 주인이라면 인간의 손때를 묻히지 않은 모습 그대로 놔두었을 덴데. 군데군데 사람 손에 찌든 조각들, 펜션, 식당 그리고 어쩌고저쩌고 세워 놓은 것들이 남이섬을 어설픈 손재주를 동원해 성형수술 한 듯 자연과 분리시켰다.

섬을 나와 중국 아줌마와 청년 둘과 가평역 가는 정류장에 나란히 앉았다. 교통체증으로 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버스는 오지 않는다. 기다리다 못한 나는 온갖 바디랭귀지를 동원해 4명이 함께 택시를 탔다. 버스보다 싸고 편했다. 실용성에 관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중국인 그리고 경험주의와 실용주의 존 듀이의 본향 뉴욕에서 온 나, 어쩌겠는가!

관광버스에서는 붉은색 유니폼 등산복 입은 아줌마들을 쉬지 않고 토해냈다. 남이섬은 폭탄 맞아 불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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