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방울이 창을 두드리며 송글송글 유리창을 타고 내린다. 노랗게 물든 단풍잎들도 빗물에 젖어 땅에 내린다. 바닥에 뒹구는 나뭇잎들을 보며 영화 화양연화 주제곡(유메지의 테마)에 고개를 떨군다.
첼로 현의 팽팽한 리듬은 가슴속 깊은
곳에 묻어 둔 아픔을 들쑤셔 끌어 올려 허공에 흩뿌린다. 시름과 고독에 떨며 지그시 눈 감은 여인을 응시하는 남자의 그윽한 시선이 음악에 녹아내린다. 사랑하고 푼 간절함, 아쉬움 그리고 외로움의 테마곡이 반복적으로 흐른다.
‘그와의 만남에 그녀는 수줍어
고개 숙였고 그의 소심함에 그녀는 떠나가 버렸다.’로 시작하는 자막이 영화의 시작과 끝을 말해준다.
결국, 이루어지지 못하는 사랑으로.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때)’, 보면 볼수록 빠져든다. 특히나 오늘같이 비 내리는 늦가을날엔.
양조위와 장만옥이 주연 배우다. 홍콩의 비좁은 공간에서 말없이 부딪치는 남녀 그러나 어떤 신체 접촉도
보여주지 않고 음악만이 이들의 간절한 사랑을 대변한다.
좁은 골목 층계를 내려가는 수심에 찬 여자를 지긋이
바라보며 말없이 스치고 올라오는 남자, 어두운 골목길 전등 빛
아래, 비를 피해 남자는 담에 기대어 담배를 꺼내 문다. 층계 위,
남자가 올라간 자리를 응시하는 여자의 아쉬운 시선을 음악이 위로하듯 흐른다.
정지된 순간 속의 외로운 남녀의 기다림과 스치는 장면들은
한산한 공허감을 조용히 그려낸 화가 Edward hopper의
화폭 같다.
영화는 러브 스토리로 영어 제목 ‘In the mood for love’가 말해주듯이 영상과 무드의 전개다.
음악 또한 그들의 사랑을 더욱더 깊게 되새기게 해 비 오는 날엔 빗소리와 함께 듣고 또 듣는다.
‘뭔가 감추고 싶은 비밀이 있다면
산에 가서 나무 하나를 찾아 거기 구멍을 파고는 자기 비밀을 속삭이고 비밀은 영원히 가슴에 묻고 진흙으로 봉하라.’는 예전부터 내려오는 이야기대로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 왕조위는 캄보디아 사원 나무에 뚫린 구멍에 사랑의 비밀을 토한 뒤 풀잎 머드로
봉한다.
멀리 구멍에 대고 속삭이는 그를 주시하는 주황색 승복을
입은 어린 스님의 뒷모습이 인생사 덧없음을 말하는 듯하다. 주황색은 밝고 따뜻한
색임에도 나에게는 왜? 개 양귀비 핏빛으로 삶의 허무와 비운으로 다가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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