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문을 열자마자 스치는 찬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강가로
내려가는 남편을 따라 나섰다.
얕은 델라웨어 강 상류는 그야말로
명경지수다. 물속에서 바가지만 한 돌을 들추던 남편은
"잡았다."
굵직한 손가락 크기의 가제를 보여준다. 일급수에서만 산다는 가제다.
젊은 여자가 지나가다
"하이, 이 동네 사람 아니지요?"
물었다.
"브루클린에서
왔는데요?"
화들짝 놀라며 자기도 브루클린에서 왔다며 반가워했다. 그것도
같은 동네에서.
"작은 아파트에 세 들어 사는
것이 지쳐, 몇 년 전 이곳에 집을 사서 수리하러 주말마다 집 앞까지 연결된 기차를 타고 와요."
길에서 처음 만난 우리에게 자기 집을 보여줬다.
"화가들이 서너 명 들어 오긴 했지만,
더 많은 사람이 몰려와 동네가 살아나길 바래요. 혹시 집 살 의향이 있으면 정보를 줄게요."
친절하게 e-메일을 보내왔다.
10여 년 전 늦여름,
델라웨어 강에서 카누를 타며 근처 숙소에 머물다 ‘강의 시작은 과연 어디일까?’
하는 호기심에 97번 도로를 따라 상류로 올라갔다. 저 멀리 산을 감싸고 낭떠러지 밑을 흐르던 강은 어느새 바로 옆을 스치듯 지나가다 다시 멀어졌다.
눈에 각인하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풍광에 정신 놓고
가다 멈춘 곳이 뉴욕 업스테이트 행콕(Hancock)이다.
산을 품은 강가 스산한 어둠이 깔린 로맨틱한 마을로 한때는, 블루스톤
(오래된 브루클린 인도에서 볼 수 있는 넓적한 판석)을 캐내어 번성했던 유서 깊은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대체 산업이 없는지 낙후된 모습으로 인적이 드물다. 뉴욕에서 3시간 넘게 가야 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강을 사이에 두고 다리 건너편 펜실베이니아 쪽 숲은
드라이브하기에 오싹할 정도로 우거졌다. 97번 도로를 가다 행콕
가까이 골프장 옆길로 빠져들면 차 한 데 간신히 굴러갈 만한 비포장 오솔길이 있다. 그 길을 끝까지 가면
행콕 마을을 한 바퀴 돌아 다시 메인 스트릿으로 나온다. 한여름 울창한 숲 속 오솔길은 해를 볼 수 없을 정도로 진한 녹음 천지다. 요즘 같은 가을날은 사방천지가 만산홍엽으로 길옆 외롭게 흐르는 냇물이 우리를 기다릴듯한
연민에 찾아가곤 했다.
그렇게 헤매던 어느 날, 강으로 바로 연결된 집이 매물로 나왔다. 주인이 직접 판다는 집 앞 팻말에 적혀진 이름이 낯설지 않은 폴란드 이름이다. 아니나 다를까
옐로북을 뒤져보니 폴란드인이 많은 우리 동네에 사는 사람이 내놓은 집이었다.
"어떻게 그곳 멀리까지 가서 자기
집을 찾아 전화했어요?
놀랬다. 행콕과의 만남은 이렇게 브루클린
그린포인트와 길고 가느다란 거미줄 같은 인연이기도 했다.
행콕은 예전보다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보슬비 내리는 풍경 속의 쓸쓸하고 적막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처음 그곳에 갔던 날 브루클린 이웃에 산다며 반갑게 맞아줬던 그녀의 집은 때 묻은 붉은 벽돌을 간직한 채 여기저기 떼어낸
창문이 너부러져 있는 것이 아직도 수리가 진행 중이다.
바닥이 훤히 보이는 강물이 단풍든 붉은 산을 가득
담아 호수처럼 멈춘 듯 소리 없이 흘렀다. 단풍이 떨어지고 서리가 내리며 겨울이 오겠지. 하얀 눈 속에 묻힌 마을이 왜 그리
외롭고 차가운 모습으로 가슴에 새겨질까?
“나 이제 더는 이곳에 안 올래. 너무
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