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한 상추 쌈 점심 초대라고 했다.
허나 정성이 깃든 최고의 상차림이었다.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쌈 종류가 이렇게 많다니! 모든 쌈이 밭에서 갓 가져온 거란다.
작은 텃밭에 앉은 듯 풀밭 위의 식사는 즐거웠다.
지난 추석, 아는 지인이 음식을 장만해서 또 다른 지인의 집에 가지고 가 함께 한
점심이다. 조금만 먹으면 불러오는 배가 원망스러울 경우가 바로 이런 상차림 앞에 서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갓 김치에 케일 된장국도 그 이외도 일일이 기억할 수 없을 만큼
요리가 많았다. 배가 불러 젓가락질도 못 한 귀한 음식이 지금도 눈에 아른거려 군침을 삼킨다.
지인은 상차림만이 아니라 집주인에게 폐가 되지 않게
사람 숫자대로 용도에 따라 그릇도 준비해 왔다. 게다가 우리가 즐겁게
먹고 떠드는 동안 아무 말 없이 후식을 준비하고 남은 채소는 간장 쌈장에 절이고 설거지를 하고 뒷마무리까지나.
"음식 준비하는 것은 힘들지 않았으나
그 많은 종류의 쌈을 씻는 것이 힘들었다."
는 이야기를 들으며 보통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을
찾아서 온 정성을 쏟는 이분은 과연 깨달음의 경지에 오른 사람이 아닐까? 이분 앞에만 서면 고개가 절로 숙여지는
것이 나 자신이 부끄럽다.
너무 고마우면 미안해진다. 미안하면 말을 잃는다. 고맙다는
말도 못하고 조용히 옛 생각에 빠졌다.
아이들이 어릴 때 학부모 협회에서 일한 적이 있다. 학교 행사 때마다 할 일도 많지만, 그 이외도 잡다한 일이 많았다. 항상 준비물을 잘 챙겨 가도, 일하다 보면 도구를 가져오지 않아서 일이 느려지고 당황할 때가 종종 있었다. 생각 같아서는 교무실에
가서 빌려다 쓰면 편할 텐데. 아이들을 위해 일하는 학교 직원들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며 함께 일하던 분은 주위의 문방구점에서 사다 쓰곤 했다.
준비 없이 일하다 없으면 대충 빌려 쓰는, 나 편하자고 남들을 힘들게 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이 생각났다.
“또 혀”
엘리베이터 문 앞에서 배웅하던 집주인의 사투리 유모에 우리는 엘리베이터 안이 터져나갈 정도로 웃었다. 정겹고 아름다운 사람들과 함께 풀밭에서 웃고 떠들며 쌈밭 속에 묻힌 신 나는 소풍이었다.
‘또 혀.’면 좋겠지만, 고맙고 미안혀서. 인자 내가 혀야 하는디.
‘또 혀.’면 좋겠지만, 고맙고 미안혀서. 인자 내가 혀야 하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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