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June 22, 2013

아이들과 함께 그린 정물화

막내 동서가 지내는 시아버지 제사와 차례를 모셔온 지 서너 해가 지났건만, 난 아직도 적응 못 하고 기일이 다가오면 허둥댄다.

이렇다 할 종교도 없고 제사를 꼭 모셔야 하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지만, 멀리 떨어져 잘해드리지 못하는 시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려고 모셔왔다.

왜 제삿날마다 바쁜 일이 생기는지. 요번 제사는 토요일과 겹쳤다. 저녁에 춤추러 가야 하는데
춤추는 것이 더 중요해 아버지 제사보다?” 
절대 아니지. 제사가 더 중요하지요.”
시원하게 대답은 남편에게 했지만, 뭔가 석연치 않아 시어머니에게 전화했다
"너 편한 데로 돌아가신 전날 아무 시간 때나 해도 된다."
어머니도 나이 들고 힘이 빠지니 며느리 눈치를 보시는 게 마음이 짠했지만, 일단은 내가 바쁘니 일찍 지내기로 했다

평상시에 아버지가 좋아하셨던 간단한 상차림에 생선전과 삼색 나물, 조기와 탕국은 끓였다. 장 봐 온 것을 풀며 탕국부터 안치고 생선을 잘라 놓으니 작은아이가 밀가루에 달걀을 묻히고 큰아이는 전을 부쳤다삼색 나물을 깨끗이 씻어 삶아 그릇에 담아 놓으니 작은아이가 볶았다. 전 부치는 것을 끝낸 큰애는 설거지, 나물을 끝낸 작은 아이는 과일을 닦아 그릇에 보기 좋게 담았다. 남편은 커다란 상에 캔버스 천을 깔고, 아버님 사진을 정 가운데 세우고 촛불을 켜고 향을 피웠다. 평상시 우리가 마시는 와인보다는 조금 비싼 것으로 준비도 했다. 그사이 조기는 마이크로 오븐에서 모양 좋게 구워졌다.

한 해에 여러 번 제사상을 차렸던 친정아버지한테서 들은 풍월은 있어, 상 차리는 아이들에게 홍동백서를 지시했다
붉은 과일은 동쪽에 흰 과일은 서쪽이야.” 
캔버스 위에 그려진 멋진 정물화 한 폭의 제사상이 차려졌다
"완전 예술이야. 예술." 
한마디씩 하며 와인을 올리고 절을 하며 할아버지를 생각했다.

엄마, 왜 할아버지가 먹을 수도 없는데 상을 차려요?” 
"할아버지가 얼마나 너희에게 잘했니? 적어도 한 해에 한 번이라도 마음 깊이 할아버지에게 감사해야지. 훗날 너희는 제사 안 지내도 된다. 엄마 아빠는 아직도 한국 관습이 남아있고 하고 싶어서야.”

크리스마스 때마다 시아버지가 비행기 표를 보내와 우리 가족은 LA에 가서 연휴를 보냈다. 손주들과 크리스마스트리에 장식을 달고 과자를 만들어 이웃에게 돌리곤 하셨다. 은퇴자금을 손주들 대학 학자금으로 만들어 등록금을 도와주셨다. 아이들이 기억하는 할아버지는 산타클로스였다
할아버지에게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하고 절해야지." 

유난히도 자주 내린 빗물 덕에 울창해진 뒤뜰로 놋그릇 종지에 향을 꽂느라 담았던 쌀을 흩뿌리니 새들이 재잘거리며 모여든다. 죽으면 과연 우리는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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