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표정으로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한 명씩 장례식장으로 들어오고 있다. 내가 찾는 여자도 나처럼 맨 뒷줄에 앉아 형님의 죽음을 확인하고는 서둘러 일어날 것이다. 나는 맨 뒷좌석에 앉아 수상한 행동을 하는 여자를 포착하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이리저리 살펴보지만 누가 누구인지 모르겠다. 단지 돈 꿔 간 사람이 여자라는 것만을 그리고 죽음을 확인하러 꼭 나타날 것이라는 직감뿐이다. 짐작 가는
사람이 있다고 한들 어쩔 것인가. 증거가 될만한 종잇조각
하나 없는데.
형님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알고 지내던 여자에게 적지 않은 돈을 빌려 줬다가 받지 못하자 신경을 곤두세우고 돈을 받으러 다녔다. 그리고는 내출혈로 쓰러졌다. 시아주버니조차도 누구에게 얼마의 돈을 꿔 줬는지 모른다.
칠십 년대 초, 천국이라도 가는 듯 희망에 부푼
형님은 재미교포인 아주버니와
결혼해서 미국에 왔다. 그 당시, 교포와 결혼해서 미국에 오는
여자들은 일단은 외모가 받쳐줘야 했다. 그래야 교포입네 하고 남자들이 한국에 나가 예쁜 색시들을 데려오곤 했던 시절이었다.
시어머니 왈 신붓감이 예쁘다고들 이구동성이었다고 한다. 인물만
좋은 것이 아니라 성격도 상냥하고 음식솜씨 또한 좋았다.
형님은 항상 화려한 차림으로 선글라스에 음악 볼륨을 높이고 드라이브하기를 좋아했다. 그래야 미국에 온 실감이 난다나. 손이 큰 형님은 주말엔 빠짐없이 마켓에 들러 고기를 잔뜩 사다 바비큐를 즐겼다. 고기 먹는 맛이 미국 사는 재미 중의 또 다른 하나라며.
꿈의 나라 미국에서 남 부럽지 않게 떵떵거리며 잘 살 살아보겠다고 형님은 돈도 열심히 벌었고 모았다. 돈이 있다는 것을 안 주위 사람의 감언이설에 속아 이자 받는 즐거움에 돈을 꿔줬다. 부자지간에도 돈 이야기는 하지 않는 미국에서 이런 황당한 일을 당한 것이다. 모국식과 미국식이 뒤엉킨 1세 중심의 사적 금전거래로 교민사회에서 종종 벌어지는 혼탁함에 말려들어
간 것이다.
엄마를 잃은 어린 아들이 그녀의 영정 사진을
가슴에 안고 울면서 걸어 나왔다. 손에 물 한번 묻히지 않고 남 보란 듯이 키우겠다던 딸 아이는 통곡을 했다. 형님을 순식간에 잃은 가까운 일가친척들은 망연자실했다.
뒷간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고, 돈 빌려 갈 때는
구걸하듯 빌려 가서 빌려 간 후에는 큰소리치며 갚지 않은 그 여자, 결국엔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간 그 여자는 지금쯤 두 다리 죽~ 펴고 편안히 살고 있을까? 아닐까? 아니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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