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헤어스타일이 완전 나이 든 사자처럼 근사하네요.”
오랜만에 서울서 만난 친구가 긴
곱슬머리에 반백이 된 남편에게 한마디 하며 나에게 눈을 찡긋했다.
“그러면, 나는 뭐 주변서 눈치 보며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냐?”
남편이 좋아하는 나무토막처럼 냉동된 가자미 두 마리에 파와 간장을 넣고 지졌다. 입맛을 다시며 젓가락을 들고 기다리는 남편 앞에 지글거리는 프라이팬 뚜껑을 열었다. 김이 뽀얗게
오르는 가자미가 먹음직스럽다. 남편의 눈은 획득한 먹이를 만난 듯 빛이 났다. 잽싼 젓가락질로 가자미는 삽시간에 뼈만 앙상히 드러났다. 난 한점의 살점도 건드려 보지 못하고
아쉬운 듯 뼈에 붙은 부스러기를 찾아 뒤적였다. 우리의 결혼생활은 이렇게 먹이를 놓고 먹어치우고,
먹지 못해 섭섭해하며 시작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모처럼 모국 방문길에 이리저리 핑계를 대며 마뜩잖은 표정의 남편을
구슬려 종합건강검진을 받았다. 결과, 결혼생활
28년에 내가 얻은 것은 단백질 부족, 남편은 체중 과다.
요즈음 나는 남편 앞에 가자미를 올려놓기가 무섭게 젓가락을 들고 내 몫을 차지하며 한마디 내뱉는다.
“나 단백질 부족인 거 알지.”
남편은 아쉬운 듯 커다란 살점을 슬그머니 내 쪽으로 밀어준다.
남편이 앞장서서 걸어갔다. 짧은 다리를 부지런히 움직여 따라가 잡고 나면 또다시 뒤로 처졌다. 남편은 나와
사는 동안 함께 걷지도, 앞서 가다 기다리지도 않을뿐더러 아예 가버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숲 속에서 먹이를 포착하고 달려가듯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나는 애타게 남편을
찾아 헤매다 지쳐 돌아오면 남편은 대자로 누워 자고 있었다. 아마 쫓아오다 사라져주길 원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렇게 내 시야에서 벗어나려고 바삐 걸었던 것일까?
그런 남편이 나이가 들자, 빨리 오라고 손짓도 하고
길모퉁이에서는 기다려도 준다. 나는 평생 앞서 가는 남편을 놓치지 않으려고 열심히 따라가며 남편의 얄미운
뒷모습에 익숙해졌는데.
입에 맞는 음식을 먹을 때 말 거는 것도, 젓가락을 들이대는 것도 싫어하는 남편이 내 앞에 없다면, 나는 어떤 모습으로 혼자서 밥을 먹을까?
남편의 미운 등을 보며 걸을 수 없는 날이 온다며 난 뭘 보고 걸어야 할까?
앞서 가는 남편의 등을 보며 건강한 다리로 뒤처져서라도 따라갈 수 있는 것에 감사한다. 그리고 잘 따라오고 있나 되돌아보는 남편이 고맙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