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저 뉴욕에 가는 데요. 만나고
싶어서 전화했어요."
전화 녹음기에 남겨진 친구도 아닌 친구 동생, 기억에도 없는 목소리였다.
오래전 볼일 보고 다 저녁에 집에 왔다. 어둠 속에서
친구 여동생이 커다란 여행 가방을 우리 집 문 앞에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따라 들어온 그녀는 와인 두 병을 식탁 위에 턱 하니 놓고는 어색한 분위기를 무마하려는 듯 마셔댔다. 그리고는 열흘 정도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떠났다. 또 우리 집에 머물겠다고 전화를 한 것은
아니겠지? ‘나보고 어쩌라고.’
본인은 여행으로 흥분된 상태인지 모르지만 녹음을 듣는
나는 기분이 썩 좋지 않다. 나도 온종일 이리 뛰고 저리
뛰어야 하는 바쁜 생활이 있다. 그리고 그동안 방문했던 사람들의 좋지 않은 기억들도 있다. 하노라고 해도 아마 슬금슬금 나도 모르게 배어 들어간 미국식이 그들을 불편하게 해서인지 재워줘도 돌아오는 소리는 ‘섭섭하다.’였다.
대부분 방문자들은 한 푼이라도 호텔비를 아껴 명품을
하나라도 더 사 가려는 대단한 의지가 있다. 잠자리를 제공해준 사람의
개인적 프라이버시는 무시한 채 본인의 여행목적에만 투철했다. 그들이 생각하기엔 고까짓 것 가지고 그런다는
둥, 내가 오면 몇 번이나 뉴욕에 온다고, 한국 사람들끼리 매정하다는
둥, 미국 놈 다 됐다는 둥,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라는 등등을 열거하며
섭섭해한다. 재워 줘도, 재워 주지 않아도 섭섭하기는 매일반이다.
집에 재워졌다 가 남편 뺏긴 여자도 있다는 데는 뭔 더 긴 이야기가 필요할까.
여행 떠나기 전에 전화로 은근슬쩍 잠자리를 알아보려고
연락하지 말고
"여기 호텔인데 시간 있으면 차나 한잔하지."
호텔 로비에서 세련되고 우아하게 전화하는 방문자는 정녕 없단 말인가! 10년에 한 명꼴로
30여 년 이상 살면서 아마 세 사람 정도였을까? 먼 여행길에 잠자리가
가장 편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이 선진국이라며.
"친구 동생아, 너 우리 집에 머무르려고 전화한 것은 아니겠지?’ 너도 이젠 나이가 들 만큼 들고 잘 먹고
잘산다니 호텔에 편하게 있다가 가기를 바란다."
재워주는 것만은 무조건 ‘NO’다. 한때는 NO를 하지 않아 힘들었다. 또 한때는 NO를 불분명하게
해서 괴로웠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NO를 잘하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처음이 어렵지 NO를 잘하자 문제 발생률이 줄었다. 그런데 마음이 왜 이리 찜찜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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