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만에 서울에 나가 친구를 만났다. 친구가 나이에
걸맞지 않게 딸아이 옷을 빌려 입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나이 먹을수록
젊게 입는 것도 좋지, 워낙에 날씬하니까 뭔들 못 입을까.’
그런데 혼자가 아니었다. 뒤에 웬 남자가 줄레줄레
멋쩍어하며 따라 들어오는 게 아닌가. 이건 또 뭐야!
남자를 머리에서 발끝까지 죽 훑어보며 누구냐고 눈으로 물었다.
“이 근처에서
만났다가 헤어지려고 했는데 오다 보니까 여기까지 왔어.”
눈치를 보니 그렇고 그런 사이인 것 같다. 남자가 인상이 좋지 않다. 많은 서울 아낙이 남편 외 애인이 있다고들 하던데 이런
경우인가? 창밖을 내다보며 시큰둥하게 앉아 있었다. 친구가 안 되겠다 싶은지 남자를 돌려보냈다.
“어떻게 된 거야? 너 이혼했어?”
“이혼은, 그냥…”
“이왕이면 네 남편보다 좀 근사한 사람을 만나지 어째 네 남편보다 시원치 못하다.”
“고속도로에서 차가 갑자기 섰는데 친절하게 도와주길래 고마워서 차 한잔 마시다 친해졌어. 보기보단 로맨틱해.”
“왜, 네 남편이 어때서? 돈도 잘 벌고,
성실하겠다.”
“우리 남편, 장편이라 지루해, 단편이 읽기가 흥미진진하잖아.”
"어쭈~ 이 여편네 말하는 꼬락서니 하고는."
그녀는 자신의 자유분방함을 미국에서 방문한
나에게만은 대담하게 보여줘도
이해할 거라고 착각한듯했다. 미국은 자유의 나라라고 어릴
적부터 듣고 살아왔다. 실지로 미국에 오니 길을 지나가도 쳐다보거나 참견하는 사람이 없어서 좋다. 그러나 진정한 자유인이 되기가 그리 쉬울까?
경제적으로 자유로워지려면 능력이 있어 돈 걱정
없이 살아야 하고, 법망에서 벗어나려면
법을 잘 지켜야 한다. 영어를 잘해서 미국 생활에 불편함이
없어야 언어로부터 자유로워질 뿐만 아니라 남편에게는 신용을 잘 쌓아 믿음을 줘야 원만한 부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남의 입에 오르내리며 그들의 가십거리가 되지 않으려면 말조심,
몸가짐을 잘해야 한다.
유유자적 물 위에서 부드럽게 움직이는 오리도 물밑에서는 부지런히 오리발을 수도 없이 움직인다. 이렇듯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노력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 아닐까? 자유로워지고 싶어하는
욕심 자체를 버린다면 모를까? 단편을 만나고 다니는 것은 또 다른 구속이다.
친구는 길고 지루한 장편인 남편에게 돌아갔다. 남편과 함께 뉴욕을 방문한 친구의 표정은 지루했다. 그러나 물 위에 떠 있는 오리처럼 편안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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